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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속 ‘스크루플레이션’ 우려되는 한국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소득은 줄고 체감물가 상승 움직임…스태그플레이션보다 서민 더 큰 고통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2019년 기해년이 밝았다. 지난해 나라 안팎으로 대형 악재가 잇달아 터진 데다 경기까지 둔화되면서 우리 국민이 겪은 고통이 심했던 만큼 새 희망을 기원하는 마음은 그 어느 해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세계경제 질서와 경기 면에서 올해는 새로운 방향성이 결정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여 그 기대가 실현될 수 있는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미완성 과제로 넘어온 미국과 중국 간 무역마찰은 올해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시장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간 무역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아르헨티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일정대로 유예기간을 거치고 있지만 기대와 달리 더 강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 속 분열 조짐 보이는 유럽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3년째를 맞는 미·중 간 마찰이 무서운 것은 글로벌 밸류체인(GVC)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GVC는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분업 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세계 교역과 경기를 좌우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수주의 움직임이 기승을 부림에 따라 국가 간 협력과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올해 출발 초부터 1961년 창립 멤버였던 카타르가 탈퇴한 것을 계기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2014년 상반기부터 간헐적으로 제기돼 왔던 ‘OPEC 붕괴설’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는 추세다.


올해 3월 말에는 2016년 6월 이후 2년 이상 겪었던 난항을 끝내고 영국이 유럽연합(EU)을 공식적으로 떠난다. EU는 ‘하나의 유럽’ 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준으로 한다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은 지역공동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된 점을 감안하면 제2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은 인구 대국인 인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나아지리아까지 합쳐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국가가 새 정부 구성을 위해 선거를 치른다. 올해 4월 치르는 인도 선거에서는 2014년 집권 이후 연평균 성장률 7% 이상의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연임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달 치러지는 인도네시아 대선에서는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대통령의 연임은 낮은 경제 성과와 금융시장 불안으로 난항이 예상된다. 약해진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틈타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공화당·민주당 후보자가 잇달아 경선 참가를 선언하면서 ‘2020년 미국 대선’도 조기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적인 면에서 위기 이후 과제인 ‘애프터 쇼크(after shock)’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올해 이후 세계 경기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프터 쇼크의 가장 큰 문제는 부채다. 세계 총부채는 164조 달러, 우리 돈으로 18경원에 달한다. 질적으로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중하위 계층일수록 빚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쉽게 줄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애프터 쇼크의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세계 경기의 지속 성장 과제인 10년 전 금융 위기를 낳게 한 구조가 얼마나 변화됐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기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의해 주도돼 왔지만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와야 애프터 쇼크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세계 경기가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와 설비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소비는 일시적인 ‘부(富)의 효과’보다 임금이 지탱해 줘야 가능하다. 각국의 고용 창출 노력으로 양적 고용 지표인 실업률은 떨어지고 있지만 노동생산성·임금상승률 등 지속 가능한 소비를 지탱할 수 있는 질적 고용 지표의 개선은 여전히 미약하다.


경기순환상으로는 올해는 2009년 2분기 이후 지속돼 왔던 장기 호황 국면이 마무리되고 침체 국면에 진입하는 첫해가 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국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은행(World Bank) 등 세계 3대 예측 기관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작년 3.9%에서 3.5%로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경제는 ‘슈거 하이(sugar high : 일시적 흥분 상태)’ 효과가 사라지면서 올해 4분기에는 1.6%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슈거 하이’는 제프리 프랑켈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길게는 금융 위기 이후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짧게는 트럼프 정부 들어 감세와 재정지출로 경기가 근본적인 개선 없이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해 어렵게 2%대에 진입했던 유럽과 일본의 경제성장률도 올해는 1%대로 퇴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관심이 되는 중국 경제는 미국과의 무역마찰 부담에 과다 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 등 3대 회색 코뿔소 문제로 올해 성장률이 6%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 기관은 보고 있다. 다른 신흥국도 미국과 중국 경제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12월 이후 국제금융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던 미국 중앙은행(Fed)과 다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따로 노는 ‘대발산(great divergence)’이 올해는 더 확대될 것인지 아니면 축소될 것인지 여부도 국제 간 자금 흐름과 금리, 달러 가치, 각국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 움직임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의 달러 정책도 출범 초 약 달러 정책이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지난해 3월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취임 이후 강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 올해 신흥국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2 루빈 독트린’이라고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슈퍼 달러’ 가능성은 낮아


한 가지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Fed가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Fed가 추가로 금리를 올려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되면 미국과 신흥국 모두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슈퍼 달러 시대를 초래했던 대발산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와 함께 또 다른 애프터 쇼크 문제가 인플레이션이다. 세계 예측 기관이 내놓는 올해 전망 보고서를 보면 인플레이션에 할애되는 부문이 1980년 초반 이후 가장 많다. 인플레이션은 다양하게 분류되고 있지만 경제성장과 연관해 경기 침체하에 물가가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 고성장하더라도 물가는 안정되는 ‘골디락스’ 국면으로 구분된다.


종전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에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새로운 용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국 헤지펀드 업체인 시브리즈파티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가 처음 사용한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와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과 구별된다. 후자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경기가 침체되면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지만 전자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쥐어짤 만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체감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중소기업과 국민은 스크루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 한국 경제가 스크루플레이션을 겪는 대표 국가로 보고 있는 점이다. 가계 부채는 1500조원을 넘어 세계 10대 고위험군에 속한 지 오래됐다. 올해 성장률은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는 기관이 많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뛰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스크루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경제 고통(실업률+물가상승률-성장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점이다. 손에 들어오는 소득이 줄어 쥐어짜더라도 체감 물가가 올라 살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새해를 맞아 우리 국민 입에서 처음 떨어지는 이 하소연을 정책 당국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국정 최우선 순위인 ‘민생 경제’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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