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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 기억나십니까?

조회수 2017. 2. 24. 16: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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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집이 당신들의 집입니다

6년의 내전.
40만 명의 사망자.
500만 명의 난민.


시리아 내전이 남긴,

아직도 갱신하고 있는 숫자들. 

출처: 오스만 사을리
이 아이는 시리아 난민촌에 거주한다.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자 아이는 총을 든 줄 알고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올렸다.

오늘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이 주재하는 시리아 평화회담이 열린다. 평화회담에서는 시리아에 과도체제를 구성하는 계획을 논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6년의 내전은 시리아뿐만 아니라 세계에 깊은 골을 남겼다. 이슬람국가(IS)는 내전을 바탕으로 급성장해 세계를 위협하고 있고,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발생한 난민이슈는 유럽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TV
“유럽 포퓰리즘의 스펙트럼은 좌에서 우까지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 각각 지지층과 지향점은 다르지만 탄생 배경은 비슷하다. 최근 몇년째 지속되는 난민 위기와 유로존(유로화 단일통화권) 체제에서 비롯한 경제 주권의 제약이다.” (<한겨레>, 유럽 양당체제 뒤흔든 포퓰리즘…“기성 정치권 대안 내놔야”)

여러모로 세계를 뒤흔든 내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내전은 어떻게 시작됐고,

또 왜 이토록 끝이 나지 않는가.

출처: 경향신문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아랍권에 불어온 민주화 운동의 바람, 즉 ‘아랍의 봄’은 시리아에도 찾아 왔다. 2011년 1월26일, 하산 알리 아클레라는 사람이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한 것이 시작이었다.


극심한 경제난과 아사드 정권의 공포독재에 시달리던 시리아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시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3월이 되자 시위는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됐다. 그러자 아사드는 군대를 동원해 무력진압을 시도했다. 탱크와 중화기까지 동원된 학살이었다.

출처: AP PHOTO

동포들을 향한 발포를 거부하면서 탈영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탈영해 2011년 8월 창설한 조직이 ‘자유시리아군’이었다. 자유시리아군은 창설 5개월 만에 병력을 4만 명까지 불리며 군사활동을 벌였다. 민주화 운동은 이렇게 본격적인 ‘내전’으로 전환됐다.

출처: 가디언지

시리아 내전은 크게 네 세력이 충돌한다. 정부군, 반군, 쿠르드족, IS.네 세력이 각자의 점령지를 바탕으로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것이 시리아 내전의 양상이다. 


내전이 격화되면서 정부군이 화학무기까지 사용하자 국제사회도 개입했다. UN을 중심으로 미국·EU 등이 반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했고, 아사드 정권의 오랜 동맹인 러시아는 정부군을 도와 직접적으로 참전했다.

출처: 경향신문
ISIL은 지금의 IS.

중동국가의 지원양상이 특히 복잡한데, 주로 수니파인 터키와 아랍연맹은 반군을, 시아파인 이란은 정부군을 지원했다. 시리아는 15% 남짓한 시아파(아사드 정권)가 70% 이상의 수니파(반군 다수)를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참고)


여기에 시리아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내전을 기회삼아 자치정부 수립을 목표로 무장조직을 꾸렸고(참고), IS가 전쟁에 뛰어들면서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정치와 외교와 민족과 종교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전쟁이 된 셈이다. 

출처: 중앙sunday

이처럼 복잡하고 장기화된 내전 속에 남는 것은 폐허와 죽음들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시리아의 고대도시 알레포는 내전 내내 대표적인 격전지가 되어 완전히 파괴됐다. 심할 때는 이틀 동안 200여 차례의 폭탄공습이 떨어질 정도였다.

출처: AP
사진을 클릭하면 내전 전후 알레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문제는 더욱 끔찍하다. 2016년 6월 유엔난민기구 발표에 따르면 2015년 6530만 명의 강제이주민 중 490만 명이 시리아 난민이다. 국경을 넘지 못한 국내실향민까지 합치면 660만 명의 시리아인이 집을 잃고 떠돌고 있다. 시리아 국민의 절반 이상이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전 세계 난민의 절반이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해 해변가에서 발견된 쿠르디와, 폭격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 흘리던 상태로 구조된 오므란. “남아 있으면 오므란, 떠난다면 쿠르디”라는 말은 시리아 아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번 평화회담으로 시리아에 봄이 올까? 회담의 전망 자체는 어둡지만, 희망적인 소식들이 조금씩 들려온다. 유엔난민기구 대표 출신이자 새로운 유엔 사무총장인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시리아 문제를 최우선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또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스페인에서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정부에게 난민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며 거리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우리 집이 당신들의 집이다’라고 외쳤다.

출처: AP=연합뉴스

시리아에 봄이 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난민들에겐 조금씩 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제작 /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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