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잡화점

키스·애정신 감독하는 신직업 ‘접촉 연출가’

“액션신에 무술감독 필요하듯 애정신에도 전문 감독 필요”

13,166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배우가 대본을 읽고 파악한 내용과 현장에서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가 달라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2017년 김기덕 감독은 영화 ‘뫼비우스’촬영 당시 여배우에게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고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며 뺨을 때린 혐의로 고소당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사진=온스타일 방송화면 캡처

배우 이영진은 같은 해 방송에서 김기덕 감독 논란을 언급하며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씨는 “시나리오에 베드신이 있었는데 (자세한 묘사 없이) 한 줄뿐이었다. 이미지 처리를 할 것이라 부담 안 가져도 된다는 말을 듣고 촬영장에 갔는데, 감독이 갑자기 1대1로 부르더니 전라 노출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노출, 스킨십 장면을 촬영하며 문제가 생기는 상황은 해외 영화계에서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최근 미국 할리우드에서 뜨고 있는 신직업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접촉 연출가)’는 이런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는 직업입니다. 


이들은 키스신, 베드신 등 신체적 접촉 연기가 필요한 장면을 전문적으로 감독하며 배우들의 인권을 보호합니다. 미국 배우 노동조합은 성적인 장면을 촬영할 때 접촉 연출가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는 가이드를 발표했습니다. 

국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협회(Intimacy Directors International·IDI) 창립자 토니아 시나(좌)와 앨리샤 로디스(우). 사진=IDI홈페이지

비영리단체 ‘국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협회(Intimacy Directors International·IDI)’ 공동창립자 알리샤 로디스(Alicia Rodis)씨도 십 대 시절부터 애정 연기로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로디스 씨는 2018년 허프포스트 인터뷰에서 “15세에 무대에 올라 키스신 연기를 해야 했다. 내가 맡은 배역들을 기쁘게 연기했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어린 연기자와 감독 사이에는 명백한 권력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뉴욕에서 스턴트 감독으로 활동하며 영화와 연극 액션신을 지도하던 그는 ‘액션 연기에는 확실한 동선이 짜여져 있고 전문 감독이 붙어 지도하는데, 왜 애정신에는 그런 제도가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하라고 할까’라는 의문을 품고 2014년 IDI를 창립했습니다. 


때마침 참여하던 작품에서 배우들의 키스신 연기를 도와준 경험도 계기가 되었습니다. 액션 장면은 배운 대로 잘 찍던 배우들이 키스신을 찍어야 할 때가 되자 당황스러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들은 로디스 씨가 키스신 촬영장에도 함께 머물며 조언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동선과 자세 등을 객관적으로 자세하게 조언해 주자 모두들 부담을 내려놓고 한결 편안하게 촬영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사진=IDI홈페이지

로디스 씨를 비롯한 접촉 연출가들은 영화, 연기, 무용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로서 배우들의 감정을 살피고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을 합니다. 대본에 추상적으로 한두 줄 적혀 있는 애정신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동선을 짜고 배우와 감독 사이를 조율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수위 높은 노출장면에서는 서로의 몸이 직접 닿지 않도록 특수한 속옷을 준비하고 촬영장 환경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촬영 도중 서로간에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 일어날 걱정도 없고 배우들도 자신들의 연기가 철저히 각본에 입각한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습니다.


IDI 창립자 토니아 시나(Tonia Sina)씨는 “배우들은 일(연기)때문에 서로를 만져야 할 때가 있다. 일에 원칙이 필요하듯 신체 접촉 연기 시에도 원칙과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연기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IDI는 연출가 양성 교육과 인증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로디스 씨와 함께 일한 배우 에밀리 미드(Emily Meade)씨는 HBO드라마 ‘더 듀스(The Deuce)’촬영 때 큰 변화를 느꼈습니다. 연출가 없이 수위 높은 장면을 촬영해야 했던 시즌1 때에는 '훗날 내 자식이 이 영상을 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불안감을 느꼈지만 로디스 씨가 합류한 시즌2부터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에 임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도 접촉 연출가를 고용하는 것은 안전한 선택입니다. 더 듀스 제작자인 데이비드 사이먼은 2018년 미국 대중문화 매체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접촉 연출가 없이는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영국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도 접촉 연출가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진행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성추문이 미투운동을 촉발시킨 이후 감독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 줄 접촉 연출가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배우와 제작자를 모두 만족시키고 윤리적인 제작환경 조성에도 한 몫 하는 직업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이런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