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새활용' 플라스틱 굿즈, 이 업체서 다 만든다

조회수 2021. 4. 22. 18: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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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프래그랩 대표 "플라스틱 병뚜껑 따는 데 5초, 썩는 데 500년"

당장 출근길 편의점이나 사무실 휴지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길을 걷다가도 발에 차이는 게 플라스틱 뚜껑인데, 그 뚜껑으로 만든 플라스틱 ‘굿즈’를 보니 욕심이 나는 건 왜일까. 지난 주말에도 생수와 음료수 페트병을 분리배출하며 플라스틱 뚜껑 수십 개를 버렸는데 말이다. 

프래그랩이 제작에 참여한 새 활용 플라스틱 제품들. [홍중식 기자]

쓰레기가 탐나는 굿즈로

프래그랩(PRAG-LAB)은 평소 인스타그램 좀 하고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있었다면 본 적 있을 굿즈들을 제작하는 곳이다.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의 100이 새겨진 지역화폐, 시흥에코센터의 분리분링, 제주 재주도좋아 팀과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엘피(LP)와 ‘바라던 바다’ 기타 피크, 카카오메이커스 ‘프라임 피플’을 위한 언택트 키링, 플라스틱방앗간의 새 활용 치약짜개, 모레상점의 비누 받침, 생명다양성재단의 북극곰 보드게임 ‘빙하의 간격’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금형 제작과 사출 등에 참여했다. 


어쩌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주목했을까. “플라스틱처럼 영원하다는 건 좋은 걸까”를 자문하는 이건희 프래그랩 대표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4월 9일 오후 프래그랩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프래그랩 사무실은 서울환경운동연합 플라스틱방앗간과 함께 쓰는 공간에 자리했다. 맞은편에서는 프래그랩 직원들이 한창 디자인 작업 중이었고, 안쪽 공간에서는 플라스틱방앗간 관계자들이 ‘나무 한 그루’ 키링을 제작하느라 분주했다. 

이건희 프래그랩 대표. [홍중식 기자]

프래그랩이 대체 뭐 하는 곳인가. 

“디자인 스튜디오 프래그(Design studio PRAG, 이건희·조민정·최현택)에서 별도 법인으로 설립한 게 프래그랩이다. 2016년부터 프레셔스 플라스틱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작은 장비를 제작하고 있다. 예술과 환경, 기술을 융합한 메이커 교육을 지향한다. 플라스틱 대량 소비와 폐플라스틱 재활용 문제에 주목해 폐플라스틱을 직접 수거하고 세척한 뒤 분쇄해 압출 작업을 하는 일종의 연구소다.” 


왜 플라스틱인가. 


“프래그를 만든 세 사람 모두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평생 금속으로 된 사물을 다뤄왔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고 실물 구현을 위해 세상의 많은 재료를 만지다 보니 플라스틱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초기에는 사회적기업과 협업해 자전거를 업사이클해서 가구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그쪽 분야를 조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재활용에 관심이 갔다.” 


프래그랩의 브랜드 ‘노플라스틱선데이(no plastic Sunday)’는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플라스틱이 미래 환경에는 위협이 되는 시대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플라스틱을 쓰지 않겠다는 작은 실천의 마음을 담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지금까지 재활용한 플라스틱 무게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제품 수가 뜬다. 4월 14일 현재까지 재활용한 플라스틱은 3만8400g, 제작한 제품은 4800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위한 금형 제작과 사출, 재활용 플라스틱 가공에 필요한 장비 설계와 제작, 재활용 플라스틱의 특성을 염두에 둔 제품 디자인 등을 한다. 

 

제로웨이스트 굿즈를 만드는 곳들의 게시글을 보면 ‘프래그랩의 도움으로 만들었다’ ‘프래그랩이 만들어줬다’는 문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왜 많은 이가 프래그랩을 찾을까. 개인이 제작을 의뢰할 수도 있나. 


“플라스틱 자체를 가공하는 건 산업 자체가 워낙 크지만, 프래그랩은 소량 생산을 한다는 것이 다르다. 이 점이 예산이 한정된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금형 제작과 사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나 개인 작업도 의뢰받으면 한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래그는 디자인 에이전시다. 고객이 굿즈 디자인을 요청해오면 진행하는데, 친환경이나 플라스틱 재활용 관련 아이템은 프래그랩에서 담당한다. 사무실을 함께 쓰는 플라스틱방앗간과는 협력 관계로, 플라스틱방앗간에서 수집한 플라스틱을 제품 제작에 사용하고 사출 비용 일부를 기부한다.” 


플라스틱 음료병 뚜껑을 여는 데는 5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 버려지는 병뚜껑은 썩는 데 500년 이상이 걸린다. 역사상 최초의 플라스틱은 ‘여고괴담’ 속 유령처럼 오늘 갓 태어난 플라스틱과 함께 지구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오늘날 지구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 90.5%가 일회용으로 버려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프래그랩의 재활용 발걸음은 아무리 보폭이 작아도 의미가 있다. 


프래그랩에서 가장 많이 재활용하는 건 어떤 플라스틱인가. 

“생수병 뚜껑이다.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소재로, 가공이 쉽고 구하기도 가장 쉽다. 플라스틱 소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때는 PET(페트)부터 PVC(폴리염화비닐)까지 온갖 플라스틱으로 제작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PVC 소재는 환경호르몬 이슈가 있고 그냥도 쓰지 말자는 이야기도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는 PE(폴리에틸렌)나 PP(폴리프로필렌) 소재를 활용해 제품을 만든다.” 

전시를 위해 새 활용 플라스틱 키링을 제작하는 모습. [홍중식 기자]

새 활용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먼저 플라스틱을 모아 오면 종류별로 분류하고, 거기서 다시 색상별로 분류한다. 일차 분쇄를 통해 나온 파편을 색상별로 보관한다. 이후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오면 금형을 제작하고, 특정 색으로 만들고 싶다는 요청이 있으면 모아둔 플라스틱 파편을 배합해 사출한 뒤 제품을 뽑아낸다. 사출 후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수작업으로 다듬기도 한다.” 


집에서 유용하게 쓰는 프래그랩 제품이 있다면. 


“치약짜개는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다(웃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이걸 ‘츄르’ 짜는 용도로도 쓰더라. 여러모로 유용한 아이템이다.” 


제품을 단색으로 깔끔하게 만들 수도 있을 텐데, 마블링을 넣는 이유가 있나.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치약짜개는 구름이나 파도를 연상하게 한다. 


“물론 같은 종류의 플라스틱 뚜껑만 모아 활용하면 단색으로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하는 작업이라 협업하는 분들도 제품 자체에서 직관적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했다’는 느낌이 나길 원한다. ‘이 제품은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품입니다’라고 글로 적지 않아도 마블링 된 컬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품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제로웨이스트가 주목받는 현시점에 관련 작업 의뢰가 늘었나. 


“수년 전만 해도 뉴스에서 ‘이제 중국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받지 않는대’ 하면 우리가 체감할 정도로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확실히 환경 문제와 미래 세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걸 느낀다. 


설립 초기에는 찾아가는 워크숍을 주로 했다면, 지금은 엔드 프로덕트를 만드는 형식으로 일한다. 대량생산이 아니라 공예적 생산 방식을 추구하다 보니 설치가 용이한 기계를 활용하고, 안전하고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키링, 치약짜개, 독서링, 배지, 책갈피 같은 핸드 사이즈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프래그랩은 오브젝트 홍대점에서 노플라스틱선데이, 플라스틱방앗간 주최로 ‘미션: 플라스틱 병뚜껑 3개를 모아오세요!’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다.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숲 키링을 살 수 있는데, 모두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나무 머리와 기둥, 꽃 등 3종의 파츠를 직접 고르고 조립하면 자신만의 ‘나무 한 그루’ 키링이 완성된다. 빨간 꽃은 콜라병 뚜껑을, 노란 꽃은 스팸 뚜껑을 새 활용했다. 이 때문에 색이 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다. 전시에 병뚜껑을 모아 가져가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고, 제품도 살 수 있다. 


올해 프래그랩의 목표는 뭔가. 


“플라스틱 공예 워크숍을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이 어떻게 보면 참 흔한 재료인 만큼, 우리 장비로 개인 창작자에게 작업할 기회를 주고 싶다. 올여름 즈음 10~20명을 모시고 플라스틱 업사이클링을 하는 5주짜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조만간 여러 창작자와 만나길 바란다. 


노플라스틱선데이를 확장해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을 좀 더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환경 문제는 파고가 크다. 이슈가 터지면 많은 이가 관심을 두다가도,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관심이 사그라진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원 순환 문제를 진득하니 바라보며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주간동아 1285호 발췌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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