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 없는 김치, 해외에서 팔아봤더니.."

조회수 2020. 12. 8.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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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만든 김치, 살짝 익은 김치, 묵은지, 달달한 김치, 젓갈 넣은 김치, 담백한 김치… 김치만큼 맛 취향이 확실하게 갈리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같은 배추김치를 만들어도 발효 정도나 양념 종류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자연스레 김치 취향도 사람마다 다 다르죠. 자주 먹는 음식이다 보니 그만큼 입맛 기준도 까다롭습니다. 어쩌면 김치야말로 고객의 취향을 맞추기 가장 어려운 음식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식품업계 사람들이 있습니다. 풀무원 김치사업부 정규진 PM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사무실에서도 김치를 먹고, 퇴근길에는 온 몸에 김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민망할 지경이라는데요. 한 가지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한다는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PM)는 평소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하나부터 열까지 총괄하는 직무, PM

PM은 어떤 일을 하나요.


제품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PM입니다. 신제품 출시부터 관리, 마케팅 계획 수립, 집행 등 전체 과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관리를 하다 보니 유관부서와 연락하는 경우도 아주 많아요. 한 제품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부서와 연락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최근에 저희 풀무원에서 ‘김치 렐리쉬’라는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이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잘 알리기 위해서 쉐프님들이 모여 있는 ‘풀스키친’이라는 부서에 갔어요. 쉐프님들과 같이 김치 렐리쉬를 활용한 메뉴도 개발하고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기도 하고, 외주로 사진작가분도 섭외해서 촬영도 했고요. 이렇게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또 포장개발팀과 만나서 차별화된 패키지 개발 건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로 하고요. 영업팀, 구매팀 등 다양한 팀들과 만나서 출시 일정이나 수급 관리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웁니다.


처음 입사하셨을 때부터 김치 사업을 담당하셨나요?

원래 처음 입사했을 때는 글로벌 부서였어요. 해외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거든요. 풀무원 김치가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면서 지난해부터는 김치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배추김치, 기타김치, 가공김치 등등 풀무원에서 만드는 김치제품들의 개발, 홍보, 마케팅을 다 관리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평소에도 김치를 많이 드시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자주 맛을 볼 수밖에 없어요. 김치는 생물과 비슷하거든요. 원재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맛의 편차가 정말 커요. 그러다 보니 주기적으로 제품의 맛과 향을 확인해야 해요. 이걸 ‘관능을 확인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제품의 관능과 품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수시로 먹어봐야 합니다. 


자연스레 사무실 안에서 김치 냄새를 풍기기도 해요.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가끔은 냄새 때문에 다른 분들께 미안하지요. 김치를 많이 먹은 날에는 퇴근길에도 온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요.

정 PM은 “하루 종일 김치 생각만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같이 장 보러 가는 것도 싫어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마트에 가면 어느새 본래 목적은 잊어버리고 김치 매대로 달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회사 제품 패키지는 어떤지, 신제품이 나왔는지, 영양성분 표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주로 구매하는 연령대는 어떤지 등등 살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고 합니다.

사진=풀무원

정말 김치에 진심을 다하시네요. 집에서는 김치를 어떻게 드시나요?


원래 저희 집에서는 매년 김장철마다 김장을 했어요. 포기김치 총각김치 다 했죠. 그런데 제가 김치 PM이 된 뒤로는 좀 달라졌어요. 샘플을 가져가서 가족들에게 한번씩 먹어보라고 줬거든요. 그랬더니 하루는 어머니가 마음에 드신다면서,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희 ‘톡톡 씨앗 유산균’ 얘기를 했더니 그 유산균 좀 사오라고(웃음). ‘김치는 힘들어도 집에서 담가야 한다’고 하시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풀무원 김치 사서 드시고 계세요.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만들다 보니까 맛이 좋아요.


해외에서도 김치 반응이 좋잖아요. 해외사업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외국에서도 한참 전부터 김치가 팔리고는 있었지만 한국 김치와는 달라요. 표준화도 안 되어 있고, 한국 김치는 맛이 깊은데 외국 김치는 신맛만 강하게 나는 편이었죠. 회사에서는 ‘한국식 김치를 제대로 알려야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전북 익산에 공장을 세우고 한국 땅에서 난 재료로 전통방식 그대로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단 국내판매용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는데요. 용기 자체를 좀 더 길쭉하게 개발해서 김치가 공기와 닿는 표면적을 최소화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발효를 늦출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젓갈을 쓰지 않은 비건(채식주의) 김치도 해외에서 먼저 좋은 반응을 얻은 제품이에요. 해외 소비자들은 젓갈에서 비린내가 난다면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종교, 동물보호, 환경보호, 건강 등의 이유로 채식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늘고 있어요. 풀무원은 식품첨가물에 정말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김치를 만들 때도 자연재료에서 감칠맛을 얻기 위해서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덕분에 좋은 제품이 나왔고요.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일할 때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아까 김치가 생물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부분 때문에 좀 힘들어요. 완제품 맛이 항상 일정해야 소비자들이 믿고 살 수 있는데, 원물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지니 품질관리를 정말로 철저하게 해야 하죠. 똑같이 만들었는데 어떨 때는 짜고, 어떨 때는 싱겁고. 아삭하고 맛있던 제품이었는데 얼마 뒤 먹어 보니 그렇지 않고. 이러면 김치를 담당하는 PM으로서는 속상하고 힘이 들 수밖에 없어요.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요.

또 힘든 점은 소비자들의 김치 취향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식이잖아요. 어릴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 주신 김치를 먹고 자라다 보니 자기 입맛에 익숙하면 맛있는 김치고, 낯선 맛이면 맛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이 부분은 ‘익숙함’ 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저희 풀무원 내부 직원분들도 “이번에 나온 김치 맛없다”고 하다가, 몇 번 드셔 보신 뒤에는 “먹다 보니 맛있네”라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품질 자체는 좋은데 소비자마다 선호하는 맛이 다르니 그걸 다 맞출 수가 없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사진=풀무원

매일매일 도전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네. 저희가 최근 출시한 제품이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김치 렐리쉬’ 인데, 렐리쉬가 뭔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렐리쉬는 건더기가 많고 걸쭉한 소스처럼 활용할 수 있는 양념이에요. 과자에 찍어 먹거나 핫도그 속에 넣을 수도 있고요. 활용하기 참 좋은데 이름이 낯설어서 홍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희도 내부적으로 영업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신제품을 들고 신나서 가져갔더니 “렐리쉬가 뭐예요?” 라고 하시더라고요.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고 해서 고민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나초칩을 가지고 가서 찍어 먹는 걸 보여드렸더니 맛있고 신기하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PM일을 하면서 힘들 때도 많지만 세상에 없던 제품이 저와 담당자들 손에서 탄생해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기운이 나요. 내 손이 닿은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먹어보고 즐거워하는 걸 보면 그 동안 힘들었던 게 순간 싹 잊혀질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앞으로는 김치렐리쉬를 많은 분들이 쉽게 즐기게 하고 싶어요. 새콤달콤하고 맛있거든요. 메뉴개발이나 콜라보를 통해서 제가 담당한 이 제품이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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