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현장만 뛰면, 일은 누가하지?"..진짜 검사 이야기

조회수 2021. 4. 25.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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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검사가 말하는 진짜 '여자 사람 검사' 이야기

뜨거운 열정 하나로 거대한 악(惡)과 싸우며 정의를 실현하거나 은밀한 만남으로 그와 결탁해 막후에서 세상을 좌지우지하거나.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에서 다뤄지는 검사는 극과 극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서아람(35) 수원지검 검사,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 김은수 검사(36  ·  필명)가 말하는 ‘진짜 검사’는 조금 다르다. 제2회 변호사시험 동기로 2013년 검사로 임관한 이들 3인은 3월 25일 여성 평검사 첫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라곰)를 펴냈다.

드라마 속 검사 같은 사람만 있으면 일은 누가 하지?

4월, 인터뷰를 위해 서아람 검사와 박민희 검사를 만났다. 김 검사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검사는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잖아요. 현직 검사로서 실제와 가장 비슷하다거나 ‘저건 정말 아니다’ 싶은 모습이 있었나요.


서아람(이하 서) 가장 고증이 잘된 작품은 JTBC 드라마 ‘검사내전’이라고 생각해요. 저자(김웅 의원)가 검사 출신이라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대개의 검사 드라마는 공감할 수 없는 장면이 많은 편이에요. 현장을 뛰어다니며 격투로 피의자를 제압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검사를 보고 있자면 ‘저 검사가 담당해야 할 수많은 사건은 대체 누가 처리하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실제 검사가 현장에 잘 안 나가는 이유는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할 사건이 많기 때문이에요. 1시간만 자리를 비워도 처리해야 할 영장이 수북이 쌓이는걸요. 검사는 사실 사무직에 가까워요.


노동 강도는 어떤 편인가요.


박민희(이하 박) 주 52시간 근무제는 해당되지 않고요, 야근 수당도 없어요. 사건이 계속 터지니까 일은 끝이 없고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죠.

서 야근은 기본이라, 얼마나 더 길게 하는지가 관건이에요. 주말 근무도 해야 하고 당직도 서야죠. 중요 수사를 하는 팀들의 경우 몇 주, 심지어 몇 달간 집에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검찰)청 인테리어(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생긴 별칭)’가 많죠(웃음).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검사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아요.


사실과 다른, 검사 전체를 매도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보면 상처가 되죠.

성실히 일하고 있는데, 미디어에서 잘못 비치는 검사들의 모습만 보고 그런 비난을 쏟아내면 속상해요. 검사들의 실제 모습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여자 사람 검사’를 보면 검사들도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을 거예요(웃음).


책에 밝힌 검사가 된 이유 중 ‘변호사보다 워라밸이 좋고 출산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가 있었는데, 매우 현실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육아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제도가 계속 발전해왔잖아요. 검찰은 일반 사기업보다 이를 보장해주려 노력하죠. 물론 워라밸이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웃음).

서 대형 로펌의 여성 변호사에 비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정도예요.

박 검사는 책에서 방대한 업무량, 끊임없는 야근, 잦은 이사, 여론의 질타 등에 스스로의 인권을 챙길 틈이 없으며 가족들의 인권도 함께 포기돼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의 인권도 포기돼야 했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배우자와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나요.


미안하죠. 남편은 저를 따라 이직을 세 번이나 했어요. 아이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계속 옮겼고요. 환경 변화에 스트레스가 클 텐데 다 견뎌주고 있어서 정말 고마워요. 저희 남편은 저와 결혼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 몰랐을 거예요(웃음). 지금은 잘 이해해줘서 제가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긴 해요(웃음). 저는 양가 부모님 중 어느 한쪽에겐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흰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시곤 하거든요. 정말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더라고요.


두 분 모두 육아휴직을 마치고 올 2월에 복직했는데 육아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은 뭔가요. 제도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거나.


복직할 때 가장 고민 되는 건 베이비시터 구하기예요. 베이비시터의 자격 요건, 서비스의 질, 비용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끔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텐데, 지금은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게 오롯이 워킹맘의 몫이에요. 이런 부분이 개선돼야 지속적으로 양육이 가능한 사회 아닐까요. 현재 워킹맘을 위한 정책은 주로 출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집의 경우 한 달에 베이비시터 5명이 연달아 그만두는 일도 있었어요. 물론 아이들이 연년생인 데다가 어리고, 제가 야근이 잦아 집안일을 못 하는 데다 친정 엄마가 자주 들여다보는, 소위 베이비시터들이 말하는 최악의 조건이긴 하죠(웃음). 육체적으로 워낙 힘든 일이니 시급도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고 싶은데, 통장 사정이 허락해주지 않으니 저도 안타까워요.


책을 쓰면서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신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떤 검사가 되고 싶은가요.


전 원래 친절한 검사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 ‘나를 보고 검사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이 있겠다’ 생각하니 상냥하게 바뀌더라고요. 긍정적인 변화죠. 앞으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귀가 열려 있는 검사가 되고 싶어요(웃음).

긴 고민 끝에 ‘여자 사람 검사’를 책 제목으로 지었어요. ‘여사친’ ‘남사친’을 편하게 부르듯 전 국민이 ‘여사검’ ‘남사검’이라 말할 수 있길 바랐거든요(웃음).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검사가 되는 게 목표예요.


여성동아 2021년5월호 발췌·이현준 기자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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