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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내가 그만두고 네 일자리가 나온다면.."

조회수 2016. 1. 21. 18: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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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해도 닿지 않는 '중간계급'
나처럼 살지마라.
가난한 부모는 말했다.
출처: h21.hani.co.kr
작은 아파트를 샀고, 아이 공부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름 중산층의 삶을 누렸다.

그런데 내 부모가 그랬듯이, 나처럼 살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할 수가 없다.
출처: h21.hani.co.kr
나보다 나은 삶은 커녕, 나만큼이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가난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말한다. 엄마 아빠만큼이라도 살고 싶다고. 나는 노력하면 성공하는 시대를 건너왔지만, 내 아이는 '노오력'해도 안 되는 시대를 견뎌내야 한다.


중간계급으로의 상승을 점점 더 바라기 어려워지는 한국. 노력과 능력보다 부모의 지위가 최고의 스펙이 되고, 은수저라도 물려주려 버둥대지만 그마저도 위태롭습니다.


대기업의 부장으로 대학생과 재수생 자녀를 둔 김대성(48·가명)씨와 공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취업준비생 최승재(24·가명)씨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교차해 봤습니다.


         #최승재(24·가명)씨  

내 삶의 목표? 

우리 집처럼 사는 거다. 최소한의 기준이다. 아버지는 "우린 중산층이 아니라 서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나도 그런 줄 알고 컸다. 

그런데 학자금 대출 때문에 마이너스 2천만원, 3천만원씩 찍혀 있는 친구들 통장 보니까 그래도 나는 그런 친구들보다 낫구나 싶다. 살아오면서 돈 때문에 쪼들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어릴 땐 아버지 회사 사택에 살았다. 11살에 처음 아 버지가 대전에 집을 샀다. 중고등학교 때 과외는 아니라도 학원은 꾸준히 다녔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랬지.

#김대성(48·가명)씨
요즘 우리 집 고민?

고민의 절반은 재수생 아들이다. 신입사원 면접 볼 때마다 '우리 아들이 이회사에 들어올 수 있을까'싶다. '와'하고 놀랄 정도로 지원자들 스펙이 화려하다.

나는 지방 국립대 출신이다. 1992년 입사할 때만 해도 지방 국립대가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 애들이 월등하다. 아들이 기왕이면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할 텐데..

#최승재(24·가명)씨

20~30대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고 하더라. 동의한다. 부모라면 내 자식이 잘되는 걸 보고 싶을 테니까.

아버지가 대기업 고위직이라면 나도 대기업에 입사했을지도.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서울로 올라온 지 열 달째다. 아버지가 학원비 7개월치 360만원을 신용카드로 긁어주셨다.

처음엔 고깃집 아르바이트로 월 70만~80만원을 벌면서 아버지한테 손 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알바도 그만두고, 집도 원룸으로 옮겼다. 하루에 7시간씩 일하고 새벽에 들어오면 진이 빠져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부모님께 40만원을 포함해서 월 100만원씩 받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주겠다. 부담 갖지 마라"고 하신다.

최대한 아껴쓰려고 한다.

#김대성(48·가명)씨
5~6년 전쯤 서울 금천구에 32평짜리 아파트를 하나 샀는데, 아직 대출금이 1억원 정도 남았다.

매달 100만원씩 갚아나가는 중이다. 2000년에 1억원 주고 빌라를 샀는데 집값이 무섭게 올라서 2억원으로 뻥튀기 됐다. 그 덕분에 아파트에 진입했다.

재수생인 아들에게 수학 과외 등도 시키고 하니, 사교육비로만 월 150만원을 쓴다. 애들 교육비 대주는 거 끝나면 바로 결혼시켜야지. 딸은 5천만원, 아들은 1억원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남자가 중산층으로 제대로 살려면 교육에 우선돼야 하지만, 경제력도 뒷받침돼야 하니까.

#최승재(24·가명)씨
아버지는 노력해서 성공한 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살에 기술직으로 공기업에 취직하셨다. 지금은 연봉도 1억원 안팎으로 안정적이고.

그런 아버지가 처음으로 얼마 전에 "힘들다"고 말씀하시더라. 공기업이라 임금피크제 압박이 커지고 복지 지원이 줄어서 그런 눈치다.

5~6년 뒤에는 회사 그만두겠다며 귀농을 준비 중이다. 강원도에 땅도 사놨다고 하시더라.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닥치는 대로 입사 지원서를 내고 있는데 연락이 안 온다.

아무리 '금수저'가 작동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 압도할 만큼 놓치기 싫은 인재라면 뽑아주지 않았을까 자책하기도 한다.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봐야지.

#김대성(48·가명)씨
나는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다. 지방 국립대를 나와서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것 없이 혼자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또래 친구들보다 나은 편이다. 만 23년의 직장 생활 동안 작았던 회사가 성장했고, 성장하다보니 쫓겨나겠다는 불안감은 크게 없으니까.

이제 보면 친구중에 20%가량만 직장에 남아 있다. 불안이 없진 않다. 회사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회사 정년은 만 58살. 꼭 10년이 남았는데, 모아놓은 건 없고 써야 할 곳은 많고.

노후?

아휴, 머리 아프다. 애들 때문에 노후 준비를 할 여력이 없다. 애들 결혼시키고 대출금 갚고 나면 나한테는 집 하나 달랑 남을 것 같다.

최대한 오래 일해야 한다.


중산층 아버지도, 아들도 여전히 노력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그들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김대성씨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 거렸습니다.
"글쎄, 안 될 것 같기도…지금은 환경이 너무 많이 변해서..상당히 어렵지 않나 싶은데...."
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서울에서 취업준비생으로 아등바등하고 있는 최승재씨에게 아버지는 얼마 전 이런 말을 꺼냈다고 합니다.
"내가 그만두고 네 일자리가 나온다면야. 난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지.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평소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아버지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야기에 승재씨는 놀랐다고 합니다.

승재씨는 계약직이든, 인턴이든, 연봉이 2천만원 이하여도 상관없이 취직부터 하고 싶다고 합니다.

정말 피를 토할 만큼 열심히 해보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아버지처럼 그 문이 열릴 수 있을까요?

황예랑 기자, 이완 기자

기획·편집 박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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