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쪽끼리는 무슨 단톡방이라도 만든거야?

조회수 2021. 4. 22. 0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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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Ryu 딴지 거는 네델란드 유격수들

흐름이 괜찮다. 4회초, 선취점을 뽑았다. 보 비셋의 홈런 덕이다. 1-0. 넉넉하진 않지만 달달하다. 이 정도면 뭐. 몇 이닝 더 지배하는 데 문제없다.

4회 말이 열렸다. 타순이 좀 신경쓰인다. 2번부터 시작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속 안타다. 크리스티안 아로요, JD 마르티네스. 둘 모두 적극적이다. 카운트 1-0에서 첫번째 스트라이크를 공략했다. 전략이 심상치않다.

하지만 괜찮다. 늘 그렇듯, 잘 넘겨주리라. 3회까지도 완벽했다. 위기 때도 흔들림 없다. 무사 2루와 무사 1루를 무사히 넘겼다. 몰릴수록 꼼꼼해진다. 구석구석 파고드는 디테일이다.

무사 1, 2루. 4번 잰더 보가츠다. 초구는 완벽했다. 가장 먼쪽에 낮게 찔렀다. 89마일 패스트볼이 존에 걸쳤다. 그 다음은 대각선 공격이다. 안쪽 높은 코스다. 86마일 커터에 배트가 빗나갔다. 손잡이 부근에 맞아 파울이다. 꽤 울렸나보다. 타자가 손을 털며 쓴웃음이다.

카운트 0-2. 완전히 투수편이다. 중계 카메라는 대기 타석을 비춘다. 3구째는 목적구다. 바깥쪽 백도어 커터(86마일)다. 보가츠가 움찔한다. 몸이 한참 앞으로 쏠렸다. OK. 중심 흔들기에 성공했다. 결정구는 몸쪽이다. 바짝 붙이면 틀림없이 당한다.

완벽한 승부구를 공략당하다

밑작업은 치밀했다. 더 기다릴 게 있나. 곧바로 승부다. 4구째. 가장 깊은 곳을 찔렀다. 91마일짜리의 역습이다. 이건 확신을 가진 공략이다. 배트는 늦게 마련이다. 헛손질이거나, 맞아봐야 파울 아니면 팝 플라이다.

그런데 웬걸. 타이밍이 걸렸다. 팔이 채 펴지지도 않은 스윙 궤도다. 앞쪽에서 걸린 타구가 까마득히 떠올랐다. 그린 몬스터 너머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1-0이 1-3으로 뒤집혔다.

홈 팀 덕아웃은 축제 분위기다. 주인공은 세탁용 카트에 올라탔다. 왁자지껄하고 시끄럽다. 투수는 고개를 돌려 먼산을 바라본다. 희미한 냉소가 스친다.

"공이 들어간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원래는 낮게 던지려고 했는데 높게 간 것이다. 높은 곳에 던지려면 더 높은 곳으로 던져야 했는데 약간 애매했다. 그런 코스의 공이 홈런으로 연결됐다면, 그건 타자가 잘 친 것이다. 구석으로 잘 간 공이다." (류현진 경기후 인터뷰)

이 한방으로 끝났다. 원정팀은 만회할 힘이 없다. 끝까지 무기력하게 끌려가고 말았다.

출처: 게티이미지

놀라운 아루바와 퀴라소 섬

잠시 지리 시간이다. 미국 플로리다 남쪽은 쿠바다. 그 동남쪽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거기서 한참 남쪽이 베네수엘라다. 내로라하는 야구 강국들이다.

그 틈에 작은 섬 2개가 붙어 있다. 아루바(Aruba)와 퀴라소(Curacao)라는 이름이다. 크기는 제주도 1/4, 거제도 급이다. 인구는 아루바가 10만, 퀴라소가 15만 정도다. 네델란드 자치국들이다.

출처: 구글 지도

둘 다 만만치 않은 야구의 나라다. 특히 퀴라소가 유명하다. 그곳 출신 앤드류 존스의 영향이 크다. 2004년 리틀리그 챔피언이 되며 꽃이 폈다. 이후 메이저리그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쏠쏠한 선수 공급원이 됐다. 그 작은 나라에서 여럿을 배출했다. 켄리 잰슨(다저스), 조나단 스쿱(디트로이트), KIA에서 뛴 로저 버나디나 등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빅리거가 될 확률은 50만명 중 한 명 꼴이다. ‘야구의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도 12만 5천명 중에 한 명 꼴 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 도깨비 같은 섬에서는 2만명에 한 명 꼴로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는다.

무엇보다 특이한 게 있다. 뛰어난 유격수들이 많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본래는 주릭슨 프로파(파드레스)가 가장 유명했다. 16살 때 155만 달러나 받고 텍사스에 입단했다. 이후 동네야구 친구들이 속속 따라왔다. 디디 그레고리우스(필리스), 안드렐톤 시몬스(트윈스) 등이다.

잰더 보가츠도 그 중 하나다. 퀴라소 옆 아루바 출신이지만, 결은 같다. WBC 때면 네델란드 대표로 합류한다. 2017년 대회에서는 3루수로 밀렸다(?). 당시 유격수는 시몬스, 그레고리우스는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지역예선 목동 경기서 한국에 5-0 승리.)

2017년 WBC 예선 한국전 모습. 주릭슨 프로파가 홈런을 친 뒤 나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네델란드 유격수들과의 악연

그 무렵 부터다. 네델란드 유격수들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Ryu도 그들과 꼬이기 시작했다.

안드렐톤 시몬스와 악연이 시초다. 복귀에 매달리던 2017년이다. 그래도 에인절스에는 극강이었다. 6월 원정경기. 6회까지 무실점이었다. 호투는 유격수의 2점포 한방에 날아갔다. LAA전 2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도 깨졌다. (다저스 3-2 역전승)

더 큰 문제는 피홈런이 아니다. 앞선 4회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왼 발등을 때렸다. 시몬스가 친 공이다. 내야안타가 됐고, 한동안 주저앉았다. 어느 신문에 제목이 이랬다. '공에도 맞고, 홈런도 맞았다.' 4주 동안 병가를 써야했다.

출처: 게티이미지

그 다음은 젠더 보가츠다. 첫 만남은 월드시리즈였다. 2018년 2차전에 만나 첫 타석 2루타를 헌납했다. (2-4 패전투수)

그 다음이 2019년 7월이다. 2타수 무안타(1볼넷)로 잘 막았다. 7이닝 2실점 호투였는데, 승리에는 실패했다. 1회 실책이 낀 2점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2루수 에러가 된 공이 바로 보가츠의 타구였다. (연장 12회 다저스 7-4 승리)

그리고 어제(21일) 경기다. 2회 첫 타석 때도 찜찜했다. 빠지는 체인지업을 잘 걷어올렸다. 좌익수가 잡아줬으면 좋으련만. 2루타가 되고 말았다. 4회 홈런도 꽤 잘 던진 공이었다. 그걸 어떻게 쳤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할 말 없게 만드는 타구였다. 그거 하나로 승부가 물건너 갔다.

디디 그레고리우스도 잊을 수 없다.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2019년 8월 말이다.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기세가 등등할 때다. 5회 1사 만루에서 일격을 맞았다. 4.1이닝 7실점 패전투수가 됐다. 자신의 최다 자책점 경기다. 시즌 내내 지키던 1점대 평균자책점(ERA)은 2.00으로 올라갔다. 사이영상에서도 멀어졌다.

출처: 게티이미지

유격수란 게 원래 수비하는 자리다. 타격은 7~9번에서 기본만해도 그만이다. 그래야 상대 투수도 숨 좀 쉴 것 아닌가. 그런데 공격도 잘하면 반칙(?)이다. 4번 타자에, 홈런까지 치면 어쩌란 말인가.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출신들은 참 얄궂다. 유격수 강국이라며, 유독 Ryu에게만 딴지다. 마치 자기들끼리 단톡방이라도 차린 것 같다. 공략법, 대응요령, 철저연구…. 그런 걸 나누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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