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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막전막후’ 풀 스토리

-KDB산업은행에서 비밀리에 매각 주도…독특한 딜 구조로 협상 타결 이끌어 내

(사진)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익시스 원유생산지장하역설비(FPSO).

[이동훈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글로벌 1위와 2위의 인수·합병(M&A)’.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1월 31일 발표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소식은 국내 재계뿐만 아니라 글로벌 조선업계를 뒤흔들었다. 생존을 위해 자발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던 현대중공업그룹이 대규모 분식회계 등으로 국민 애물단지가 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장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지난해 매각 위한 내부 별도팀 설립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지난해 산업은행 내부 별도팀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산업은행이 보유한 자산을 외부에 매각한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7월 매각이 완료됐고 동부제철도 1월 7일 공개 매각에 돌입했다.


산업은행은 2008년 한차례 공개 매각의 실패를 경험 삼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당시 한화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인수 자금 마련에 실패하며 매각이 결렬됐다. 매각 상황은 2008년보다 더 악화됐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불어 닥친 조선업 불황에 회사의 이익이 쪼그라들었다. 2016년에는 5조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르며 이미지까지 실추돼 인수자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방산 사업 때문에 해외 매각 혹은 사모펀드(PEF)로의 매각이 불가능했다. 산업은행이 기댈 언덕은 동종 업체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둘뿐이었다.


산업은행은 조선업의 수주가 차츰 이뤄지던 지난해 상반기 무렵 삼정KPMG를 매각 주간사회사로 선정한 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모두 비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생존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맨 상태였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현대오일뱅크를 보유해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현대중공업이 인수 파트너가 됐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중공업과 협상이 시작됐다. 현대중공업의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2014년부터 체질 개선을 위한 자발적 구조조정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2조원이 넘는 자금을 주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여력은 없었다. 인수 자금도 부담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수조원의 채무 역시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보였다.


산업은행도 막상 거래를 추진하자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이지만 수출입은행도 함께 엮여 있는 복잡한 구조다. 산업은행은 채무를 보통주로 출자 전환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으로 지분 투자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했다면 수출입은행은 영구채 형태로 투자에 참여했다.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의 영구채는 2조3000억원 규모다. 두 은행 설립 특성상 투자 방식은 달랐지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비슷한 금액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산업은행에서 지분을 매각하는 만큼 수출입은행이 영구채를 상환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수자의 부담은 2배로 커지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을 풀기 위해 마련 방안이 ‘조선합작법인’이라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 설립이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중공업을 물적 분할하고 산업은행은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조선합작법인에 각각 현물출자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조선지주의 지분 28%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가 되고 산업은행은 2대 주주가 되는 그림이었다.


산업은행은 우선 보통주로 7.9%를 받고 동시에 보통주 전환 옵션이 부여된 1조25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챙기기로 했다. RCPS에 대해 상환 요구를 하면 산업은행은 1조2500억원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RCPS의 만기 기간인 5년 동안 매년 1%의 우선주 배당을 실시해 최소한의 수익을 챙기는 구조를 설계했다. 수출입은행 자금 회수를 위해 합작법인 설립 이후 유상증자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지주 등이 참여해 1조2500억원 규모의 조선합작회사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조선합작법인은 신규로 수혈되는 자금을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지원, 수출입은행 등이 보유한 영구채 상환 등에 쓰기로 했다.


다소 복잡한 인수 구조는 현대중공업·산업은행·수출입은행 모두를 만족시키는 묘수였다. 현대중공업은 큰 출혈 없이 시장 가치로 2조원이 넘는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인수하게 됐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쓰이는 자금은 조선합작법인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필요한 4000억원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1조원 정도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지만 모두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채무 상환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역시 각각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며 윈-윈했다는 평가다.


한국 조선업 빅2 체제로 전환


인수 구조가 확정된 1월 31일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공식화했다. 삼성중공업이 인수 거부를 공표하면서 현대중공업이 인수자로 낙점됐다. 현대중공업그룹과 산업은행은 3월 9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받게 되며 이르면 연내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서는 양 사의 노조 설득이 필요하다. 인수 추진 계획이 발표되고 난 직후 양 사의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M&A가 끝난 뒤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 역시 변수다. 글로벌 1위와 2위 업체가 합병하는 만큼 경쟁 국가들의 견제가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현대중공업은 확고부동한 글로벌 1위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말 수주 잔량은 1145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글로벌 점유율 13.9%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잔량은 584만CGT(점유율 7.3%)로 두 회사의 수주 잔량 점유율은 21.2%가 된다. 이는 3위인 일본 이마바리의 525만CGT를 세 배 정도 웃돈다.


특히 중국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퀄컴의 네덜란드 NXP반도체 인수 역시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거래가 무산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국내 조선업계는 단기 실적을 위해 헐값 수주 경쟁을 펼치며 부실 규모를 키웠다. 특히 저가 수주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낙하산 인사→단기 실적을 위한 저가 수주→부실 확대→공적자금 투입’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 산업은 빅3에서 빅2 체제로 전환되면서 이 같은 출혈경쟁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투자로 조선업 경기 회복 기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영업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선사가 선박을 발주할 때는 업체의 매출 규모와 생산능력·신용도 등을 모두 평가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협력하면 모든 요소에서 경쟁력이 강화된다. 자재 조달 측면에서도 바잉파워가 생겨 원가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쇄빙선과 잠수함 등 특수선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 현대중공업의 기술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이나 일본 등과의 경쟁에서도 빅2 체제가 효율적이라는 평가다. 중국은 지난해 자국 내 수주량 1·2위의 국영 조선소인 중국선박공업집단공사(CSSC)와 중국선박중공업집단공사(CSIC)의 합병에 대한 예비 승인을 내리는 등 조선사 합종연횡을 통해 승부수를 던졌다. 일본 역시 2017년 이마바리를 중심으로 한 조선업 재편이 일시 중단됐지만 언제든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2014년부터 실시된 자발적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의 종결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대중공업은 글로벌 조선업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생존을 하기 위해 자발적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2014년 9월 권오갑 부회장이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부임하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호텔현대와 하이투자증권 등 자회사를 매각하는 한편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2017년에는 현대중공업(존속)·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현대글로벌서비스 등 6개사로 분할·재상장하는 지주회사 전환 작업까지 마쳤다. 이는 위기의 현대중공업을 살리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약 5년에 걸친 자발적 구조조정으로 수주 절벽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이 현대중공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2016년 현대중공업그룹은 연결 기준으로 영업손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5.6% 증가한 137억 달러(15조2412억원)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국내 빅3 조선사 중에서 유일하게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하기도 했다.


자발적 구조조정이 끝나가는 무렵에서 이뤄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위기다. 단기적인 재무 압박도 지난 1월 현대오일뱅크 지분 19.9%를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아람코에 매각하기로 하고 1조8000억원을 수혈하기로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 등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조선업 회복 시기까지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인 재무 부담 이슈는 있지만 자금 여력이 있어 충분히 견딜 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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