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중반부터 '사이보그'로 살아 온 경험, 글로 씁니다"
"초인으로 묘사되는 사이보그지만
현실에선 삐걱거리는 게 일상입니다.
기술을 발달시키는 것보다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1987년 1편이 나온 영화 ‘로보캅’에선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 경찰관이 범죄자를 소탕한다. 범인에게 희생된 머피의 뇌에 기계 팔과 다리를 결합한 사이보그 경찰관은 범죄자들이 쏜 총알을 모두 튕겨낸다. 발길질이나 주먹질을 당해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최근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출판사)를 펴낸 김원영 변호사(39)와 소설가 김초엽 씨(28·여)는 18일 인터뷰에서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했다.
이들은 현실 속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에서 각각 장애를 보완하는 휠체어와 보청기를 쓰는 자신들을 사이보그에 비유했다.
김 변호사는 “기계와 긴밀히 결합해 삶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많은 장애인들은 현실 속 사이보그와 같은 존재”라며 “사이보그가 영화 속에서 전형적인 히어로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기계와 결합한 삶은 불편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사이보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2018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 변호사는 공상과학(SF) 작품을 쓰는 김 씨에게 “장애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3급 청각장애인으로 과학을 전공했고 소수자들에게 주목한 작품을 써 온 김 씨라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장애를 앓아온 두 사람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룬 글을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동과 대화가 자유롭지 않은 두 사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함께 책을 써내려 갔다.
책에는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 변호사는 장애가 법률 업무 수행에 큰 지장을 주지 않지만, 그의 사건 처리 능력을 의심하는 사회적 편견을 종종 겪는다고 했다.
또 장애를 지닌 이들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페티시즘’을 비판했다. 사이보그를 홍보하는 영상매체에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베푼 온정의 수혜자로 등장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씨는 발음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외국인인가” “치아 교정 중인가”라는 말을 듣곤 한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이런 일상 경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됐다.
김 씨는 2019년 펴낸 소설 ‘원통 안의 소녀’(창비)에서 원통 안에 갇혀 사는 한 소녀가 연민의 대상으로 비치는 문제를 다뤘다.
김 씨는 “장애 여성으로서 대상화되는 삶,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방식, 자선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술을 최첨단으로 발달시켜 훌륭한 사이보그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기술을 인간에 가깝게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저의 현실을 바꾼 건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제가 수업을 들었던 대학과 인턴을 했던 로펌 앞에 놓인 작은 경사로였다”며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학교 정문에 경사로가 놓이면서 학교를 다니고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장애인들의 이동 문제는 특정한 기업이나 단체가 장애인들에게 베푸는 시혜와 자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평등과 정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