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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앞당긴 '주4일제',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조회수 2021. 1. 30.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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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토일일' 괜찮을까?

코로나19 이후 ‘주4일제’ 논의가 조금씩 움트고 있다.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으로 근무 조건이 다양해지면서 ‘9 to 6’, ‘주5일제’ 등 기존 근무 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여행, 면세점, 호텔 등 일부 업종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찬성: “불필요한 업무 줄고 효율 올라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와 엔씨소프트 등은 지난해 한시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했다. 방역을 위해 회사 내 밀집도를 낮추면서 자녀를 학교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는 직원들의 육아 부담도 고려한 조치였다.


완벽한 주4일제가 아니더라도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주4.5일제’를 시행 중이다. SK는 코로나 이전부터 계열사에 따라 한 달에 하루나 이틀씩 금요일에 쉴 수 있다.


주4일제를 경험한 직장인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장모 씨(36)는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들고 소통 속도가 빨라졌다”며 “조직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67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2.7%가 가장 원하는 근무형태로 ‘주4일’을 꼽았다.

반대: “월급 줄어들까 걱정”

물론 긍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월급을 이전만큼 받을 수 있느냐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1.2%는 ‘급여 감소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호텔업계에 종사하는 정모 씨(37·여)는 “하루를 더 쉬는 만큼 월급이 20% 줄어들었다. 쉴 때도 업무 메일이나 단체 카톡방을 확인해야 한다”며 “차라리 주 5일 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인건비 감축을 위해 주4일제를 도입한 기업에선 비슷한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기본급 대비 각종 수당의 비중이 높은 한국의 기형적인 임금 구조를 고려할 때 일하는 시간이 곧 소득으로 직결되는 노동자들은 근무 일수가 줄어드는 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주4일제로 워라밸 수준을 더욱 높이는데 한쪽에선 여전히 주6일 근무도 감내해야 하는 노동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 “생산성 우려”… 해외는 어떨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질랜드 금융기업 퍼페추얼가디언

- 2018년 기존 임금 유지하며 주4일제 도입

- 생산성 20% 향상

- “나는 회사에 헌신한다”고 답한 직원 비율 68% → 88%

- 워라밸 만족도 54% → 78%


마이크로소프트 재팬

- 2019년 주4일제 시범도입

- 업무 생산성 39.9% 향상


기업이 주4일제 도입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생산성’ 우려 때문이다. 산술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20% 줄어드는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등 근무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높이거나 유지한 사례도 적지 않다. 미래학자 알렉스 수정 김 방(Alex Soojung-Kim Pang)은 지난해 출간한 책 ‘쇼터(SHORTER)’에서 주4일제나 하루 6시간 미만 근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기업 1000여 곳을 소개했다. 이들이 효율을 높인 비결은 다음과 같았다.


- 회의 시간과 규모 줄이기

- 근무 시간 리디자인(3시간 집중업무, 협업 및 소통 시간, 휴식시간 등으로 나눠 관리)

- 업무자동화를 위한 사내 인프라 개선

- 공간 재배치로 업무 효율성 향상

주4일제,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주4일제는 단순히 ‘덜 일하고, 더 쉬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계나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현실도 반영된 결과다. 기술 발달로 업무 효율이 높아져 짧게 일해도 기존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일자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근무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더 일찍 공론화시켜 미리 준비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을 노동자들이 얼마나 감수할지, 소득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지원은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지 등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권 교수는 “주4일제 도입 논의의 핵심은 임금 보전이다. 노사가 서로 양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가령 근무 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인다면, 3시간은 생산성 향상으로, 2시간은 노조가 임금을 양보하는 형태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주4일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주4일제를 주제로 릴레이 토론회를 진행 중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주4일제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며 “기본급 비중이 낮은 임금구조,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제도 개편 등 노동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안처럼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민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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