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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비즈니스

유리한 게임을 만드는 ‘시그널링’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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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시장과 경쟁자는 제한된 ‘정보’로 기업의 전략을 해석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대학 교수] 경영학 책에는 면밀한 정보 판단으로 정확한 답을 찾아 실행하는 훌륭한 경영자들이 나온다.


마케팅 책에 나오는 소비자는 단돈 1000원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고 기업 재무 분야의 이론들도 정보가 즉시 반영되는 시장을 전제하고 있다. 어떤 대기업은 국가 정보기관 못지않은 탁월한 정보력을 가졌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온갖 음모론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기업 경영자들만 보더라도 어쩌다 운이 좋아 큰돈을 벌었을 뿐인 사람들도 있다. 마음 편하게 가진 것 누리고 싶은 대주주 일가가 쓰다 버리기에 만만하다고 생각해 한자리 맡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일들을 제한된 정보와 능력으로 해석하고 나름의 판단을 내려 실행한다. 정말로 완벽하게 알아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하는 셈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해석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시그널링(signaling)’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전략이 가능하다.



◆‘13 대 1 결투’의 신화


예능 토크쇼에서는 종종 13 대 1의 결투를 했다는 무용담이 나온다. 아무리 프로 격투기 선수라고 하더라도 13명과 싸워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물며 토크쇼에 나오는 예능인이라면 13명과 싸워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0)’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이 이런 무용담은 터무니없는 과장일 것이다. 한두 명 만만한 상대를 제압하는 사이에 겁먹거나 무관심한 나머지 십여 명이 방관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13 대 1과 같은 무용담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 나름의 효과가 있다.


우선 13 대 1의 싸움에 나설 만큼 나름 자신감, 혹은 무모함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함부로 맞서 싸우겠다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다. 이런 상대와 싸우려면 큰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이다.


영화에 보면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면서 상대를 위협하는 ‘자해 공갈’이 나오는데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무모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래도 나 같은 상대와 싸우겠느냐”고 묻고 있는 셈이다. 힘이 부족한 약소국이 무모한 도발을 계속해 가진 것이 많은 상대를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13 대 1의 결투를 여기저기서 자랑한다면 그 무용담의 주인공은 이제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드시 싸워 이길 상대가 있다면 최대한 자신이 강하게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강함을 숨겨 싸움에 끌어들이고 다른 한편 강함을 과시해 상대가 덤비지 못하게 하는 정보 조작을 ‘허허실실(bluffing)’이라고 한다.


성벽에 깃발이 요란하면 수비 병력이 별로 없다는 의미일 수 있고 정말로 치명적인 전략무기는 소문만 무성할 때 더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


거리에서 시비가 붙으면 말리지 말라면서 옷 벗고 시계 푸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제발 말려 달라고 주변에 호소하는 것이다. 멱살을 잡고 승강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멱살 잡이는 꺾기 조르기로 들어가는 도입부 기술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정말로 상대와 싸워 제압하려는 사람은 싸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비굴함을 마다하지 않으며 상대를 교만하게 만들고 힘을 빼기 위해 맞아가며 도망도 다닌다.


이처럼 허허실실의 지혜를 이해하는 상대에게 어설프게 정보를 노출하면 아군의 상황과 전략을 고스란히 알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전술이 ‘더듬수’다.


프로 포커 대회에서는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쓰게 한다. 서로의 표정이나 눈빛을 읽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핵무기 보유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피하는 ‘NCND’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모호함이 상대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아군에게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열어주게 된다.


더듬수는 조직에서의 처세술로도 거론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가진 것을 숨기고 못난 척해 보이는 일이 무엇이 어렵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남에게 잘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또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에서 가진 것을 보여야 인정도 받고 돈과 사람이 따라온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좋은 차, 좋은 옷으로 꾸미는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 있는 행위도 사실은 그래야 일이 되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죽어라 일하다가 다치면 쓸모가 없어 버려지니 요령껏 힘을 조절해 보지만 영악한 주인은 경쟁을 붙여 마지막 힘까지 끌어낸다. 21세기 자유 시민들의 직장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도 풍부한 자금력을 과시하는 방법


마케팅 책에는 광고란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해 일정한 판단과 감정 변화를 일으켜 구매 행동으로 유도하는 기업 활동이라고 나와 있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제품과 기업에 대한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고 거짓과 과장도 흔하다는 것을 다 아는데 과연 광고가 소비자의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광고를 ‘돈을 태우는 짓(burning the money)’이라고 비유한 경제학 연구들이 있다. 바보라서 돈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거액의 광고비를 지출하는 행위가 경쟁자들에게 ‘풍부한 자금력’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는 논리다.


소비자는 엉터리 회사의 나쁜 제품이라면 그런 돈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사가 자신의 자금력을 사실로 믿는다면 밑천이 부족한 쪽이 지는 과감한 가격 경쟁에 나서지 못한다.


자기가 돈의 힘을 활용해 연구·개발이나 신제품 출시에 공세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경쟁사의 선택은 더 좁아진다.


30초에 수천만원이 넘는 TV 광고를, 그것도 메인 뉴스에 내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 국민이 보는 뉴스는 ‘시장 세분화’의 개념과 맞지 않고 이어서 나오는 온갖 험한 뉴스들의 기억이 섞이면 시청자의 머릿속에 남는 이미지에도 혼선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메인 뉴스에 광고를 내보내려면 방송사 나름의 필터링을 거쳐야 하고 단발 광고가 아닌 시리즈로 계약하므로 비용 부담이 훨씬 커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금력 있는 회사’라는 점을 입증하는 결과가 된다.


이렇게 ‘TV에 나오는 회사’로 사람들 머리에 기억되고 나름의 정체성을 얻게 되면 채용, 자금 조달, 부품 업체 개발 등에서 더 유리한 자리에 서게 된다.


현대자동차가 1990년대 미국에서 활용했던 ‘10년 무상 수리(warranty)’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만든 제품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그전까지 미국 시장의 품질 기준에 못 미쳐 브랜드 평판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현대차에 10년 무상 수리는 “이 정도 약속을 할 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메시지를 내걸었던 것이다. 이를 ‘문제 있나(Any Problem)’라는 광고 메시지와 함께 큰 효과를 봤다. 다양한 미디어의 출현은 이런 정보 공작에 다양성을 더해준 셈이다.



◆시그널링이 기업 이미지를 좌우한다


역사소설에는 간혹 ‘군대를 어려운 곳에 두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는 이른바 ‘궁즉통(窮卽通)’의 전술이 나온다.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우거나 다리를 끊어버리는 ‘배수의 진’을 대표적인 예로 드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병사들이 죽기살기로 싸우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군사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이런 논리가 전쟁의 현실을 모르는 서생들의 망상일 뿐이라고 한다. 생사를 걸고 나선 전쟁터에서 퇴로가 끊긴 군대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배수의 진을 다르게 해석하면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으니 진짜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서로 조건을 놓고 협상을 시작하자”는 의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량 살상 무기가 나오기 전의 전쟁은 전면적 전투가 그리 많지 않고 서로 세력을 가늠하는 성격이 컸으며 배수의 진을 치면 강화 교섭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비용 면에서는 큰 이득이 없다. 퇴직금과 위로금을 지불하고 줄어든 인력에 대응한 시설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뒤숭숭한 조직 분위기는 당장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자본시장에 ‘주주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시그널로 작용해 주식 가치를 높인다. 주식 가치가 높아지면 추가적 자금 조달이 쉬워지고 경영 개선의 여력이 생긴다.  


인수·합병(M&A)이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것도 주가가 높아지면 참여한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데 유리해지는 점이 작용해서다. 


복잡한 세상일들을 깊숙한 속사정까지 다 알아보고 종합해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직접 자기 사업을 하거나 경영의 책임을 맡는다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제품 소비자나 주식 투자자로서는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의 추론과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때로는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언론 보도나 증권사 보고서 등 정보의 선택과 편집에 일정한 주관과 편견, 혹은 이해관계가 작동하면 이런 ‘오염된 정보’는 실질과 거리가 있는 거품 혹은 허상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이 일정한 이미지로 고착화되면 바꾸기가 어렵다. 과거의 시그널링이 미래의 전략을 구속하기도 한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기업 광고는 대중이 회사의 능력을 믿게 만들고 다른 이해관계인들이 회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회사가 ‘무소불위의 힘’으로 세상을 휘두른다는 음모론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근거가 없을수록 입증하기도 어려우니 그 부담은 상당 시간 계속될지도 모른다. 


세계 최고의 기술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제품을 만들어도 세상 사람들이 그 수월성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은 제품’은 사실은 ‘좋다고 여겨지는 제품’일 뿐이고 훌륭한 경영자도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세상일을 다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소비자로서 혹은 투자자로서 제한된 정보와 추론 능력으로 나름의 판단을 하고 산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와 회사의 전략을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오해나 부족함이 있다면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해 보는 시그널링의 지혜가 더해질 때 애써 노력하며 쌓아 올린 능력들도 더 빛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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