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아일리시가 선택한 한국계 네일 아티스트

조회수 2021. 3. 21.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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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cm, 너비 1.5cm 남짓한 손톱 위에 바다를 빚어내는 예술가. 세계적인 팝 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리아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팬으로 두고 있는 아티스트. 2021 그래미 어워드에서 2관왕에 오른 빌리 아일리시와 협업하며 전 세계 MZ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국인. 미국 LA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계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30)은 지금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중이다.

아직 오소진 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LA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입니다. 제 이름을 딴 숍 ‘소진 네일’을 운영하고 있고요. 아마 한국에 계신 분들께서 저를 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올해 초 팝 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스페인 출신 가수 로살리아가 함께 발표한 ‘Lo Vas A Olvidar(넌 결국 날 잊겠지)’ 뮤직비디오 속에서 두 스타가 선보인 네일 작업이 아닐까 싶네요. 1월 말 발표된 이 노래는 유튜브에서 조회수 5천2백만 이상을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었죠. 노래가 큰 인기를 끈 만큼, 뮤직비디오 속에서 비중 있게 소개된 네일 아트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여주셨거든요.


빌리 아일리시, 로살리아 같은 세계적인 팝 스타와 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로살리아는 뮤직비디오 촬영 전부터 저와 인연이 있었던 오랜 단골이에요. 로살리아와 빌리 아일리시가 협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에, 네일에 포인트를 주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 같아요. 두 아티스트 모두 평소에도 워낙 멋진 네일 아트를 자랑해오기도 했고요. 수많은 네일 아티스트 중에서 저에게 연락을 해온 이유는 아마도 제가 거의 최초로 3D 네일 아트를 유행시킨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혹시 협업이 예정된 아티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카일리 제너와도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자세한 사항은 아직까지 극비라서 알려드릴 수 없지만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오소진 씨는 세계적인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로살리아의 뮤직비디오 네일 작업을 담당했다. 그밖에도 킴 카다시안, 비요크, 클로이 앤 할리 자매 등 수많은 스타들과 작업을 함께했다.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이나 아트, 패션, 음악, 예술적인 요리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이미 제작된 네일 아트를 참고하는 편은 아니죠. 특히 선호하는 건 자연물이에요. 자연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나 책을 보면서 리서치를 한 후 스케치를 완성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동물학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작품을 특히 좋아해요.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로드 트립이나 캠핑에 시간을 아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접한 자연이 작업의 모티프가 되니까요. 이 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패션쇼, 특히 존 갈리아노나 장 폴 고티에, 헬무트 랭, 알렉산더 맥퀸 같은 천재적인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예술적인 작업인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보통은 하나의 작업에 약 2주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솔직히 시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하하. 인상적인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을 땐 시간을 쪼개 등산을 떠나거나 바닷가에서 명상을 하는 등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해야 하거든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 달 정도 시간이 주어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비요크의 경우, 개인적으로도 열렬한 팬이라서 좀 더 시간을 들여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작품으로 연결하기도 했어요.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재를 선호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이긴 해요. 제가 가장 선호하는 소재는 한국에서 젤 네일로 널리 알려진 빌딩 젤(Building Gel)이에요. 투명한 소재를 가지고 제가 원하는 대로 구조적이거나 조형적으로 빚어낼 수 있어서 좋지만, 결과물이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죠. 절반 정도는 실패하고, 절반 정도만 겨우 성공할 정도예요. 그래서 작업이 오래 걸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답니다. 

열다섯 살에 유학을 떠났다고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 스스로는 활발하고 친화력이 좋은 학생이었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회장이나 부회장을 도맡으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곤 했죠.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학생회에 들어가고 싶어서 혼자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었고, 친구들에게 표를 많이 받아 뽑혔던 기억이 있어요. 유학을 온 이유는 영어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께 듣기로는 서너 살 때 이미 집 근처에 있는 영어 학습지 사무실을 찾아가서 교재를 신청했다고 하더라고요. 유학을 온 후에는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드리는 게 목표였고요.


네일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는 유명 패션 브랜드의 마케터였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네일 아티스트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퀸스대학을 졸업한 후 아메리칸어패럴 미국 본사에서 마케팅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든요. 19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마케팅 매니저를 관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제 업무였어요. 아메리칸어패럴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관리하면서 5백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확보하기도 하고, 의상을 촬영해 룩 북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카니예 웨스트가 론칭한 패션 브랜드 이지(YEEZY)에 스카우트 됐고요. 카니예가 직접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어떻게 돌연 네일 아티스트로 전업을 하게 되었나요.


정말 개인적인 흥미 때문이었어요. 단골 헤어 숍 원장님이 미용실을 미용 학교로 바꾸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네일 아트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네일 아트를 배우던 중, 평소 좋아하던 스쿠버 다이빙을 위해 멕시코로 여행을 떠났다가 제 작업의 큰 주제를 발견하게 됐는데요.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의 독특한 모양새와 알록달록한 컬러를 네일에 접목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제 작업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아예 사업체를 차리게 된 거고요. 

입체적이며 독창적인 오소진 씨의 네일 아트 작품.

개성을 뽐내고 싶어하는 아티스트들, 특히 MZ세대 뮤지션들에게 러브 콜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최근 미국에서는 네일 아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어요. 특히 MZ세대는 뷰티와 패션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데요. 소셜미디어, 그중에서도 틱톡을 통해 저의 작업이 많이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빌리 아일리시와 로살리아가 함께 발표한 ‘Lo Vas A Olvidar’ 같은 경우, 미국 HBO를 통해 방송된 청소년 드라마 ‘유포리아’ 시즌2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되었는데요. 2019년 방영된 시즌1은 내용만큼이나 독특한 메이크업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어요. 인스타그램에서 #euphoriamakeup(#유포리아메이크업)을 검색하면 28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올 정도죠. 이번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도 소셜미디어상에서 제 작업을 따라 한 여러 게시물을 보며MZ세대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고요.


아티스트를 꿈꾸는 MZ세대 청소년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아요.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실패는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하면 모든 기회가 끝날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얻는 교훈이 때로는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모르는 분이 많아요. 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3D 네일 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실수, 실패를 통해서였거든요. 네일 스쿨을 다니던 시절, 빌딩 젤 소재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젤이 흘러내리면서 작업이 수포로 돌아갔거든요. 하지만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여러분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네일 아트를 주로 선보이고 있지만,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도 미술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사진도 다시 찍을 계획이고요. 한국에서 활동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최근에는 한국 뷰티 산업에서 눈에 띄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더라고요. 그들과 손을 잡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작업을 통해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에요. 저는 예술 작업을 통해 저라는 사람의 본질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더 넓은 세상에 영감과 감동을 주는 작업이 되길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Making art that can heal and inspire people!”

여성동아 2021년 4월호 발췌

글 이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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