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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점심산책: 지금 딱 장미 시즌, '서울로 7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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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하다 보면 점심 먹다 체할 것 같은 상황이 종종 생기게 마련.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오직 나만을 위한 점심시간 한 시간, 한낮의 산책을 즐기는 직장인의 이야기.]

중림동 쪽에서 서울로 7017로 올라가는 길

<2> 서울역 옆 공중정원에 장미가 피었다, 서울로 7017


약현성당에 이은 두 번째 산책코스는 서울역 고가공원. 솔직히 별 생각 없이 ‘왕복 1시간 컷 가능하니까’ 라는 단순한 이유로 정한 곳이었다. 2017년 고가공원이 막 만들어진 뒤에 한 번 구경 다녀오기도 했고.


그런데 행운은 생각지 못 한 곳에서 찾아오는 게 정답인가 보다. 큰 기대 없이 찾아간 서울역 고가공원, 정식명칭 ‘서울로 7017’은 만개한 장미로 뒤덮여 있었다. 색색깔 꽃잎과 상큼한 향기, 예쁘게 꾸며진 포토존까지. 점심산책을 나온 건지 나들이를 나온 건지 잠시 헛갈릴 정도다. 아니, 이게 다 뭐야?

고개를 숙이면 시멘트 바닥만 보이지만, 들면 하늘과 장미꽃이 보인다.

서울로 7017 장미마당~목련마당

마침 딱 장미 특화 시즌이었다. 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스크 아래로 잇몸만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풍경이 앞뒤좌우로 펼쳐진다.


핑크 스와니, 오렌지 메이안디나… 다양한 장미들이 각자 화단에 이름표를 붙이고 향기를 발산한다. 이름마저도 공주 같은 꽃들 사이에 좀 특이한 장미가 있다. 보기에는 무난하게 예쁘고 탐스러운 하얀 장미인데 이름이 ‘아스피린 로즈’다. 


왜 하필 아스피린일까, 내가 아는 그 약 이름이 맞는 걸까 하고 찾아보니 정말 약 이름에서 따 온 것이 맞았다. 아스피린을 만든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품종이라고 한다.

왼쪽 하얀 장미가 '아스피린 로즈'. 이름과 달리 상큼한 사과향이 난다.

1970년과 2017년이 만나 '서울로 7017'

서울로 7017은 1970년대 만들어진 고가도로를 2017년에 공원으로 변신시켰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산업화와 함께 치솟은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놓은 서울역 고가도로는 수십 년 동안 차와 물자를 실어 날랐지만 결국 노후화로 안전문제가 제기됐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철거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낡아버린 고가도로는 철거해 버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르지만, 정(情)은 때때로 합리성에 우선한다. 서울시 역사와 함께 나이먹어 온 고가도로를 완전히 없애기에는 그 동안 쌓여 온 세월이 참 깊었나 보다. 서울시는 오래된 철길을 공원으로 바꾼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처럼 고가도로도 보수공사 후 시민을 위한 공중 공원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3년 여 간 공사를 거친 서울역 고가도로는 2017년 식물 가득한 산책길 겸 문화공간 ‘서울로 7017’로 다시 태어났다. 공개 당시에는 말도 많았고 개장을 축하하는 의미로 세워진 신발 조형물의 미추 논란도 있었지만 이제는 명실상부 사람이 오가는 ‘살아있는 길’이 됐다.

6월 7일까지 장미 특화거리로 운영된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건설된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레트로 소품들로 꾸며진 포토존

설렁설렁 걷기 좋은 직선코스, 밤에 오면 더 좋겠다


화단마다 식물 이름이 적혀 있고 자세한 정보를 담은 QR코드까지 찍혀 있어 호기심 많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딱인 산책길이다. 큼직한 화단 사이사이에 걸터앉을 만 한 공간도 있지만 햇빛을 가려 줄 가림막이나 나무그늘이 적어 쉬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낮보다는 초저녁쯤 찾아오면 날씨도 선선하고 석양도 같이 볼 수 있어 낭만적일 듯.


장미뿐만 아니라 각종 꽃나무와 억새풀 등 다양한 식물이 길을 가득 채워 싱그러운 인상을 준다. 중간중간 큼직한 기둥처럼 생긴 전시공간도 있다. 안에 들어가 잠깐 햇빛도 피하고 서울로 역사를 구경하기에도 딱이다.

서울로 중간에 있는 조그만 전시공간

도심 한복판에서 연꽃을 보다

서울로에는 장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디 고즈넉한 산사나 큰 공원에 가야 볼 수 있던 연꽃이 작은 연못에 동동 떠 있다. 주위 빌딩과 연꽃이 묘하게 어울린다.


그 옆으로는 어린이들을 위한 ‘방방이(트램펄린)’ 가 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인지 운영을 쉬는 상태다. 방방 놀이터라는 간판만 봐도 어린 시절 펄떡펄떡 뛰어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어른을 위한 방방 놀이터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보니 다른 직장인들도 내심 ‘나도 타고 싶다’는 표정으로 방방 놀이터를 흘긋거리며 지나간다.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다들 내면엔 8세 어린이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서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어린이들이 뛰놀 수 있게 되길 빌어본다

어른 방방이에 대한 미련을 고이 접어두고 목련마당쪽으로 향한다. 빌딩들 사이로 웬 고색창연한 건물이 보인다. 번쩍이는 유리와 콘크리트 사이에서 홀로 과거에서 날아온 듯 한 풍채를 자랑하는 이 건물은 바로 남대문교회다. 

남대문교회는 1885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근간으로 하는 곳이다. 서양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포교활동을 할 수 없던 시기에 제중원은 병원 겸 교회의 역할을 했다.


이후 1910년에는 병원(세브란스병원)과 교회(남문밖교회)로 각각 분리되었다고 한다. 이 남문밖교회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과도 긴밀한 관계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인 셈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고풍스러운 예배당은 1969년에 지어진 것이다.


어제가 이어져 오늘이 된다는 걸 실감하며 몇 발자국 더 걸으면 목련마당이 나온다. 지금은 꽃이 져서 큼직한 잎만 달려 있지만 꽤 잘 자란 목련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목련마당 바닥에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어 저절로 마음이 경쾌해진다.

산책길 중간중간 서 있는 기둥형 건물 2층은 미니 전망대 같은 역할을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바닥 그림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2층에서 본 전경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문득 시간을 보니 슬슬 복귀할 때다. 한 시간이 말 그대로 ‘순삭’됐다.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걸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또 그렇게 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다.

서울역 구역사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 서울로 7017 산책코스, 감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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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예리 dla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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