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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 어린 '승부욕' 내려놓은 조혜련 "이제야 자유롭다"

조회수 2021. 2. 3. 14: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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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1993년 KBS 개그맨 10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조혜련(51)은 억척스런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1990년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MBC ‘좋은날’의 ‘울엄마’에서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억척스런 경석이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 캐릭터의 바탕이 된 인물은 다름 아닌 조혜련 자신이었다.

10대 시절부터 시장에 쑥갓을 내다 팔며 돈을 벌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학력고사 시절 명문고로 손꼽히던 안양여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형편이 어려우니 대학은 포기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겨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공부해 한양대에 입학한 경험이 바로 경석이 엄마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이다.


8남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리며 치열하게 살아 왔기 때문일까. 그 안에는 늘 생존본능에 가까운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조혜련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던 것도 그런 내면의 조바심과 강박이 불쑥불쑥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존본능이 때로는 과도한 탐욕이나 도전욕이 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독기 품은 눈빛...자료화면 보면 깜짝 놀라”

“가끔 TV에 나오는 예전 자료화면 속 제 모습을 보면 저도 깜짝 놀라요. 눈에 독기를 가득 품고 있더라고요. 내가 먼저 해내야 하고, 내가 제일 잘 해야 하고, 내가 제일 튀어야 하고. 그런 욕(慾)들이 저를 무섭게 몰아쳤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서 ‘개그우먼 조혜련’ 하면 떠오르던 분주하고 억척스러운 분위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출연한 MBC ‘라디오스타’에서도 김숙, 박나래 등 쟁쟁한 후배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건 누군가 자기보다 더 튀거나 잘한다 싶으면 속이 상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를 다그쳐 대던 모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안도감에 슬그머니 웃음도 났다고. “이제서야 일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는 그는 확실히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일만 하느라 아이들 마음 헤아리지 못 해

2005년 자력으로 일본 진출의 꿈을 이루었던 그는 일본 진출 1호 개그우먼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뛰어난 어학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참을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던 그때가 그와 가족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할 나이였던 두 아이들이 바쁜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걸 알아챈 건 상처가 곪을 대로 곪은 후의 일이었다.


일본에서의 연예계 생활 역시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어 말로 웃겨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뜻하지 않는 실수를 낳았고, 그런 순간들이 한일(韓日)간의 예민한 정치적 이슈와 맞물리면서 왜곡된 형태로 전달되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그런 소문들이 루머임이 밝혀졌으나 힘들다, 외롭다 한마디 하지 못하고 ‘나는 다 잘할 수 있다’만 보여주려 했던 강박은 그를 점차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제일 가슴에 박힌 건 중학교 내내 전교 1등만 하던 딸 윤아(21)가 명문고에 입학한지 두 달 만에 자퇴를 하고 던진 말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어서였다는 딸의 아픈 한 마디는 긴 세월 묻어두고 살았던 그의 유년시절을 반추하게 했다.

“자퇴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정말 바라는 건 네가 행복해지는 거라고요. 학교는 다닐 수도 안 다닐 수도 있는 거고, 고등학교 같은 건 정말 안 나와도 된다고요.”


그렇게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옆에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윤아는 1년 후 툭툭 털고 일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고 다녀온 아이는 한국으로 돌아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윤아보다 더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아들 우주(19)였다. ‘엄마가 뭐길래’ 촬영 당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대화도 거부한 채 게임만 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울화통을 터트렸던 우주는 어느새 훌쩍 자라 게임 기획으로 유명한 대학의 장학생이 되었다. 


우주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선 것은 2014년 재혼한 남편이었다. 남편은 우주가 ‘아빠’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따를 만큼 멋진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조바심 내려놓고 '나의 일' 마주하기

조혜련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고 도전적이다. 지난해 여름엔 신곡 ‘사랑의 펀치’와 ‘아줌마 좀 봐!’를 준비하면서 줌바댄스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2003년 큰 인기를 모은 그의 태보 다이어트 비디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남편의 제안으로 기획되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와 한국에 있는 여자아이 2명, 남자아이 1명을 후원하고 있는데 여력이 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어요. 남편과 저 사이에는 아이가 없지만 이 아이들이 저희에겐 새로운 축복이거든요.”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준비하던 연극을 다시 하게 될 듯하고, 그 외 뮤지컬이나 웹드라마, 연극, 영화 같은 것들을 디렉팅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확실한 것은 악바리 같고 조급해 보이던 예전의 조혜련이 아닌 한결 여유롭고 행복한 만능 엔터테이너 조혜련으로 한 발 한 발 느긋한 걸음을 내딛을 것이라는 점이다.


글 김지은 / 사진 홍중식 기자

사진제공 조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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