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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뒤에 항상 있었던 '이것' (feat. 만 원)

조회수 2020. 8. 27. 12: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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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방문이 어려워진 요즘, 코로나19 완전종식을 기원하며 JOB화점과 고궁박물관이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 문화재에 깃든 사람과 직업 이야기를 전문가의 생생한 해설과 함께 들려드립니다.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들은 과연 누가 만들었고 누가 사용했을까요? 

만 원 지폐, 얼마나 자세히 보셨나요

나라를 대표하는 위인들만 올라갈 수 있는 그 곳, 바로 화폐 앞면이죠. 카드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예전만큼 현금을 만질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5만원 하면 신사임당, 만 원 하면 세종대왕 모습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릅니다.


특히 세종대왕은 만 원권 지폐가 처음 발행되었던 1973년부터 꾸준히 모델(?) 자리를 지켰기에 더더욱 익숙하지요. 만 원권 지폐에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다는 건 다들 알지만 대왕님 뒷배경(신권 기준) 그림까지 눈 여겨 보는 분들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출처: 동아DB
세종대왕님 뒤에 있는 글씨는 용비어천가(뿌리 깊은 나무는~)입니다. 그렇다면 그림의 정체는?

모두들 흘긋 보고 지나쳤던 바로 이 그림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 그림) 병풍’ 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일월오봉도 병풍 원본이 전시되어 있지요. 


일월오봉도는 국립고궁박물관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왕실유물 중에서도 국민투표 1위로 뽑힐 정도로 인기도 많고 상징성이 큰 유물입니다. 일월오봉도의 모든 것, 국립고궁박물관 임지윤 학예연구사와 함께 파헤쳐 보았습니다.

해, 달, 산 등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일월오봉도의 각 요소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해는 양, 달은 음, 가운데에 있는 다섯 개 산봉우리는 오행을 의미한다는 해석이에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은 궁궐 안이든 밖이든 임금님이 잠깐이라도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설치되었습니다. 임금이 앉아 계신 뒤편에는 늘 이 병풍이 있었지요. 국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이랍니다."

'경이물훼' 화첩에 실린 '영묘조구궐진작도' 일부 확대. 영조 때 경복궁 근정전 터에서 베푼 연회를 그린 그림이다. 왕의 의자인 용상,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 병풍으로 임금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선시대에는 어진(왕의 초상화)을 제외하고는 왕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왕이 참석한 잔치 장면을 그릴 때도 왕의 형상을 그리지 않고 일월오봉도 병풍 앞에 빈 의자를 그려놓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들을 보면 당시에는 일월오봉도 병풍을 ’오봉산병(五峯山屛)’ 또는 ‘오봉병(五峯屛)’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일월오봉도 병풍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중인 다양한 일월오봉도 병풍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일반 백성은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을 쓸 수 없었나요?


"조선 말기에는 궁중 그림의 일부 주제가 민간으로 전해지고,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월오봉도 병풍 같은 경우에는 민간에서 만들어 사고 팔았다거나 장식화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지금까지도 없어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이었던 만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신 일부 무속신앙 그림으로 차용되어서 쓰인 흔적은 있었습니다."


임금님만 쓸 수 있던 병풍이니 아무나 그릴 수도 없었겠네요.


"궁궐에서 사용되었던 모든 그림은 궁중 화원, 즉 조선 최고의 화가들이 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김홍도나 장승업 같은 궁중 화원들이 있지요. 


궁중 화원이 되려면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요. 어렸을 때 ‘도화서’라는 그림 그리는 관청에 들어가서 생도가 되고 난 후에 ‘취재’라는 국가 공채 시험에 합격해야만 화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통 화원이 되는 평균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였다고 해요. 늦어도 20세 이전에는 화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화원이 되어서도 정규직으로 고용이 안정되지는 않았고요. 일 년에 몇 차례씩 다시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용과 생계가 불안정한 직업이었지요. 그래서 궁중 화원들은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했습니다. 문인 사대부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그림을 남기기도 했고요."

단원 김홍도가 그린 풍속도를 모은 '단원풍속도첩' 중 '춤추는 아이'(왼쪽 그림), '씨름'(오른쪽 그림).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웹사이트

일월오봉도를 그리려면 정말 뛰어난 화원이어야 했겠네요.


"정확히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야 그릴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우 숙련된 화가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김홍도 같은 경우는 29세 때 영조 어진(임금 초상화)을 그렸지요. 하지만 그것은 천재 화가인 김홍도였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진을 그릴 자격을 갖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월오봉도를 활용한 부채, 에코백 굿즈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국왕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장면. 임금님의 의자인 용상과 일월오봉도 병풍, 좌우 꽃 장식까지 기록과 똑같이 배치되었다. 촬영=권혁성PD hskwon@donga.com

조선 최고의 ‘금손’ 화원들이 그려낸 작품 일월오봉도.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활약할 때 주인공 전용 배경음악(BGM)이 깔리듯이, 임금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용 배경그림이 놓였던 것이죠. 신권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 뒤에 일월오봉도를 넣은 건 딱 알맞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국왕실’에서는 그 옛날 왕이 앉아 있던 자리배치 그대로 놓여 있는 일월오봉도 병풍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꺼내 들고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겠죠?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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