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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성냥' 들고 美애플 본사 쳐들어간 패기의 한국인

조회수 2021. 3. 26. 18: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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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아날로그]<2>강원도 횡성군 문화성냥

하얀 성냥갑에 까만 픽셀로 애플 매킨토시와 스티브 잡스의 그림을 새긴 증강현실(AR) 성냥. 2019년 여름, 성냥을 가득 채운 가방을 든 한 남성이 싸구려 비행기 티켓을 끊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연고도 없는 애플 본사를 찾아가 “애플 굿즈를 만들었다”며 성냥갑을 내밀던 그는 문화성냥의 김정빈 대표(41)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김정빈 대표. 문화성냥 사무실에는 레트로한 감성을 북돋는 소품들이 가득하다.

문화성냥은 성냥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요즘 같은 21세기에 누가 성냥을 쓰겠냐고 하지만 문화성냥은 벌써 7년째 성냥을 판매하고 있다. 문화성냥의 지난해 성냥 판매량은 3만8000여갑으로 “성냥 제작만으로도 스튜디오 매출에 큰 지장은 없는 편”이란다. 21세기 성냥팔이 사업가, 김 대표를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문화성냥을 만들고 있는 김정빈 입니다.”

“성냥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문화성냥, 그리고 시각디자인·문화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스튜디오를 혼자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 업무는 제품 기획과 영업 전략 등에 특화되어 있고요. 성냥 디자인은 오수하 전 문화성냥 공동대표님과 협업 형태로 진행합니다.”


10여 년 전, 김 대표는 서울 망원동에 디자인스튜디오를 열었다. 거래처를 확장하고 싶어서, 투자가 어그러져서, 서울의 좁은 n평짜리 스튜디오가 아닌 넓은 땅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서 라는 이유로 강원, 제주, 전주, 대전, 세종 등 전국을 누비다 지금은 횡성에 자리를 잡았다. 평범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김 대표가 처음 성냥과 인연을 맺은 건 2015년, 전주에 ‘당각’이라는 성냥 가게를 오픈하면서부터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나그참파와 협업하여 출시한 성냥.

- 처음 성냥을 만들기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5년 전주에 머물던 때 국내외 성냥을 파는 ‘당각’(성냥의 전라도 방언)이라는 가게를 열었습니다. 당시 손님들께서 전주성냥은 없냐는 질문을 꽤 하셨고, ‘성냥 공장 연락처도 있겠다. 직접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공장에 연락을 돌렸죠.”


하지만 성냥이 라이터에 자리를 뺏긴 지 오래된 탓일까? 성냥 제작은 생각처럼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기린표 성냥을 만들던 경남산업공사에서는 “얼마나 팔릴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만들 순 없다“며 거듭 난색을 표했고, 직접 찾아간 성광성냥공업사는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찾은 유엔성냥에서 김 대표의 손을 잡아주어 2016년 첫 자체 제작 성냥을 출시했다.

- 여태까지 어떤 성냥을 만드셨나요?


“지역을 두루 돌며 살다 보니 자연스레 관광지들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지역 특색을 잘 살린 예쁜 기념품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지역기념성냥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주를 비롯해 경주, 제주, 부산, 대구, 독도, 서울 등 41여 종을 개발해 판매했습니다.


또 제로그램, 도프레코드, 가톨릭출판사, 바다보석, 동백문구점, 빈도림꿀초, 카라영, 테라로사, 프리다, 호랑이커피, 나그참파 등 크고 작은 브랜드들과의 협업도 진행했습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브랜드에 죄송합니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문화성냥 사무실 한 켠에 쌓여있는 성냥관련 비품과 재고들.

7년째 성냥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 김 대표의 초창기 성냥은 ‘처참한 실패’였다고 한다. 당시 제작한 초도 물량 2만 여 갑은 고스란히 재고가 되어 아직도 사무실 한 켠에 쌓여 있다.

“반면교사라고나 할까요. 두고두고 바라보며 성냥 디자인 작업 전 쓱 훑어보곤 합니다.“

- 처음으로 납품에 성공한 성냥은 어떤 건가요?


“초기 실패 후 거의 1년간 성냥에는 손도 안 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리삼릉공원이라는 기념품점에서 경주기념성냥을 판매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 성냥이 잘 팔려 지역기념성냥이 전국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불씨가 되었고요. 배리삼릉공원 대표님께는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카페 프랜차이즈 테라로사와 협업하여 제작한 성냥.

- 처음은 실패였지만, 지금은 기업들과 다양한 협업도 하고 계신다고요.


“협업은 보통 세 가지 형태로 이뤄져 온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클라이언트가 직접 의뢰하는 경우, 두 번째는 기존 클라이언트가 소개해는 경우, 세 번째는 제가 너무나 협업해 보고 싶어서 제안하는 경우.


너무나 협업해보고 싶어서 제 마음대로 성냥을 만들어 들고 간 적도 많습니다. 대신 그만큼 퀄리티에 신경을 써서 감동을 주는 거죠. 실제로 이렇게 해서 제안을 거절당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애플에선 거절당했네요!”


-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문화성냥 인스타그램에서 애플성냥 도전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2019년에 미국 애플 본사를 찾아가셨더라고요.


“올해가 스티브 잡스 사망 10주기입니다. 당시에도 이를 염두에 뒀어요. 첨단산업을 선도하는 애플에 아날로그 감성의 성냥을 더하되, 성냥갑에 AR기술을 적용해 아날로그와 첨단기술의 만남이라는 극적인 연출을 도모했습니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김 대표는 최고에 도전해보겠다는 패기로 ‘애플성냥’을 만들어 다짜고짜 애플 본사를 찾아갔다고 했다.

“(애플 본사에 도착했지만) 경비의 완강한 제지에 본사 정문을 두세차례 들락거리기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리셉션 직원이 일단 어떤건지 보자고 말했어요. 회사 소개서와 성냥을 내밀고 열심히 설명을 하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더군요. 직원이 관심을 보이며 제 연락처를 묻고 담당자과 연결해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답을 받지는 못했습니다.(웃음) 한국으로 돌아와 애플 코리아 측에도 제안해 봤지만 회신을 받진 못했어요.”


애플과의 협업은 불발됐지만 독일, 스페인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관광청 담당자 미팅을 통해 공식 기념품점 납품 허가를 받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까사 바뜨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 박물관 기념품점의 러브콜로 바르셀로나 관광청 담당자를 만나 납품을 약속했다. 하지만 통관에서 폭발물로 분류되는 성냥의 특성상 운송 부담이 너무 컸던 상황. 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성냥 조금 팔려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김 대표는 유럽 내에서 성냥을 생산, 유통하기로 했지만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진 않는 법. 지난해 전세계를 흔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산업이 힘을 잃었고, 사실상 유럽지역기념성냥에 대한 고려는 미뤄진 상황이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근데, 왜 하필 성냥을 만들어요?

- 문화성냥 같은 성냥 전문 업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경쟁업체라고 할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오이뮤를 꼽지 않을 수 없겠죠. 그들이 성냥이라는 소외된 매개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주목받게 한 역량은 인정합니다. 다만 저희도 차별화를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습니다. 디자인 레이아웃 이라던가 지기구조, 노랑, 민트, 검정 등 다양한 성냥 두약 색상 개발 등에서 말이죠.”


사실 트렌디한 성냥으로 처음 주목 받았던 업체는 문화성냥이 아닌 스튜디오 오이뮤다. 초기에는 디자인 유사성 등을 이유로 분쟁도 심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길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들은 그들의 강점을 살려 브랜드를 구축해 왔고 저는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왔다고 생각해요. 사실 성냥에서만큼은 오이뮤 같은 멋진 경쟁자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늘 저의 경쟁심리를 자극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도록 만들어 주니까요. 오이뮤의 파급력과 유니크함은 제가 더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해요. 망상에 가깝지만 ‘오이뮤와 힘을 합친다면 과연 성냥으로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이걸 혹시 그 친구들이 읽는다면 진저리를 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출처: 문화성냥 제공
프로파간다시네마스토어와 협업한 시네마 시리즈 '영웅본색 성냥'

- 솔직히 요즘엔 불을 피우기 위해 성냥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굿즈’로서의 성냥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성냥을 굿즈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시도는 늘 어려운 것 같아요. 일례로 작년부터 전략적으로 밀고 있는 시네마매치 시리즈가 그렇습니다. '태워야' 하는 객체 없이도 성냥이 팔리게끔 하는건 단순히 예쁘게만 만들어서 될 일은 아닙니다. 돈을 지불하게 할 당위성을 제시하는게 숙제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영웅본색 성냥’은 제법 잘 먹혔습니다. 영화 속 주윤발이 늘 성냥개비를 물고 있는 장면과 성냥으로 담배 불을 붙이는 장면이 성냥구매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겁니다. 반대로 안 팔리는 시리즈는 영화의 이미지와 성냥이 매치되지 않은거죠.


굿즈는 예쁘게만 만들면 판매는 알아서 될거라며 판매전략은 경시하는 사례를 보곤 하는데요. 저는 (예쁜) 굿즈 제작보다 저희 성냥이 팔릴 파워셀러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 유통망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광범위하면서도 촘촘한 시장을 만들어 140여 종에 달하는 저희 성냥이 매달 한 갑씩이라도 꾸준히 판매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보다 다양한 분들이 문화성냥이라는 굿즈를 ‘경험’해야 더 다양한 수요가 생겨날 거라고 믿어서 입니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사무실에서 성냥 조립에 열중인 김정빈 대표. 문화성냥의 성냥은 디자인부터 인쇄, 박후가공, 접착, 조립 등 꽤 긴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라이터가 보편화되고, 성냥이 일상에서 쓰임을 잃어버린지 오래. 성냥이 잘 팔리긴 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작년에 3만8000여 갑을 판매했고 올해는 5만 갑이 목표”라는 답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많은 성냥들이 다 굿즈 용도로만 팔리는 건지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김 대표는 성냥 판매량의 ‘흥미로운 비밀’을 알려주었다.


“추운 날씨와 코로나19로 인해 실내생활이 주를 이뤘던 작년~올해 겨울철에 집중적인 판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성냥과 함께 팔리는 선향, 캔들 판매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또 습하고 눅눅한 여름 장마철에도 꽤 팔리는 편이고요. 지역기념성냥의 경우 코로나 이전엔 (관광객이 많은)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매출이 집중적으로 발생해요.


하지만 제가 짜놓은 타겟팅 포지션 사이사이 의도치 않은 수요가 발생하기도 해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작년부터 협업한 카라영입니다. 카라영은 작년 문화부장관상을 받으면서 입소문을 탄 선향 브랜드인데요. 차례, 제사를 지낼 때 ‘이왕이면 좋은 향’을 쓰겠다는 분들 사이에서 고급 선향으로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저희가 만든 카라영 성냥도 덤으로 불티나게 팔렸죠.“

- 성냥을 판매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거래처를 찾아 다니면서 겪었던 고충들요. 물론 저의 노력을 높이 사 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성냥을 취급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거나 쫓겨나는 일도 꽤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되려 자신감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성냥도 이렇게까지 팔아본 사람인데 앞으로 뭔들 못 팔까’ 이런 식으로요.(웃음)”

출처: 문화성냥 제공
진관사 태극기를 모티브로 한 성냥.

- 반대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도 있으셨는지요.


"예전에 진관사 태극기를 소개하는 방송을 보고 목놓아 엉엉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길로 무작정 진관사 태극기 성냥을 제작해 진관사를 찾아갔어요. ‘진관사 태극기가 더 많은 분들께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성냥 420여 갑(170만원 상당)을 기부했습니다. 성냥은 진관사 행사 참가자에게 무료 배포되었는데요. 참가자 분들이 감격스러워 하시는걸 보면서 '이걸로 되었다' 고 가슴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에요."

다시 성냥에 불을 붙이다

-성냥만이 가진 매력은 뭘까요.


“‘한정된 시간 안에 단 한 번의 불꽃을 만들고 끝나버리는 그 유한함과 진한 아쉬움’. 솔직히 (예전에는) 예쁜 성냥 제작에만 치중하고 성냥이 갖는 의미나 매력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얼마 전 울산에서 만난 한 스튜디오 대표님께서 하신 이 말이 공감이 됐습니다.”

- 문화성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요즘 관광시장 침체로 지역기념성냥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때문에 규모가 작더라도 차별화 포인트가 명확한 브랜드와 협업 성냥을 확장해 나갈 생각입니다. 또 AR기술을 입힌 성냥을 만들기 위해 IT업체와도 컨택하고 있어요. 연말쯤에는 망원동 콜라보 샵도 계획 중인데,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성냥 라인업을 준비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출처: 문화성냥 제공
문화성냥 제작, 납품 일정이 적힌 3월 달력.

안타깝게도 이제 성냥은 우리 생활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처음 문화성냥을 만들던 때 김 대표가 연락을 돌렸던 경남산업공사는 2017년 폐업한 이후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그보다 이른 2013년 가동을 멈췄는데, 공장은 그대로 남아 현재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 역시 굿즈가 아닌 또다른 성냥의 쓰임에 대해 고민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성냥이 생필품인 제3세계 아이들에게 성냥을 보내주는 캠페인이나. 성냥이 팔릴 때마다 일정 금액을 적립해 나무를 심는 캠페인도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엔 안중근 의사의 제사가 무연고인 전남 장흥서 치러진다는 소식을 보고 진관사 태극기 때처럼 안중근 의사 성냥을 제작해 판매한 수익금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걸 보면 성냥은 생명을 살릴 수도, 지구를 지킬 수도, 위인을 기릴 수도 있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고 봅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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