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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무작정 태국으로... "한국어 가르치며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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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찾지 않아도 어느새 다가와 삶의 중심에 자리 잡는 대상이 있다. 태국 북부 도시 치앙마이를 딴 예명을 쓰는 작가 ‘치앙마이래빗’(래빗)에겐 태국이 그랬다.


1994년 무작정 집을 뛰쳐나갔을 때 그는 독일 소설 ‘팔아버린 웃음’ 속 주인공처럼 웃는 법을 잊은, 분노에 찬 20대였다.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를 물어 덜컥 날아간 태국에서 그는 잃었던 웃음과 온전한 삶을 찾았다.


“방콕 공항에서 헤매는 나를 발견한 한국인 아주머니가 선교사에게 데려다줬다. 그의 소개로 16시간 버스를 타고 간 북동부 우돈타니에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며 지냈다. 그 일을 하러 왔다가 내게 가로채기당한 한국 학생이 지금의 남편이다.”

출처치앙마이래빗(오른쪽)과 번역가인 남편 ‘하니캣’의 캐릭터. 옐로브릭 제공

‘의사와 결혼하라’던 부친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한 두 사람은 4년간 방콕에 살았다. 래빗은 매일 어학원에 갔다가 오후엔 병원에서 환자 돌보는 일을 했다. 남편이 방콕 대학을 졸업하고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4년이 지난 2012년 어느 날 문득 남편이 말했다. “다시 치앙마이로 가서 살자.” 부부는 2008년 3개월간 치앙마이에 머문 적이 있었다.


“미쳤다고? 그냥 가자. 계속 여기 있음 넌 정말 원하는 일을 못 해. 돈은 내가 번역 일로 벌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못 한다’고 하지 마. 그냥 용기 내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전공을 살려 디자인 일을 하던 래빗은 다시 찾은 치앙마이에서 정말 하고 싶던 일, 글쓰기와 그림에 2년간 몰두했다. 최근 펴낸 ‘태국 요리 여행’은 방콕 ‘완디 요리학교’에서 배운 전통요리법을 만화와 함께 엮은 책이다.

출처솜땀(그린파파야 샐러드) 조리법. 옐로브릭 제공

“진짜 맛있는 태국 요리를 먹고 싶다고 식탁에서 불평했더니 남편이 ‘네가 직접 태국 요리법 배우면 되잖아’라고 했다. 서울에서 사먹는 태국 요리가 태국인들이 집에서 해먹는 진짜 태국 음식과 한참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사먹는 태국 요리와 태국 현지 ‘집밥’은 기본 재료인 남프릭(양념장) 제조법부터 다르다. 래빗이 받은 첫 수업 과제는 튀긴 고추, 마늘, 생강 등 재료를 잘게 다져 화강석 손절구로 30분간 곱게 빻는 것이었다. 남프릭에 향신료를 더해 코코넛크림과 끓이면 커리가 된다. 빻은 남프릭 저장 가능 기간은 이틀. 소금, 방부제가 들어간 시판용은 당연히 맛이 다르다.

출처파냉까이(치킨커리) 조리법. 옐로브릭 제공

“태국인들은 수천 종 남프릭을 매일 조금씩 빻아 쓴다. 손쉽게 만들려고 전동 블렌더를 쓰면 맛이 확 달라진다. 일단 한번 절구로 빻아 만들어 먹어 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래빗 부부는 요즘 경남 통영 집과 치앙마이를 오가며 지낸다. 안온하던 치앙마이에도 얼마 전부터 부동산 개발 열풍이 닥쳤다. 육중한 고목들이 뽑혀 도시 경관이 바뀌고 있다. 패스트푸드 식당이 들어선 뒤 호리호리하던 사람들이 비만 체형으로 변했다.


“그래도 여전히 저녁에 치앙마이 골목을 걷다 보면 ‘농(동생), 우리랑 밥 먹고 가!’라며 인사하는 생면부지 아주머니를 이따금 만날 수 있다. 치앙마이에서 내가 찾은 건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저절로 배어나오는 웃음이었다. 치앙마이는 언제나 내게 ‘땀 사바이(마음 편한대로 해)’라고 웃으며 말해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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