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9주년, 모리마츠 아키코 씨 이야기

조회수 2021. 10. 15. 23:2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오늘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 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모리마츠 아키코(Morimatsu Akiko) 씨는 원전 사고로 지금까지 피난민 생활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모리마츠 씨의 일상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로 어떻게 달려졌을까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집 안은 자갈 더미로 쑥대밭이 됐습니다.

지진 재해 후 후쿠시마 생활에서 느낀 위화감. 원전 사고는 점점 일상을 앗아 갔습니다.

'건강에는 지금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침착하게 행동해 주십시오.'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사카로 피난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사카에서 다른 피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 말고도 엄마와 아이뿐인 피난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용기가 났습니다.

오사카에서는 안심하고 공원에 놀러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나가면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원전 사고 이후 1년. 피난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피난 지시가 없는 지역의 피난민에게는 지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찾아야 했습니다.

부흥청 공무원이 참석한 공청회. "피난 주택, 피난 비용, 직장, 학교, 건강 조사, 아이 돌봄을 부탁드립니다!" 현행 제도로는 예상치 못한 사태로 피난을 하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습니다.

피난민 모임에서 같은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피난민을 만났습니다. 저는 다른 피난민들과의 만남으로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의 방침은 '조사하지 않는다, 알리지 않는다, 구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마침내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불필요한 방사능 피폭에서 지키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가질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