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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참관인들이 지난 3월 실시된 독일 헤센주 지방선에서 우편 투표자들의 용지를 확인하고 있다.
나치에 대한 반성이 바탕

학급 운영뿐 아니라 공동 발표 위주의 과제를 준비하면서도 1인 1표 방식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초등학생 때부터 체험하다보니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의 의견만큼 상대 의견도 존중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의 주장이 공동 결정으로 채택되려면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독일인들은 토론의 달인이다.
일상의 민주화를 구현한 독일이지만 지금도 시민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방송(EBS) 같은 독일의 어린이 채널 'KIKA'는 매일 저녁 7시50분부터 10분짜리 어린이 뉴스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난민·환경 등 일상적 주제가 다뤄지는 것 외에 선거 기간엔 정당의 총리 후보가 이 프로그램의 어린이 리포터와 초등학생 눈높이의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2013년 선거에서 당시 만 4살이던 나의 둘째아이는 길거리 포스터에 등장한 총리 후보자의 이름을 이 방송 덕분에 줄줄이 외우게 됐다.

중등과정에 선택과목으로 배치된 ‘정치 수업’이 아니더라도 정치는 중요한 학습 테마로 학교 현장에 반영된다. 획일적인 교육내용(커리큘럼) 대신 수업 시간의 30%가량(주마다 다름)을 교사 재량으로 진행해야 하는 독일의 공교육 규정 때문에 일반화할 순 없지만, 초등학교 6학년인 내 첫째아이의 경우 이번 학기 한 달간 독일어 시간에 ‘나치’를 주제로 공부한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박해했던 사료를 읽고 토론하며, 마지막 시간에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관련한 영화를 함께 본다. 유명한 동물학자 이름을 딴 공립학교답게 환경을 다루는 자연 수업에도 정치색이 짙게 깔려 있다. 4학년 아이들은 한 학기 동안 먹거리에 대해 배우면서 기아 문제, 국가 간 식량 불균형, 공정무역에 대해 토론한다


그렇다면 청년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탈정치화를 막는 해법은 무엇인가?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정당의 민주화다. 독일처럼 주요 정책이나 선거에 나설 후보를 당원들의 1인1표에 의한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하는 원칙 하나만 보장돼도 당원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늘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거대 정당 내부에선 이런 민주적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몇 달간 각 정당의 총선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보았듯, 당대표 또는 공천관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당원들의 의사와 무관한 이들이 대부분 지역구 후보로 결정됐다. 또 어떤 정치적 비전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비례대표 후보로 지명됐다. 시민으로 구성된 당원들에게 의사를 표출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본선에서 표를 달라고 호소하니 국민의 정치 혐오가 더해갈 뿐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번 총선이 국민의 감동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유권자와의 소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이든 현역 의원 공천 탈락이든 후보자 선출이든 모든 선거 업무가 당원 위에 군림한 소수의 과두들에 의해 결정됐다.
탈정치화된 유권자,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 세대를 탓하기 전에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부터 돌아봐야 할 숙제가 우리에게 있다. 또한 정치가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라면,독일처럼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 정당 안에서 정치와 민주주의 작동 원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정치아카데미를 내실 있게 운영하는것도 탈정치화 극복을 위한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