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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가방모찌'였다

조회수 2016. 4. 9. 14: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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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by N기자
우리 아이는 내성적인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아이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대할 때 쑥스러워하고, 친구들이 놀고 있으면 쉽게 섞이지 못해 주변을 빙빙 돌곤 한다.

만 2살 무렵부터 기관에 맡겨진 우리 아이가 5살 무렵 단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되면서 사회생활 서바이벌이 시작됐다. 여자들 사회에서 1과 2는 그 집단의 난민인지 시민권자인지를 가르는 숫자라는 사실을 나도 경험한 적은 있지만 유아기부터 벌써 이런 사회생활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7살 때였다. 아이 단짝도 아이만큼이나 내성적인 편이었는데 어느 날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들이 우리 아이와 단짝 둘을 따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둘은 바보 같으니까 놀지 말자고 그랬단다. 아마 왕따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젖니도 고스란히 남은 아이들의 ‘왕따 흉내’ 정도였겠지만 앞으로 펼쳐질 사회생활이 엄혹해 보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학교생활에 대해 열심히 물어보았다. 대놓고 “단짝이 생겼느냐”고 묻진 못하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무얼 했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다행히 유치원에서 단짝 찾기를 선행학습한 덕에 혼자 다니지는 않는 듯했다. 문제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었다. 종이 울리기 무섭게 아이들이 복도나 운동장으로 나갈 때면 우리 아이는 어어, 하다가 따라나갈 타이밍을 놓쳐버린단다. 워낙에 신발 한 짝 신는 데 1분은 걸리는 느림보다.
그럼 넌 혼자 뭘 하니?
응, 물 마시고, 사물함 정리하고, 책 보고… 그래도 애들이 안 오면 투명한 내 친구를 불러내서 놀지.
아이는 친구들과 섞이는 대신 투명친구를 하나 상상해서 옆에 꿰차고 있었다. 투명친구는 수업시간엔 조용히 있다가 자기가 외롭거나 심심할 때면 나타난단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투명인간과 놀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에서 빠지직 소리가 났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면 정말 그런 소리가 난다.

그러면 안 된다, 너도 얼른 따라가서 놀라고 해도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싫거나 자신이 없는 것이다.

속에서 천불이 난 나머지 아이에게 네가 친구들과 잘 어울린 날엔 사탕을 사주겠다고 달래다가 급기야 내일부터 당장 쉬는 시간엔 꼭 복도나 운동장에 가서 놀겠다고 억지 약속을 받아낸 뒤 아이를 재웠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지금 내가 아이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 무렵 나도 회사에서 인간관계에 크게 치이고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만약 우리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내일 회사 가면 꼭 네가 굽혀서라도 좋게 좋게 지내라고 우격다짐으로 강요했다면 나는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났을까.

실제로 우리 엄마는 이유 막론하고 누구와 갈등을 빚는 사람은 그 사람이 부덕해서라는 공자 말씀으로 내 속을 긁어놓기 일쑤였는데 내가 지금 아이에게 그러고 있었다.

아이가 혼자 노는 게 심심하거나 불행하지도 않고 나름 재미있다는데 대체 왜 굳이 무리 속에 섞여 놀아야 하는 걸까.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나는 그 다음날 아이에게 즉각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투명한 친구와 더욱 사이좋게 지내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투명인간 공이는 마치 실제 친구인 것처럼 우리의 대화에 곧잘 등장했다.

공이는 강아지도 데리고 다녔다. 개도 투명한 덕분에 수업시간에 짖지는 않는다니 그거 하나는 좋았다. 그게 3월의 일이었다. 

4월 중순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친구들 간보기, 혹은 예열을 끝마친 아이는 교실에서나 돌봄교실에서 친구들을 마구 사귀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아이 걱정하던 불면의 밤은 지나간 듯 보였다.

그런데 여러 달 뒤 나는 또 시험에 들었다. 아이는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성격이 강한 친구들과 죽자 사자 붙어다녔다. 어느 날 아이가 무심코 말했다.
어제 내 친구가 선생님한테 혼났다.
왜?
응, 내가 그 친구 가방하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있는 걸 선생님이 봤거든.
뭐라고? 네가 그걸 왜 들어?
친구가 어깨 아프다고 맡기길래 들었지.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번엔 하굣길에 아이가 또 다른 친구 가방을 앞뒤로 짊어지고 오는 것을 보았다. 자기 가방은 자기가 드는 거라고 아이를 타이르고 야단치기도 했지만 아이는 굽히지 않았다. 내가 들어주고 싶어서 드는 거라고. 맙소사 우리 아이는 ‘가방모찌’였다.

그 무렵 아이에겐 다른 친구도 많았지만 아이는 여왕 같은 친구들 옆에서 가방을 들고 다니길 자처했다. 애들 표현대로라면 꼭 그런 친구들과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는 ‘자물쇠 친구’가 됐다.

몇 번 간곡히 말렸지만 아이가 엄마 친구가 아니라 내 친구니까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단호히 말하길래 입을 닫았다. 맞다. 내가 가방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대신 학교를 갈 것도 아닌데 아이 판단에 맡겨야 한다. 아이가 좀더 커서 여물어지고 친구들의 부당한 요구도 스스로 거절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에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왜 꼭 그 친구들과 놀아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때도 많지만 우리 아이가 남자애들한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하면 가서 대신 주먹을 휘둘러준단다. 그러니까 가방모찌는 아이 나름의 서바이벌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속이 편치 않았나보다. 책 <대한민국 부모>를 쓴 정신분석가 이승욱 선생을 만나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 우리 아이가 가방모찌라는 이야길 했다. 그때 나는 아이와 아이 친구들의 관계를 보면서 내가 아이한테 여왕처럼 군림했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아이는 자기주장이 확실한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엄마한테 기대듯 친구들한테 기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다 했다.

그때 이승욱 선생에게 ‘엄마의 나라’와 ‘아빠의 나라’에 대해 들었다. 발달심리에선 아이는 7살까지는 양육하고 보호하며 부모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나라에 있다고 한다. 8살부터 들어가는 아버지의 나라는 사회적이고 공공연하며 개인이 중시되는 곳이다. 우리 아이는 사회적으로는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왔지만 심리적으론 어머니의 나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9살이 된 아이는 이제 단짝 뒤에 숨는 대신 직접 남자애들과의 전투에 나서곤 한다. 자기 말로는 주먹이 약하니까 말싸움의 대가가 됐단다. 자연 가방모찌를 서는 일도 줄어들었다. 내가 아는 한에선 그렇다. 사실 이젠 아이의 사회생활을 내가 잘 모르게 됐다는 말이 정확하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친구들이 생길수록 투명인간 공이는 점점 더 투명해지더니 요즘엔 아무리 불러도 잘 나오지 않는단다. 여전히 순발력이 떨어지는 탓에 혼자일 때가 생기는데 참 아쉽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의 나라를 떠나야 자신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글 N기자

*이 글은 <한겨레21> 1065호에 실린 '너의 목소리가 들려' 칼럼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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