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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연구하며 한국서 40년 산 프랑스 사업가

조회수 2021. 5. 12. 17: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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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기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한국사람들이 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남산 시가클럽에서 만난 피에르 코엔아크닌씨. 올해 4월을 넘기면서 한국생활 만 40년을 기록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국에서 40년 간 살아온 프랑스인 사업가 피에르 코엔아크닌 씨(62).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피에르 바’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여권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확히 40년 전 오늘은 제가 처음 한국에 도착한 날”이라고 말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그동안 겪어온 한국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40년 동안 살아온 유럽인인 그는 한국을 ‘뷰티 & 패러독스’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피에르 코엔아크닌씨의 여권 비자 사진.

유태계 프랑스인인 그는 2017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세계유대인올림픽 ‘마카비아(Maccabiah)’에서 유일한 ‘한국 유대인 대표선수’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입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카비아는 전세계 유대인들이 4년에 한 번씩 모여 47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는 대회. 그는 마카비아 조직위원회에 문의 후 “한국에 오래 살았다면 한국 대표로 참가해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태권도 공인 2단인 그는 유대교 올림픽에서 달리기, 골프, 스쿼시 종목 등에 참가해 왔다. 그는 “서양인의 외모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유대교올림픽에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했다는 것은 매우 뜻깊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1981년 4월27일 첫 입국 당시의 여권. 이십대의 청춘은 이제 육십을 훨씬 넘겼다. 피에르 코엔아크닌씨 제공

태극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기’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의 태극기는 ‘완전한 자유(freedom)’의 상징이다. 자유란 산 속에서 홀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매 순간 순간, 매 초마다 ‘중도(中道)’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당신도 나를 필요로 한다. 


음(陰)과 양(陽),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태극기는 그런 의미에서 원더풀하다. 믿을 수 없게 아름답다. 태극기 안에 모든 원리가 다 들어 있다. 한국인들은 이 아름다운 태극기의 뜻을 어렴풋하게 알면서도, 더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스스로의 아름다운 문화를 잘 모른다.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긴다고 겉으로는 말하면서도, 사실상은 외국문화를 동경해왔다.”

유태계인 코엔아크닌 씨는 1981년 4월27일 서울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무역담당 직원으로 한국에 처음 도착했다. 당시 나이는 23세.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위해 한국에 온 것이었다. 


이후 40년 간 한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해왔다. 프랑스 패션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도왔고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와인, 시가, 화장품, 기계, IT산업 등 무역업에 종사했다. 현재 남산 자락에서 쿠바산 시가와 프랑스 내츄럴 와인을 맛볼 수 있는 피에르 바도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더 서울 라이브’라는 책에 한국의 단군신화에 대한 글을 썼다. 


단군신화에서 주목한 점은 무엇인가.


“모든 나라의 개국신화나 전설에는 2가지 유형이 있다. ‘동굴’(Cave)에서 시작된 나라가 있고, ‘하늘’에서 나온 스토리가 있는 나라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동굴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하늘에서 왔다. 단군신화에는 하늘에 사는 환인,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홍익인간·弘益人間) 땅으로 내려왔다. 


동굴에서 나온 부족은 원래 자연을 지배하고, 길을 닦고, 도시와 교량을 건설하고, 상업을 관리하고, 부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하늘에서 나온 부족의 사명은 영적(Spiritual)인 것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복을 나누고,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두 부족은 음과 양처럼 서로 돕고,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하늘에서 나온 한국은 특별한 나라다. 안 좋은 기운을 잡고, 좋은 에너지를 전할 수 있는 언빌리버블한 힘을 갖고 있는 나라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더욱 특별한 것은 한국의 경우 아버지는 하늘에서 왔고, 어머니인 곰은 동굴에서 왔다. 하늘에서 온 아버지와 동굴에서 나온 어머니가 나라를 세운 것이다. 음양이 잘 조화된 한국은 경제력 뿐 아니라 문화적, 영적으로도 아름다운 미션을 가진 나라다.”

사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국에서 40년간 살면서 가장 재밌거나 인상깊게 느낀 점은.


“가장 재밌는 것은 ‘로컬룰’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은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외국문화도 잘 받아들인다. 그런데 외국문화를 받아들일 때는 한국 스타일로 변형시키는 걸 좋아한다. 골프를 칠 때도 ‘코리안 룰’ ‘로컬룰’을 잘 지켜야 한다. 골프장에서 숲속이나 헤저드, 러프에 공이 들어갔을 때 리커버리 샷을 치는 것은 골프에서 매우 중요하고 가장 재밌는 순간이다. 


그런데 한국의 골프장에서는 숲 속에 공이 들어가면, 대부분 그냥 페어웨이에 공을 꺼내놓고 치라고 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빨리 쳐야 하니까’ 그렇다. 운전에도 로컬룰이 있다. 국제운전룰에 따르면 비상깜빡이는 ‘엔진 이상’과 같은 매우 긴급한 상황일 때 눌러야 하는 버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비상깜빡이를 켜서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40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지금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나.


“처음 왔을 때 파리의 센 강보다 훨씬 넓은 한강을 보고 놀랐다. 한국은 도시 안에 멋진 산과 언덕이 즐비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40년간 한국의 하드웨어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경제적 수치 뿐 아니라 음악, 영화, 올림픽, 축구, 야구, 골프 등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서도 몰라보게 성장했다. 


그러나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따지자면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클레지오도 ‘빛나-서울 하늘 아래’에서 한국과 도시의 근본적인 사회의 모습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은 자기 문화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위대함을 잘 모르고 생활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을 ‘뷰티 & 패러독스’의 나라로 설명하는 이유는.


“이 제목으로 한국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한국은 공동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나라이다. 아름다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숨기는 경우도 많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 이야기는 대표적이다.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버티다가 호랑이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인간이 된 것은 곰이다. 그런데 5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그림이나 도자기, 문학 속에는 곰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반면 산신 할아버지 옆에는 늘 호랑이가 나온다. 호랑이는 한국 국토의 70%인 산의 정령으로 받아들여진다. 


왜 패배한 호랑이는 수없이 많은 작품과 이야기 속에 나오는데, 승자인 곰은 안나오는가. 곰은 엄마다. 그런데 왜 엄마를 안 그리고, 안 보여주는 것일까. 이것이 ‘뷰티 & 패러독스’의 나라 한국이다. 호랑이는 졌는데도, 수천년 동안 곰보다 더 숭배돼 왔다. 단군신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패러독스가 있다.”


그는 1993년부터 중앙대에서 마케팅과 홍보(PR)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글로벌 기업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모토’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다. 나이키의 ‘Just Do it’, 조니워커의 ‘Keep Walking’,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등이 대표적이다.

돈을 좀 벌었다고, 사업이 망했다고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계속해서 내가 하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모든 것은 사람의 인성과 태도, 휴머니티에 달려 있다. 단 한번의 화를 참지 못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사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는 남산 소월로에 위스키와 커피, 와인과 함께 시가를 즐길 수 있는 ‘피에르 시가 바(Cigar Bar)’를 운영하고 있다. 1995년부터 쿠바산 시가를 직수입해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바다. 그는 끝을 커터로 자른 후 토치로 불을 붙인 후 20분~1시간가량 즐기는 시가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즐기는 친교의 문화라고 설명했다. 


와인, 시가를 사랑하는 그가 아끼는 또 하나의 소품은 스쿠터다.


“오토바이는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오토바이는 프리덤(자유)입니다. 중력을 거스르는(anti-gravity) 도구죠. 제 라이프 스타일에서 제 1의 자산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에서 모터 바이크를 탔어요. 을지로 오토바이 골목에서 저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바이크를 타고 많이 갔습니다. 


자유는 내게도, 상대방에게도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는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연결할 수도 있고, 토론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의 긴장들은 다소 극단적입니다. 때로는 갑질과 구속의 형태로 나타나죠. 


스팅의 노래 중에 ‘만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하라(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라는 구절이 있어요. 사랑한다면, 자유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Keep walking) 말이죠.”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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