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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금지가 여성을 죽인다

조회수 2016. 10. 27. 1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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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금지해도 출산율은 그대로, 여성들은 더 죽고, 아이들도 죽는다

낙태 논쟁이 한창이다. 보건복지부가 11월2일까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때문이다.

출처: EPA=연합뉴스
"내 자궁은 나의 선택." 폴란드에서 낙태금지법에 반대해 일어난 '검은 시위' 참가자의 모습.

이 개정안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예외 상황을 제외한 다른 이유로 낙태수술(임신중절수술)을 할 경우 의료인의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과 관련해 여러 단체들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 몸의 자기통제권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입장을 표명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복지부는 10월18일 개정안을 재검토하기 위해 ‘전문가와 국민’을 만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논쟁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그런데 현재 진행 중인 ‘생명’과 ‘선택’ 중 무엇이 우선인가에 대한 논의가 놓치는 지점이 있다.

‘이 변화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는 한국에서 수집된 바 없다. 하지만 낙태수술은 오랜 기간 전세계적으로 논쟁이 되었던 주제이기에 우리가 참고할 만한 몇몇 외국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루마니아의 경험이다.

출처: 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초록색이 낙태 전면 합법 국가. 클릭하면 큰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1966년 루마니아의 국가원수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결정한다. 그 조치는 루마니아의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기인했다. 


‘Decree 770’이라고 불리는 낙태금지법은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으로 법이 폐기될 때까지 23년 동안 지속되며, 루마니아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같은 상황에 관심을 가졌던 루마니아와 세계보건기구의 몇몇 연구자는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지속된 낙태금지법이 루마니아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검토했고, 그 결과를 1992년 미국 공중보건 학회지에 실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결과는 크게 세 가지다.


  1.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증가했지만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2. 고아원 등의 시설에서 자라나는 아이 수가 증가한다.
  3. 모성사망비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루마니아에서 임신중절이 금지된 시기 한 대학생이 불법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나서는 과정을 그린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한 장면.

Decree 770이 시행되고 첫 4년 동안 여성 1인당 출산율은 두 배 증가하고, 조출생률은 14명에서 21명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그러나 출산율 증가는 일시적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법을 피하는 길을 찾아낸다.


* 조출생률 : 인구 1천 명당 태어나는 신생아 수

출처: http://www.occupyforanimals.net/

의사에게 뇌물을 건네 낙태수술이 가능한 거짓 진단명을 받아내는 사람이 늘어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은 의사의 도움 없이 유산하기 위해 위험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 결과 불과 4년 뒤인 1970년부터 조출생률은 다시 감소하고 1985년에는 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온다.


Decree 770이 낙태뿐 아니라 피임 제한까지 포함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낙태금지법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려 한 시도가 실패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출처: Romania Economy Watch
루마니아의 1960-2005 출산율.

금지법을 피하기 위한 우회로를 찾지 못한 여성들은 원치 않은 아이를 결국 낳게 된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고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자원도, 스스로의 동기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시설에 맡겨지게 된다. 열악한 시설에서 아이들은 영양결핍에 시달리게 되고, 이는 유아사망률 증가로 이어졌다.

출처: Isabel Ellsen / Corbis

의사로부터 안전한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많은 여성이 불법 시술을 했고 이로 인해 여러 합병증을 앓으면서 매년 500여 명이 출혈과 감염으로 사망한다.  


낙태금지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1966년에 비해 1983년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7배 높아졌으며, 1989년을 기준으로 루마니아는 주변 국가인 불가리아나 체코보다 9배 가까이 높은 모성사망비를 보였다. 


* 모성사망비 : 신생아 10만명 당 임신과 출산 관련으로 사망한 산모의 비율

그리고 1989년 12월 혁명으로 낙태금지법이 철폐된 다음해에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이전의 절반으로 감소한다. 낙태금지법이 모성사망비 증가의 원인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출처: WHO / Marx21 제작
루마니아의 모성 사망비.

낙태수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뒤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얼마만큼 루마니아의 경우와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우리가 지금 당장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어렵다.  

출처: 강남역10번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 사회에서 낙태에 대한 국가의 실제 입장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급격히 바뀌었다. 1963년부터 시행된 산아제한정책에서 낙태는 음성적으로 활용된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낙태는 매년 30만 건 가까이 행해지고, 이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1980년대는 매년 약 100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낙태의 고려 대상이 된 것은 성별이 여성인 태아였고 이는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가 낙태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인구 감소 우려가 본격화된 2003년 이후였다.

출처: 경향신문 포토뱅크

정부의 입장 그대로 개정안이 시행된다 해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 리 없다. 결국 그들은 법을 우회하는 길을 찾을 것이다. 더 많은 여성이 과학적 근거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하지만 의학적으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낙태 방법에 의존할 것이다.


그리고 강화된 처벌로 인해 더 높은 비용의 낙태수술이 은밀히 진행될 것이다. 그로 인한 1차적 피해는 한국에서 낙태 비용을 낼 수 없고, 수술을 위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없는 저소득층 여성이 감당하게 된다.

누구도 낙태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어느 여성도 즐거운 마음으로 낙태를 위한 수술대에 눕지 않는다. 


그런데 그처럼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낙인과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운, 심지어 의료보장조차 안 되는 그 수술이 지금도 매년 한국에서 20만 건 가까이 행해진다. 왜 그럴까?

출처: 경향신문

우리가 세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면, 원치 않는 임신을 모두 없애고 낙태수술이 필요 없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그런 세상에선 우리가 지금 직면한 예민하고 고통스러운 논쟁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어떤 사회적 문제를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한국 사회에서 그토록 많은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도록 하는 사회적 원인을 직시하고, 낙태 처벌 강화가 가져올 구체적인 결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탁상공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은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글 /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과 교수

편집 및 제작 /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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