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서 무속인, 유튜버로..인생3막 연 정호근

조회수 2021. 2. 6.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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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배우에서 무속인으로 변신한 정호근(57)의 요즘 활동이 화제다. 그는 유튜브 채널 ‘푸하하TV’ 속 ‘정호근의 기묘한 인생상담소 심야신당’을 통해 배우와 무속인이라는 두 가지 이력을 적절히 버무려 활약하고 있다. 


초대 손님을 불러 점사(占事)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토크쇼인데,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본떠 “심야에 점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가 직접 이름 지었다.


‘심야신당’에서 정호근은 게스트들이 말하지도 않은 속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눈물을 줄줄 흘리게 한다. 동시에 선배 연예인 입장에서 후배들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원인을 분석하며,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점사를 바탕으로 조언해준다. 과거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선덕여왕’(2009) ‘광개토대왕’(2011~2012) ‘굿닥터’(2013) ‘정도전’(2014) 등에서 보여줬던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예전에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 살아서 연기에 힘이 들어갔었어요. 에너지가 충만했던 시기라 강력하게 표현된 듯하고요. 지금은 산전수전 다 겪고, 시퍼런 작두날 위에도 올라가다보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지금은 웃으며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지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그에게는 엄청난 고민과 번민의 시간이 있었다.

"두 아이를 잃고서야 '운명' 받아들였다"

정호근의 집안에서는 대대로 무당이 나왔다. 할머니는 대전에서 꽤 이름을 떨치던 만신(무당)이었고, 정 씨의 누나들도 무병을 앓은 경험이 있다. 그도 같은 운명을 타고났기에 어린 시절이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 친구에게 “너희 집 마루 밑에 귀신 있지?”라고 했다가 진짜 친구 집 마루 밑에서 무덤이 발견됐던 일이나, 가겟집 아주머니에게 “아줌마네 아저씨 아프네? 3일을 못 견디면 아저씨가 죽어”라고 말했던 일화는 방송에서도 자주 회자됐던 에피소드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불우한 환경 탓에 스님이 되려고도 했다.


열여덟 살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휘청거리던 시절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건 바로 연기였다. 고등학교 때 연극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재능을 깨달은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고, 스물한 살에 MBC 공채탤런트가 되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다. 배종옥, 이재룡 등이 그의 대학 동기다.


“제가 무대에 서면 다들 ‘신들린 것 같다’ ‘시선을 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반응에 희열을 느꼈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재능도 있었겠지만 정말 신이 들렸으니까 그랬던 듯해요. 그런데 막상 TV 탤런트가 되고 나니 인형 같은 배우들만 주연이 됐어요. 제겐 눈에 띄지 않는 조연만 주어졌지만, 꼭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연기하다가 결국 기회를 잡았어요. ‘광개토대왕’의 중국인 장수 풍발!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었죠.”

그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연기에 매달렸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딱 그때부터 눈앞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촬영을 하는데 누가 뒤에 반듯하게 서 있더라고요. 안 보이던 게 보이니까 덜덜덜 떨리면서 대사를 뱉을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감독이 ‘정호근, 왜 그래?’ 하더라고요. 당시 스태프들이 저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신기한 체험도 했다. 클로즈업을 위해 진짜 칼을 휘두르다가 실수로 조명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목을 치는 대형 사고를 냈는데 상대의 목은 말짱했다. 겨울이라 딱딱해진 고무 화살촉이 그의 눈으로 날아와 박힌 사고도 겪었다. 실명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화살촉은 안구를 빗겨가 눈 사이 공간에 꽂혀 있었다.


촬영 중 생사를 오가는 일들이 자주 생기고 귀신을 보는 일도 잦아지면서 도저히 배우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무당이 되기 싫어서 버티고 또 버텼다. 결국 그를 무너뜨린 건 두 아이의 죽음이었다. 첫째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생후 2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쌍둥이로 태어난 막내아들도 하늘의 별로 보내야했다.


정호근은 벌써 18년째 기러기 아빠로 생활 중이다. 아내와 세 아이는 미국행을 선택해 그곳에서 정착해 살고 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일 아침 화상통화로, 또 수시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무속인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림굿을 받고 세상에 고백하기로 결심한 뒤 친한 기자를 불러내 힘겹게 사실을 털어놨다. 그런데 그 기자는 아주 당연한 듯 이렇게 말했단다.


“형,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술만 먹으면 좔좔좔좔 풀더라.”


배우 정호근이 무당 정호근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예상은 했으나 일상의 너무 많은 것들이 흔들렸다.


“(무속인이 됐다는) 기사가 나간 뒤부터 갑자기 통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전화도 안 왔고요. 그동안 사이좋게 의리를 나눴던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쫙 빠졌죠. 미국에 있던 아내는 짐작을 했던 모양이에요.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자꾸 피하다가, 결국 제가 내림굿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니 통곡하더라고요. 보름 간 설득을 했지만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신당을 열기 직전 아내가 전화해 ‘내가 잘못했다, 당신의 선택을 응원하겠다’고 전했어요.”

이제 무속인이 된지 7년, 그에게 직업(?) 만족도를 물으니“배우 생활 할 때는 한겨울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에 끝나는 일들이 이어졌다”면서, “지금은 따뜻한 실내에서 일하니 편하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무당이라고 해서 자아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몸속에 신이 있긴 하지만 엄연히 ‘정호근’은 존재한다고.


배우 생활에 미련은 없느냐는 질문에 섭외가 오기도 하지만 나중에 결국 '무당이라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고 전했다. 예능 프로그램 역시 출연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돌이켜 보면 아픔이 있을 때 늘 외톨이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환경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제가 스승의 위치에 올랐을 때 후배들을 감싸 안고 교감하며 상처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 ‘심야신당’에서 하는 것처럼요.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계속하고 싶고, 무속인으로서 무교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글 두경아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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