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MC 정은아 "어느덧 중년, 몸 변화 인정하고.."

조회수 2020. 9. 30.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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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제의가 왔을 때 대뜸 그랬죠. ‘제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프로그램이었으면 좋겠는데, 자신 있으신가요?’ 하하. 지금 생각하면 내가 뭐라고,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2014년 말 김진 PD가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 '나는 몸신이다'의 진행자 자리를 제의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MBC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KBS ‘비타민’ ‘스펀지’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보 프로그램을 두루 섭렵한 자신을 메인 MC 자리에 앉히고자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자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번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오히려 정은아 자신이었다. 지난 6년간 ‘몸신’ 제작진과 함께하며 가장 많이 배운 것은 겸손이었다고. 한 편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해외 논문까지 뒤져가며 열과 성을 다하는 제작진의 모습에 전문가인 의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어떨 땐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도 않은 해외 논문들을 제작진이 먼저 찾아와 의사 선생님들께 물어보곤 해요. 선생님들은 제작진이 가져온 새로운 정보를 확인해보셔야 할 정도니, 덕분에 그분들도 공부를 더 많이 하실 수밖에요. 사실 오한진(가정의학과 전문의)·임경숙(임상영양학 박사) 선생님은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권위자들이거든요. 그런데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늘 열린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나눠주려 애쓰시죠. 이런 과정들이 너무 열정적이고 애정이 넘치셔서 모두가 서로에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방송인, 공과 사 분리되기 힘든 직업"

한때는 일과 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싶어 선을 긋고 벽을 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과거의 수많은 정은아들이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무슨 운동을 하고 또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가는가가 자신의 삶을, 그리고 일상의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아나운서 정은아’를 만들어왔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파트너십 이상으로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가’ 그 결과가 방송을 통해 보이는 거더라고요. 어찌 보면 공과 사가 절대 분리될 수 없는 직업인 거죠. 그래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켜나가는 게 정말 중요해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요. 지금 제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을 담당하고 있는 스태프는 모두 가족이자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동료 이상의 끈끈한 무언가가 있죠.”

장래 희망은 '호기심 많은 할머니'

이제는 쉰을 훌쩍 넘긴 중년의 나이, 누가 뭐래도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아나운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름 앞에 달리는 ‘노련함’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노련함이란 건 좋기만 한 단어가 아니더라고요. 그만큼 무엇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지 않고, 표현도 진부해질 수 있으니까요. 편하고 익숙한 것에 젖어 있기보다 약간은 불편하고 낯선, 그런 긴장감이 좋아요.”


중요한 건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어와 중국어 공부를 하며, 기타와 키보드 레슨을 받는 것도 익숙함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자신을 채워나가고픈 바람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매주 새롭게 접한 정보를 직접 실천해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는 일은 일상이 늘 신선할 수밖에 없는 비결이다. 지금까지 300 회를 진행했으니, 적어도 300가지의 새로운 실천을 해낸 셈이기도 하다.


“저는 아직도 인생이 너무 재미있어요. 어쩌면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생각이 열려 있어 그럴 거예요.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난생처음 접하게 되는 식재료들도 많은데, 저는 그런 것들을 시도해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음식을 꺼리기도 하고, 맛이 이상하다고도 하는데 전 새로운 맛이면 다 맛있더라고요. ‘맛있다’라는 말 속에는 ‘재미있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거잖아요. 아마 나이가 더 들면, 여전히 호기심 많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예요(웃음).” 

50대, 몸의 변화 인정하고 돌볼 시기

자기 몸을 바꾼다는 건 스스로의 변화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렵지만, 때로는 그것이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를 리셋해야 하는 순간과도 맞닿아 있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그에게도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운동을 해도 예전만큼 근육이 붙지 않았다. 생활의 리듬을 찾기가 어려워 마음에 불안이 드리워진 적도 있다.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활력 넘치던, 근력이 충분하고 대사량이 높던, 무언가 한 번 보면 꼼꼼하게 다 잘 기억하던 그런 정은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를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누군가 저 같은 사람은 ‘자기가 대형차인 줄 알고 살아가는 소형차’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희한하게 통증도 잘 못 느끼고, 소화가 안 되거나 그런 적도 손에 꼽을 정도라 저는 항상 건강 체질이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검사를 해보면 그렇게 좋지만도 않아요. 하고 싶은 게 많고 그만큼 열의도 크지만 내 몸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늘 과사용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뜻일 거예요. 이제는 조금 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내 몸이 가진 한계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여전히 호기심 충만하지만 스스로의 변화를 인정할 줄 알게 된 중년의 정은아는 사소한 약속이나 해야 할 작은 일 한 가지도 모두 메모해두고, 건강을 위해 꼬박꼬박 정기검진도 챙겨 받으며, 모든 일에 욕심 부리지 않고 에너지를 적절히 나눠 쓸 줄 아는 새로운 자아가 생겨났다. ‘몸신’은 이런 시간들을 잘 견디게 해준 고마운 인연이다.


“몸을 놓지 말고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의 몸은 항상 정신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몸에 대한 도전은 스스로의 멘탈을 건강하게 바로잡는 지적인 도전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요.”


글 김지은 ·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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