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교육 아니라 평생교육" 무료강의 고수하는 강사

조회수 2021. 3. 9. 14: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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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하루 앞둔 2월 5일 밤 10시, 유튜브 채널 ‘최태성 1TV’에는 3만 2167명의 동시시청자가 접속했다. 최태성(50) 강사의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전야제’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원래 ‘라방(라이브 방송)’은 50분짜리지만 오늘은 제가 준비해 온 것 다 끝내고 갈 겁니다. 제 목이 터져라 할 겁니다."

다음 날 치를 시험의 예상 문제를 최종 점검하는 ‘한능검 전야제’는 자정을 넘겨 끝났다. 두 시간 내내 래퍼처럼 쏟아내고도 최 강사는 “바로 자지 말고, 제가 써드린 것 1시까지만 보고 자라”며 수험생들을 독려했다.

사진=조영철 기자

스타강사가 강의를 무료공개한다고?

한국사 스타 강사인 최태성 강사는 1997년부터 2016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2017년부터는 ‘이투스’ 소속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광고등학교 재직 시절에는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고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의를 시작했다. 단순 암기를 유도하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는 열정 넘치는 강의 덕에 수강생들로부터 ‘큰별쌤’ 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 수상, EBS 역사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 출제위원 등 경력도 화려하다. 현재 자신이 운영하는 ‘모두의 별별한국사연구소’ 소장이란 직함도 갖고 있다.


최 강사가 사교육계로 온 후에도 고수하는 원칙은 두 가지다. 무료 온라인 강의와 별도 교재가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하고 아름다운 ‘판서’다. 2월 5일 일산 EBS 스튜디오에서 수능 특강 녹화를 마친 최 강사를 만났다. 


- 사교육 시장으로 옮긴 뒤에도 온라인 강의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교육은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또한 역사는 사교육이 아니라 평생교육이라는 체제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을 배우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한국사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판서에 공을 들이는 것도 따로 교재가 없어도 강의 내용을 노트에 옮기면 충분히 수업을 따라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EBS, 이투스, 유튜브에 올리는 기본 강의 내용은 똑같다. 각자 접근하기 편한 채널을 이용하면 된다.”


- 2006년 시작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15년 만에 매년 50만 명 이상이 보는 시험이 됐다.


“기본적으로 이 시험을 도입한 취지는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하자’였다. 단순히 외우는 시험이 아니라 즐기면서 공부하고 한국사의 저변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응시자가 는 것은 기회라고 본다. 취업을 준비하는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온 가족이 함께 시험을 보기도 한다. 응시자의 30% 정도는 교양과 취미 차원에서 도전하는 분들이다.”

“점수 따기보다 접수하기가 어려운 시험”

2021년 2월 6일 토요일 시행된 5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원서 접수 대란이 일어났다. 접수 시작일인 1월 11일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 과부하로 접속 장애가 발생했고, 몇 시간 후 재개됐을 때 이미 마감 인원 7만6000명을 꽉 채웠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부랴부랴 시험장을 확보해 추가 접수를 받았지만 접수 대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남은 자리를 찾아 제주도, 강원도로 원정 시험을 보러 간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급기야 국사편찬위원회가 “채용 시험, 승진 등을 위해 이번 회차 시험이 꼭 필요한 분들만 응시하고 아니면 원서 접수를 취소하는 등 응시를 자제해 달라”고 공식 호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원자들 사이에서 “한능검은 점수 따기보다 접수하기가 어려운 시험”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연간 50만 명이 보면 응시료(심화 2만2000원, 기본 1만8000원) 수입만 100억 원이 넘는데 제발 서버를 증설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올해 첫 시험인 51회 응시자는 12만 명.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심화 6회, 기본 4회) 누적 응시자는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참고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는 49만 명이었다.

- 올해 첫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접수 단계부터 역대급 대란이었다.


“한능검이 공무원 시험을 대체하다 보니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건 시험이 됐다. 수험생들은 절박하다. 한능검 등급이 있어야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년 방학 중 치르는 시험에 응시자가 몰린다. 이번 시험을 놓치면 다음 공부 스케줄에 영향을 받으니 사활을 건다. 여기에 코로나19 영향으로 국사편찬위원회는 시험장 확보에 애를 먹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평소보다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한데, 신학기 개강을 앞둔 학교들이 방역 때문에 빌려주기를 꺼렸다. 오죽하면 응시 자제 요청까지 나왔겠나. 


특수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또 홈페이지 접속 장애로 응시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가답안 해설을 위해 우리 연구원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제주도는 이미 끝났고 강원도에 간신히 추가 접수하자마자 마감되더라. 이번에 국편위에 엄청난 민원 전화가 몰린 것으로 안다. 서버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 응시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애초 시험 취지가 왜곡될 우려는 없나.


“다행인 것은 이 시험이 절대평가라는 것이다. 수강생들 댓글을 보면 ‘우리 모두 함께 1급 받아요’란 말이 자주 나온다. 상대평가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지만 절대평가는 ‘다 함께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다. 절대평가의 건강성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능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시험이다. 반면 학교 내신은 여전히 상대평가다. 변별이 필요하고 함정 문제를 낸다.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시험이다. 그런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학교 현장이 좀 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 누구나 쉽게 1등급을 받는 시험이라면 변별력은 어떻게 하나.


“공무원 시험엔 종종 ‘떨어뜨리기용’ 지저분한 문제가 나온다. 그런 문제는 찍을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변별력이 없다. 반면 한능검에는 연도를 외우지 않아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면 풀 수 있는 ‘신박(신기하고 참신)’한 문제가 많다. 


초기 15회까지는 역사 전공자들도 못 푸는 문제들이 나와 국회 국정감사에 오를 정도였다. 그런 과도기를 거쳐 요즘은 ‘이건 아트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문제가 많다. 제발 국편위가 그런 출제 기조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


-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강의에서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마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멀리 갈 것도 없이 100년 전만 살펴봐도 시대마다 과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항기는 신분제(봉건)로부터 해방,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 광복 이후로는 가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역사는 세대 간 소통의 통로다.”

함께 울고 웃는 축제가 되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51회 한능검 전야제’를 위해 뛰다시피 자리를 떴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생방송은 ‘집단 열공’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해 주었다. 51회 응시자 12만 명 중 4분의 1이 이 생방송에 동시접속했고, 해당 영상 조회수는 16만 회를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2월 6일 오전 11시 40분 시험이 종료되자마자 진행된 ‘가답안 공개’ 영상에는 간증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자격증이 필요해서 반강제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가 선생님 강의 들으며 웃고 울고 있더라고요. 86점으로 1급 합격했습니다.”


“8개월 아기 키우면서 아기 낮잠 잘 때 조금씩 공부해서 94점 1급을 땄습니다. 수능 이후 15년 만의 국사 공부였는데 한 달 만에 좋은 성적을 받게 된 것 최태성 샘 덕분입니다. 경력 단절을 벗어나고자 한발 나선 첫걸음에 좋은 결과를 얻어 용기가 샘솟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을 외우는 건 힘들었지만 그들의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제 인생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정도 반응이면 강의가 아니라 축제다. 최태성 강사에게 예상 문제의 높은 적중률을 축하하는 문자를 보냈다. 답이 왔다.


“많은 분이 행복해하시니 너무 좋아요. 이 맛에 삽니다.”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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