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이야기 - 영화 리뷰 '바그다드 카페'

조회수 2019. 1. 31. 10: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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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영화 <바그다드 카페> 포스터

여자는 무엇으로 우정을 쌓는가

같은 우정을 나누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묘하게 다릅니다. 일례로 말이죠. 남자들은 함께 목욕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질 기회를 찾지만, 여자들은 먼저 친해진 다음에 함께 목욕을 한다는군요. 섣불리 먼저 마음을 열거나 곁을 내주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이건 다시 말해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도 되는 사람이란 확신이 없는 한, 타인과 친구의 경계에서 일단 멈춘단 얘기겠죠.


하지만 남자는 이와 또 다릅니다. 사내들은 그런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확신을 심어주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묻지도 않았는데 속마음을 얘기하거나, 친구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개인적인 얘기까지 먼저 꺼내죠.


그걸 나는 당신을 이만큼 신뢰한다는 의미로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남자들에게 목욕탕이란 우정 교습소 같은 공간입니다. 어쨌든 여자의 우정을 남자의 시각에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저는 말이죠. 특히 여자들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이나 속 보이는 흘리기, 걱정을 가장한 호기심 같은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던데요. 그런 게 결국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비아냥을 부르는 주범이잖아요.


신기한 건 말입니다. 이 복잡하고 이해 안 되는 상황들을 여자들은 나름대로 이해하더라고요. 여자의 적은 여자지만 또 여자를 이해하는 하나뿐인 내 편도 여자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씩 덧붙입니다. 보기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한 번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면 남자보다 더 깊고 뜨겁게 평생 동안 서로를 끌어안는 게 바로 여자들의 우정이라고 말입니다.


퍼시 애들론 감독의 <바그다드 카페>(1987)는 이런 여자들의 우정을 그린 아름다운 드라마인데요. 제베타 스틸이 부른 주제가 ‘Calling You’로 더 유명하죠. 바그다드 카페는 텁텁한 모래먼지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카페 겸 식당입니다. 이곳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남편을 버린 여자가 처음 대면을 합니다. 그리고 전혀 닮은 구석도 없고 어울리지 않는 두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평생의 단짝이 됩니다 


퍼시 애들론 감독은 손때 묻은 마호가니 책상 같은 빈티지한 영상미를 선보였는데요. 왜곡과 클로즈업을 사용한 감각적인 연출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의미심장하게 담아냈죠. 개봉한 지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새롭고 감동이 샘솟는 건, 영화 속 두 여자의 우정을 우리 또한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스크린샷

사막에서 발견한 희망

야스민은 독일에서 왔습니다. 여행길에 남편과 다투고 홀로 사막에 버려졌죠. 땀 뻘뻘 흘려가며 흙먼지 폴폴 나는 사막을 걷다가 발견한 카페 바그다드. 물론 처음부터 여기 뿌리내릴 생각 같은 건 없었죠. 더구나 퉁명스러운 여주인 브렌다와는 첫 만남부터 삐그덕거렸으니까요. 그것도 하필이면 브렌다가 구제불능의 남편을 내쫓아버리고 서럽게 울고 있던 참이었죠. 첫인상부터 브렌다는 야스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땡볕이 이글거리는 사막에서 정장 차림으로 돌아다니다니. 암만 생각해봐도 수상합니다. 게다가 외국인이라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 뜨악하고 불쾌한 감정 속에서 일단 하루를 같이 지냅니다.


눈앞의 여자가 마음에 안 들기로는 야스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주대낮부터 서럽게 울고 앉아 있질 않나, 사무실엔 온통 먼지와 쓰레기뿐. 장사를 하는 사람이 도대체 손님을 맞이하겠다는 건지, 손님한테 맞아보겠다는 건지 당최 기본이 되어 있질 않군요. 손님도 없는 너저분한 카페인데 브렌다는 정신없이 바쁩니다. 철부지 남매와 갓난아기 손주까지 돌보느라 쉴 틈이 없죠. 보다 못한 야스민이 바그다드 카페를 열심히 쓸고 닦고 치웁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화사하고 건강한 공간으로 만드는 여자. 야스민은 그런 여자였습니다. 사사건건 방방 뛰며 소리만 지르던 브렌다는 야스민도 자신처럼 말 못할 상처를 가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된 후부터 그녀를 이해하게 되죠. 동병상련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요?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이제 경계를 허문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봅니다.


한편 야스민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구입한 도구로 마술을 선보이며 일약 스타가 됩니다. 찾는 이 하나 없던 변두리 카페가 그녀의 마술을 보기 위해 찾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죠. 덕분에 늘 선인장처럼 가시 돋쳐 있던 브렌다가 지금은 사막에 핀 백합처럼 우아하게 웃습니다.


모든 게 야스민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녀 덕분에 브렌다가 웃음을 되찾고, 카페가 매일 밤 흥청이고, 사막의 밤이 푸른 빛으로 빛날 수 있었으니까요. 야스민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았던 바흐의 평균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된 브렌다. 아마 그녀의 인생은 야스민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야스민은 독일에서 잠시 여행을 온 관광객의 신분입니다. 영원히 바그다드 카페에 머물 순 없는 노릇. 결국 그녀가 독일로 돌아가자 생기 넘치던 카페는 다시 예전의 음울한 분위기로 돌아갑니다. 돌아올 방향을 잃은 부메랑처럼 브렌다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힘겨워만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마법처럼 야스민이 돌아옵니다. 아마 그녀도 독일에서 이곳이 그리워 안절부절했던 걸 테죠? 브렌다를 바라보는 눈빛이 금세 촉촉해집니다. 어느 틈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삶의 의미가 됐습니다.


두 여자는 다시 황량한 사막에 등대처럼 희망의 불빛을 쏘아 올리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겁니다. 바그다드 카페, 벼랑 끝에 선 우울한 인생도 그녀들의 마술이 즐겁게 바꿔놓는 곳. 오늘도 해가 진 사막에 웃음소리가 부메랑처럼 긴 원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스크린샷

바그다드 카페

Bagdad Cafe, 1987

감독 퍼시 애들론

주연 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 CCH 파운더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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