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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의 도시 뉴욕에서 ‘로브스터’가 사라진다

-美 경제발전으로 상류층 요리로 자리매김…기후변화로 5년간 번식력 31% 감소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 미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햄버거와 피자다. 서부에서는 특히 햄버거가 가장 유명한 음식이다. 서부 여행을 하다 보면 햄버거를 질리도록 먹게 된다.


하지만 동부, 특히 ‘식도락의 천국’ 뉴욕은 다르다. 뉴욕에 오면 세 가지 음식을 반드시 맛봐야 한다. 바로 스테이크와 베이글 그리고 로브스터(바닷가재)다.


멋진 접시에 조리돼 나오는 붉은색의 바닷가재는 언제나 먹음직스럽다. 살아 있을 때는 푸른색을 띠는 로브스터는 껍데기에 아스타크산틴(astaxanthin)이라는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조리하면 붉은빛으로 바뀐다.


◆‘바다벌레’에서 ‘상류층 요리’…로브스터의 변신


뉴욕에서 팔려 나가는 로브스터는 대부분이 미 동부의 가장 북쪽에 있는 메인 주에서 잡혀 온다. 메인 주는 바닷가재의 주산지로 미국 내에서 팔리는 바닷가재의 80%가 잡힐 정도다.

최근 몇 년간 메인 주는 엄청난 로브스터 수확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1억1000만 파운드(4만9895톤), 시가 4억3400만 달러(약 4930억원)어치의 바닷가재가 잡혔다. 이는 그 전해인 2016년의 1억2500만 파운드, 5억4000만 달러 상당에는 못 미치지만 30년 전에 비하면 다섯 배나 많은 양이다.


로브스터는 요즘엔 누구나 약간의 돈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음식이 됐다. 하지만 1600~1700년대에는 사람들은 바닷가재를 ‘바다벌레’ 수준으로 취급했다. 어쩌다 잡힌 바닷가재는 교도소에 공급되거나 비료로 사용했다. 바닷가재를 잡지 않았기 때문에 메인 주의 바닷가에는 죽은 바닷가재 더미가 50~60cm씩 쌓일 정도였다고 한다.


로브스터에 대한 열광은 1800년대 이후 시작됐다. 사람들이 로브스터를 먹기 시작하면서 파운드당 도매가격이 1센트에서 1800년대 말 13센트까지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중산층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로브스터는 상류층이 먹는 상징적 요리로 정착됐다. 1950년 파운드당 35센트였던 가격은 1989년 2.5달러까지 뛰어올랐다.


미국은 연간 약 2000만 파운드의 바닷가재를 잡아 올렸다. 메인 주 어부들은 이익이 많이 나는 바닷가재 낚시에 앞다퉈 뛰어들었고 낚시 허가권의 가격은 15%나 올랐다. 로브스터 가격은 1999년 파운드당 3.45달러까지 올랐다.


그해 메인 주에서는 5350만 파운드의 바닷가재가 수확됐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2010년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 뒤 광적인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2012년과 2013년은 로브스터 어획에서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만하다. 두 해의 겨울은 유례없이 따뜻했다. 그 덕분에 2013년 메인 주에서는 무려 1억7280만 파운드에 달하는 기록적인 양의 바닷가재가 잡혔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연간 평균 어획량의 여섯 배에 달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고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다. 한국 이마트에 미국 메인 주 바닷가재가 1마리에 1만원에 팔리기 시작하던 때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로브스터 품귀현상


로브스터가 번성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철저한 어업 규칙이다. 미국에서는 바닷가재의 크기가 너무 작거나 너무 크면 놓아 주도록 하고 있다. 메인 주에서 로브스터의 어획 가능한 법적 크기는 눈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3.25~5인치까지다.


둘째 이유로는 로브스터의 주요 포식자인 대구의 남획이 꼽힌다. 천적이 사라지면서 바닷가재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후변화에 따른 서식지의 온난화에 있다. 지난 50년 동안 바닷물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미국 가재의 주요 서식지가 뉴욕 남쪽인 뉴저지 주 롱비치섬 인근 바다에서 지금은 200마일(322km) 북쪽에 있는 메인 주로 이동했다. 로브스터는 화씨 54도(섭씨 12.2도)에서 64도(섭씨 17.8도) 사이의 바닷물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따뜻한 물은 바닷가재의 번식을 돕는다. 통상 7월이 되면 바다 표면 온도가 화씨 50도(섭씨 10도)를 넘으면서 암컷 가재는 짝짓기를 준비한다. 알이 부화되면 유충이 바다 표면으로 떠오르고 어른 로브스터가 될 때까지 세 번 탈피한다. 이는 통상 3~12주 걸리는데 온도가 높을수록 탈피 기간이 짧아진다.


일단 탈피를 시작해 성장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를 때까지 최대 8년이 걸린다. 하지만 수온이 상승하면 어른 바닷가재가 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1~2년 단축된다. 암컷의 성숙이 빨라지면서 번식력도 덩달아 높아진다.


2012년과 2013년엔 바닷물 기온이 평균보다 화씨 4도가 높았다. 이에 따라 로브스터들의 탈피 속도가 빨라졌고 어획 가능한 크기의 바닷가재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 그해에 기록적인 어획을 거둔 이유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의 2억5000만 마리의 바닷가재가 서식하는 메인만의 바닷물은 다른 곳보다 더 빨리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따뜻한 물이 로브스터 개체를 증가시키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온도가 화씨 68도(섭씨 20도)를 초과하면 가재는 호흡하기가 어려워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들은 차가운 북쪽 바다로 도망가거나 아니면 죽게 된다.


고온으로 인해 바닷가재들 사이에 전염병 감염 가능성도 높아진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탈피가 빨라지자 상대적으로 로브스터 껍데기가 얇아지면서 해외 수출 시 선적할 때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미국의 유명 생물학자 크리스토퍼 화이트 씨는 최근 저서 ‘마지막 가재 : 메인 어업의 호황 또는 쇠락?(The Last Lobster: Boom or Bust for Maine’s Greatest Fishery?)’에서 로브스터의 극적인 어획량 감소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예언한다. “현재의 호황이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다. 로브스터의 서식지가 뜨거워지고 있다. 메인 주의 어업엔 파국이 될 수 있다”고 화이트 씨는 경고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지난 5년 동안 바닷가재들의 번식력이 31% 감소했다. 향후 75년 안에 해수 표면 온도가 3%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닷가재는 북으로 북으로 이동할 것이고 메인 주의 따뜻한 바닷물에는 로브스터가 사라질 것이다.


이미 메인 주의 어부들은 이 같은 경고 신호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뉴잉글랜드 지역 남부에서 바닷가재와 대구를 잡던 어부들은 요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검은바다농어(black sea bass)로 옮겨 가고 있다. 검은바다농어는 따뜻한 바다에 사는 난류성 어종이다.

뉴욕 식도락의 상징이었던 로브스터가 점점 희귀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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