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듣보잡 된 양현종의 고달픈 도전기

조회수 2021. 3. 15. 0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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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 함유량 듬뿍, 의미있는 호투

꽤 의미있는 경기였다. 어제(한국시간 14일) 등판이 그랬다. 두번째 게임이 밀워키전이다. 2이닝을 막았다. 1안타 무실점. 삼진을 3개나 뺏었다. 텍사스 투수 4명 중 최고 기록이다.

본인도 만족했다. "긍정적이다. 타자와 대결이 좋아지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인구 적응도 나아진다. 사실 투구 밸런스가 100%가 아니다. 그래서 게임 전에 걱정을 했다. 그런데 이것도 차츰 괜찮아진다."

볼배합이 조금 달랐다. 커브가 많아졌다. "한국보다 힘있는 타자들이 많다. 확실히 타이밍 조절이 필요하다. 그걸 위해서라도 (커브의) 구사율을 높여야겠다. 구속에 변화를 주면 아무래도 한 가지 구종을 노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계획된 일이다. 투수 코치(덕 매티스)도 커브를 추천했다. 아마 프런트 사이드에서는 논의가 충분한 것 같다. 존 다니엘스 사장의 코멘트도 있다. "우리 스태프들의 분석이 있었다. 그의 커브는 MLB에서 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출처: 게티이미지

선발 얘기에 정색하는 우드워드 감독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잊지마시라. 그의 신분은 초청 선수다. 40인 로스터는 아직도 남의 일이다. 며칠 전 1차 정리 대상에서 제외됐을 뿐이다. 언제 방 빼라는 말을 들을 지 모른다.

그나마 위안은 있다. 일기예보가 좋다. '내일은 맑음'이라는 사인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런 분위기면 개막(4월 1일) 엔트리도 멀지않다. 감독(크리스 우드워드)의 립서비스도 등장했다. 어제 경기가 끝난 뒤였다.

"패스트볼, 브레이킹볼 커맨드가 모두 좋았다. 좌타자를 상대로도 괜찮았다. 보통 빅리그에서 처음 공을 던지면 얼어붙기 마련이다. 그런데 YANG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마치 자기집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선심은 거기까지다. 더 이상은 선을 긋는다. 선발 얘기가 나오자 정색한다. "우리 팀에는 경력이 풍부한 투수들이 많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던지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뒤에서 길게 던지는 역할이 어울릴 것 같다." (우드워드 감독)

그러면서 나온 얘기가 세컨 텐덤(second tandem)이다. 2인용 자전거의 뒷자리, 즉 선발 뒤에 바로 붙는 투수라는 뜻이다.

구단 홈페이지마저 '얼굴없는 투수'

이날 게임은 모처럼 TV중계가 붙었다. 'FOX Sports 밀워키'가 방송했다. 이 화면이 온라인으로도 서비스됐다. mlb.tv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내내 언짢음이 한가득이다. 5회와 6회. 양현종의 투구 때는 딴짓만 잔뜩한다. 앞에 던진 투수와 인터뷰다. 브루어스의 드류 라스무센이다. 아무리 자기네(밀워키) 유망주라도 그렇다. 라이브 상황에는 관심도 없다. 오디오는 계속 자기들 얘기뿐이다.

그건 그렇다 치자. 지역 방송이니 그러려니 하자. 으레 있어야할 프로필 사진도 없다. mlb.tv 화면에 아래는 허전하기 짝이 없다. 어디 그 뿐인가. mlb.com에도, 심지어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 홈페이지에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있어야할 자리가 영 허전하다.

계약 때문에 합류가 늦었다. 그래서 캠프 초반 (미디어를 위한) 포토 데이 행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벌써 몇 주가 지났나. 아직도 여전한 듣보잡 취급이 야박하기 짝이 없다.

출처: mlb.tv 중계 화면
'FOX Sports 밀워키'의 중계 모습. (아랫쪽) 양현종의 사진 자리는 비어있고, (오른쪽) 중계진은 밀워키 투수와 인터뷰에 여념이 없다.
출처: 텍사스 레인저스 홈페이지
구단의 초청선수 리스트 중에도 얼굴 사진은 없다.

냉혹한 현실, 그러나 퇴색될 수 없는 도전의 의미

스프링 캠프가 이미 중반을 지났다. 합류한 지 3주가 넘었다. 커버하는 우리 취재진들도 꽤 생겼다. 이들은 아직도 애를 먹는 눈치다. 등판 일정 때문이다. 2~3일 전에는 릴리스 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YANG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홍보 파트에서도 답이 늦다. 임박해야 날짜가 나온다. '초청 선수라서?' 괜한 자격지심도 생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음 스케줄이 분명치 않다. 계획이 나와야 할 때다. 몇일 △△전에 몇번째 투수로 나가 X이닝 던지고, 그 다음은 며칠 쉬고 어떻고…. 이런 플랜이 필요할 시점이다.

본인도 더 던지고 싶어한다. 실전을 뛰어야 감이 생기는 탓이다. 하지만 양껏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래도 우선 순위가 다른 탓이다.

"공을 더 던지고 싶고, 이닝도 늘려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 향후 등판 일정을 받지 못했다. 15일 컨디션을 확인한 뒤 투수코치와 투구 일정을 상의할 예정이다." (어제 등판 뒤)

하긴 그렇다. 누굴 뭐랄 것도 없다. 자초한 일이다. 각오하고 갔다. 바닥부터 기겠다는 뜻이었다. 에이스, 최고 투수, MVP, 33살…. 그런 것들 다 버리고 떠났다. 흙먼지 풀풀 나는 험한 길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좋다. 냉혹한 현실을 잘 견디고 있다. 비록 얼굴 사진은 없어도, 도전의 의미마저 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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