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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외국인 근로자 0명, 농촌 비상…’서울사람’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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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경험이 있고, 미용실도 오래 운영해 손도 빠릅니다.” 


20대 아들과 함께 온 정모(57) 씨가 인사를 건넸지만 수박농장주는 못미덥다는 눈치입니다.


“수박 순지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열심히 해보세요.”


6월 15일 오후 4시 양구군농업기술센터에서는 조촐한 대면식이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온 근로자들이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 농장주, 담당 공무원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계약서를 쓰는 자리입니다.

6월 15일 양구군농업기술센터에서 농장주와 서울에서 온 근로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조영철 기자]

2015년 법무부는 특정 계절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 농어촌 인력난을 해결하고자 3개월짜리 ‘외국인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각 지자체가 외국인 인력을 신청하면 그만큼의 인력이 입국해 각 농촌으로 파견됩니다. 올해는 45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단 한 명도 입국하지 못 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오지 못 한 대신,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도시 사람들이 농촌을 찾고 있습니다. 단기 구직을 위해서입니다. 


서울시와 경남도 등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휴업·휴직 중인 도시 근로자와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연결하는 사업에 나섰고, 경북도는 대학생에게 농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시로부터 이 사업을 위탁받은 농업 관련 스타트업 ‘푸마시’는 5월 28일 오씨를 포함해 ‘서울 사람’ 22명을 양구군 농가에 파견했습니다.

6월 15일 강원 양구군 푸른솔농원에서 농장주와 서울에서 온 근로자가 함께 사과나무 적과 작업을 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6월 15일 오후 3시께 찾은 양구군 사명산 중턱의 푸른솔농원에서는 서울에서 온 신모(58) 씨와 김모(58) 씨가 한창 사과 적과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30도 가까운 낮 기온과 뜨거운 햇살에 피부가 금세 달아올랐습니다. 신씨는 “사과 열매가 햇빛을 잘 받도록 위로 향한 큰 열매만 남기고 나머지 잔 열매는 다 잘라내야 한다”며 “가지에 난 싹까지 깨끗이 잘라야 쓸데없는 곳으로 영양분이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씨는 서울 강서구 한 개척교회의 목사. “코로나19로 신도들의 수입이 감소한 데다, 비대면 예배까지 하게 되면서 헌금이 줄어들었다”는 그는 “용돈이라도 벌자는 생각해 농촌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토박이인 김씨는 “처음 하는 농사일이라 낯설었지만, 2주가량 지나니 익숙해졌다”면서 “여기서 배운 기술을 나중에 귀농하면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일자리난(亂)을 겪는 청년도 양구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양구군청이 숙소로 제공한 마을회관에서 서울 광진구에 사는 백모(25)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일하던 고깃집이 폐업해 지난해 9월 이후 실업급여로 생활하다 올해 다시 구직에 나섰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백씨가 취업 지원을 한 곳은 모두 10개. 두 곳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곳은 출근 날짜를 무기한 연기했고, 다른 한 곳은 “격일로 일해달라”고 했습니다.


백씨는 “취업할 데가 마땅치 않아 당장 생활비를 벌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며 “농사일 경험은 없지만 젊으니까 ‘한번 해보자’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정오, 그리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파프리카 수확 작업을 하는 그는 “20일간 일하는 조건으로 내려왔는데,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습니다.

6월 15일 강원 양구군 오이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서울에서 온 근로자들이 한창 오이를 수확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일손 절실한 농촌...일당 치솟아

농촌도 도시 사람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손이 부족해 몇몇 농가는 올해 일부 농사를 포기하거나 웃돈을 주고 옆 마을에서 일손을 빌려오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709개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0%가 전년 동월에 비해 ‘인력 구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일례로 외국인 근로자 70명을 요청했던 경북 봉화군은 수박 순지르기(수박의 곁순을 잘라내는 작업)를 할 일손이 부족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6월 말까지 수박 순지르기를 해주지 않으면 수박 크기와 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송대호 봉화마을영농 총무는 “외국인 근로자가 1명도 오지 않아 지난해 대비 인력이 30% 감소했다”며 “주말에 서울 등 외지에 사는 가족을 내려오게 하거나, 인근 인삼공장 근로자를 교통비 줘가며 불러온다. 일당이 8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양구군도 올해 6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신청했지만 단 1명도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서울에서 온 사람을 배정받은 농가는 한시름 놓는 분위기입니다. 

'일 잘 하겠어?' 선입견 깨는 도시 일꾼들

도농(都農) 간 인력 중개가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서울 사람은 농사일을 못한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이의덕 푸른솔농원 대표는 “회사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일하던 사람이 농사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한 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고된 밭일을 이겨내지 못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사전에 막고자 푸마시는 사전에 서울 근교 농가에서 현장테스트를 합니다. 평가 항목은 업무 태도, 작업 능숙도, 뒷정리 등등. 5월 21일부터 닷새간 실시한 현장테스트에서 지원자 150명 가운데 합격자는 41명에 그쳤습니다.


김용현 푸마시 대표는 “현재 양구군 농장에서 일하는 서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농장주가 처음에는 ‘곧 제풀에 쓰러지겠지’라는 눈초리를 보내다 사흘간 지켜본 뒤에는 ‘일 잘한다’ 하고, 점심 반찬도 달라진다고 하더라. 귀농에 도움 되는 조언도 해준다”며 “지난달 1차 접수 때 11곳이던 인력 중개 신청 농가가 이달 2차 접수 때는 17곳으로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오이농장을 운영하는 윤씨도 “더운 나라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도 50도 넘는 비닐하우스 일은 힘들어한다. 서울에서 온 일꾼들이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해줘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강원 양구=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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