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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비즈니스

‘주총 호랑이’ 된 국민연금, 누가 움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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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기금운용위원 20명 중 경제 전문가 단 2명…힘 세진 수탁자책임위도 ‘독립성’ 논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3월 27일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이사직 연임에 실패했다. 이날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된 것이다. 대기업 오너가 주주들에 의해 이사회에서 밀려난 첫 사례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 부결에는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위)의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해 결정을 유보하던 수탁자책임위는 주주총회 전날인 3월 26일 ‘기업 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표를 던지기로 최종 결정했다.  


국민연금이 더 이상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주주권 강화를 통해 기업 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연금 사회주의’가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긍정적 효과를 높이는 전제 조건은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라는 것이다.   


◆ 끊이지 않는 ‘정부 입김’ 논란 왜? 


보건복지부는 4월 3일 “복지부는 조양호 회장의 선임건과 관련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 위원들의 논의에 간여한 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에 ‘복지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한 해명이다.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다름 아닌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조직의 의사결정 체계와 이해당사자 간의 충돌을 방지하는 역학구조)’에서 비롯된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한마디로 ‘옥상옥(집 위의 집)’ 구조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업을 관장하되 그에 따른 업무는 투자 전문가로 이뤄진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가 수행한다. 기금의 운용 계획과 평가 결과 등 기금 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옥상옥 지배구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 내에는 연금정책국 국민연금재정과가 이 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한국은 법·제도적으로 국민연금의 지배권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고 그 운용 역시 정부가 담당하도록 돼 있다”며 “사실상 국민연금이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복잡한 지배구조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기금운용본부는 1999년 금융시장 분석, 포트폴리오 관리, 투자 상품 매매, 위험관리 등 기금의 전문적인 관리와 운용을 위해 출범했다. 기금운용본부의 모든 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사람은 기금운용본부장(CIO)이다. 64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자리다 보니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CIO는 영향력이 큰 만큼 누구나 탐내는 자리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정부와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역대 CIO들만 살펴봐도 1999년 출범 이후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사람은 손에 꼽는다.  


2대 조국준 전 CIO는 “투자 결정권이 없다”며 사의를 표했다가 반려당한 적이 있고 3대 오성근 전 CIO는 정권 교체에 따른 사퇴 압력으로 중도에 물러났다. 6대 홍완선 전 CIO는 최광 국민연금공단 전 이사장과 인사 갈등 끝에 동반 사퇴했다. 7대 강면욱 전 CIO는 2017년 7월 임기를 7개월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CIO를 찾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막중한 책임에 비해 ‘자율성과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발목을 잡았다.  


◆ ‘자본시장 대통령’ 발목 잡는 독립성 논란 


1년 3개월의 공백 끝에 부임한 주인공이 안효준 전 BNK금융지주 글로벌 총괄부문장이다. 지난해 10월 국민연금의 신임 CIO에 선임됐다. 안 CIO는 교보악사자산운용대표, BNK증권 대표 등을 지낸 안 CIO는 주식운용 부문을 중심으로 전문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경력이 탄탄하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립성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해 안 CIO는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향상시킬 여지가 많다”며 “전체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로드맵에 따라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금운용본부를 포함해 국민연금공단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것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다. 2017년 11월 취임한 김성주 이사장은 문재인 대선 캠프를 거친 전직 여당 국회의원 출신으로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영국과 스웨덴 등 해외의 제도 도입 사례를 파악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향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의 경영에 적극적인 참여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운용본부의 운용 계획 등을 보건복지부 산하 실무평가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중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국민연금 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로 연금기금 운용의 중요 사항을 심의, 의결한다.  


이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현재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기획재정부(이호승)·농립축산식품부(김현수)·산업통상자원부(정승일)·고용노동부(임서정) 차관 등 정부 인사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김성주)이 당연직 위원 5명으로 들어가 있다. 이 밖에 노동자 대표, 지역 가입자 대표, 사용자 대표 등으로 이뤄진 위촉 위원 14명을 포함해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금융·경제 전문가 그룹은 단 2명이다. 기금운용위의 심의 사항을 사전 검토하는 실무평가위원회의 위원장 역시 보건복지부(권덕철) 차관이 맡고 있다. 


◆ “기금운용위 정부 참여, 한국이 유일” 


전문가들은 현재 기금운용위원회가 ‘대표성’과 ‘공공성’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3월 20일 자산 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캘퍼스, 네덜란드 ABP, 한국 국민연금)을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방식 등을 비교했는데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이사회나 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곳은 국민연금이 유일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기금운용위원회에 현직 장차관이 참여하는 것도 국민연금만의 특징”이라며 “국민연금이 지배구조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권을 직접 행사한다면 정부 간섭 논란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과 함께 특히 주목 받는 곳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위’다. 현재 기금운용위원회 아래에는 세 개의 전문위원회가 있다. 투자정책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위)·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다. 이 중 수탁자책임위는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기존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 개편했다.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상장 주식에 대한 주주권·의결권 행사와 책임 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수탁자책임위는 2개의 분과로 나눠져 있는데 주주권행사 분과(9명)와 책임투자분과(5명)다. 위원들은 사용자단체·노동자단체·지역가입자단체·연구기관이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박상수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가 수탁책임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수탁자책임위원회 역시 ‘독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맹점이다. 정부 측 인사를 배제했지만 여전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기관이기 때문이다. 위원회 간사를 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이 맡기로 한 것도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불을 지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자문 기구 역할을 하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보다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해 결정을 요청하는 안건뿐만 아니라 주주권 분과위원 9명 중 3명이 요구하는 안에 대해 기금운용본부로부터 주주권·의결권 행사를 넘겨받을 수 있다.  


최영민 국민연금연구원 기금정책팀장은 국회에서 4월 2일 열린 ‘연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평가와 전망’ 토론회에서 “현재 수탁자책임위 위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촉하는 상황이어서 지배구조 등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 개선 노력이 진행 중”이라며 “20대 국회에서 기금 지배구조 관련 개정 법률안이 총 13건 계류 중이며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이 포트폴리오 내 국내 주식을 축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돋보기-자본시장 '큰 손'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 투자한 기업은?  


640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금액만 109조원에 달한다. 전체 시가총액의 약 6.5%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연못 속의 고래’나 다름없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총 294곳이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만 90곳 정도다.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 있어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은 7곳이다. 


KT(12.19%)·포스코(10.72%)·KT&G(10.0%)·네이버(9.48%)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다. 하나금융(9.68%)·KB금융(9.50%)·신한금융(9.38%) 등 3대 금융그룹도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다. 시가총액 10위권 내 대기업들 역시 국민연금의 주요 투자처다. 삼성전자(10.0%)·SK하이닉스(9.1%)·현대자동차(8.27%) 등에서 국민연금은 2대 주주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별로는 삼성그룹과 SK그룹 계열사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는 총 12곳으로, 삼성카드를 제외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모든 계열사에 투자한 셈이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곳은 4곳으로,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호텔신라(12.18%)다.  


SK그룹 계열사 가운데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총 10곳이다. 이 가운데 3곳은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모든 SK그룹 계열사에 투자하고 있다.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SKC로 보유 지분율은 총 13.5%다.  


이 밖에 현재 가장 많은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 한라홀딩스·풍산·한솔케미칼이다. 국민연금은 각각 이들 기업의 지분 13.4%를 보유 중이다.  


전광우 국민연금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7%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하고 있는 것은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도 전례가 없는 사례”라며 “국민연금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는 기금운용본부의 경쟁력 확보뿐만 아니라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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