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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배우는 외국인들이 '들기름'에 끌리는 이유

조회수 2020. 1. 5.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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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역시 음식만 한 것이 없죠. 한국에 온 외국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가르쳐 줄 기회가 생겼다면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까요. 


한식 클래스 ‘테이스티 K(Tasty K)’ 대표 황정아 강사는 외국에서도 구하기 쉬운 식재료, 나라마다 다른 입맛, 따라하기 쉬운 조리법 등 다양한 부분을 고민해 가며 한국 식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황 대표의 요리 교실은 서울 광진구 자양시장 골목 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외국인 수강생들은 황 대표와 함께 자양시장을 쭉 돌며 직접 장 봐 온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듭니다. 한식은 물론 한국인의 생활문화까지 종합적으로 겪어볼 수 있는 문화체험 코스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테이스티 K는 2018년 한국관광공사 선정 예비관광벤처로 뽑혔습니다.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을 세계 여러 나라 분들에게 알려드리는 일을 합니다. 한국에 여행 오신 분들과 함께 전통시장에서 장 봐서 음식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식문화를 비롯해 한국의 다양한 면들을 알려 드려요. 음식에는 그 나라의 지리, 기후, 역사 등 아주 다양한 것들이 표현되거든요. 한국의 다양한 면을 음식을 통해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주로 외국인 대상으로 수업을 하시는데,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사실 실질적인 수업시간은 3~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긴 시간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이 수업을 들은 분들이 한국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거든요. 귀국해서도 한식 식당을 찾아보거나 한식을 만들어보거나 하면서요.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쭉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흥미 있고 따라하기 쉬운 수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황 씨는 “국내든 국외든 여행 가는 곳마다 지역 시장을 가장 먼저 들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직업병’이 있다. 시장과 음식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가 보이기에, 테이스티 K를 찾는 분들에게도 그런 체험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표님은 어떤 준비를 거쳐 지금 일을 하게 되셨나요.


저는 처음부터 외국 분들에게 한국 식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 목표를 가지고 대학원에서 전통식생활문화를 전공했습니다. 우리나라 음식이 발전해 온 과정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때는 사찰음식이 발달해 우리 식문화에 영향을 주었거든요. 그런 맥락과 과정을 살펴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음식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 유명한 선생님들 수업을 영어로 통역하기도 했어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도 땄고요. 그런 관광 관련 자격증을 따면서 좀 더 전문적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해드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추려 노력했습니다. 대학원 논문도 외국인의 음식관광유형에 관해서 썼고요.



어릴 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고등학교 때 문화 교류 프로그램으로 호주에 가서 3주 정도 지낸 적이 있어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서 각자 자기 나라 음식들을 만들어 나눠 먹는 자리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제가 아직 어려 요리를 잘 못 했기에 어머니께 전화로 여쭤보며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 소개했는데 그 과정도 재미있고 반응도 좋은 거예요. 


대학교 때 미국으로 어학연수 갔을 때도 공용 주방에 모여서 자기 나라 음식을 공유했는데 그것도 참 좋은 기억이었어요. 그런 경험들을 통해 아, 이게 언젠가 내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요리로 문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 나라 수강생들을 만나다 보면 기억에 남는 일도 많으시겠어요.


네. 다양한 분들이 오시다 보니 특별한 에피소드도 많아요. 꾸준히 오시는 수강생 중 스위스 분이 계세요. 아주 어릴 때 한국에서 스위스로 입양이 되셨대요. 어른이 되어서 생모를 찾았는데, 한국에 오실 때마다 두 분이 함께 제 수업에 오세요. 한국어는 서툴어도 같이 김치 만들어 먹고 음식 나누고 하면서 정을 나누시는 모습이 참 마음에 남습니다.


또 한 분은 독일 분이세요. 취미로 한식을 배워서 독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 분과 일주일 동안 다섯 번을 만나면서 한국 음식 전반에 걸쳐 공부를 하셨어요. 하루는 양념, 하루는 육류, 하루는 채소류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수업을 다 듣고 가셔서 독일에서 한식 교류 코스를 오픈하셨대요. 3월에 또 오신다고 하셔서 함께 메뉴를 의논하고 있어요. 뜻깊은 일이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리를 잘 만드는 것과 잘 가르치는 건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저는 주방에서 일했던 셰프도 아니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어떤 음식을 알려드릴 때 ‘구조화’는 잘 하는 것 같아요. 포인트 있게 전달해야 듣는 분도 이해하기 쉽고 변형해 가며 만드실 수 있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쓰는 비법들 위주로 알려드리면 자국에 돌아가서 따라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설명하죠. '김치는 채소를 절인 다음 거기에 양념을 해서 저장해놓고 먹는 발효 음식이다. 발효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탄수화물을 넣어줄 때도 꼭 찹쌀가루를 쓰지 않아도 된다.' 밥이나 감자 등 어떤 탄수화물도 다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알려드리면 실제 활용하기 쉬워지는 것 같아요.

외국 수강생들에게 수업하는 방법을 조근조근 풀어놓던 황 대표는 식재료의 궁합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같은 철에 수확되는 식재료들, 즉 ‘제철’이 같은 재료들은 대체로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합니다. 6월경에 나오는 하지감자는 열무, 병어와 궁합이 잘 맞고 가을에 나오는 역시 가을에 잡히는 갈치와 잘 어울립니다.


요리에 역사, 문화까지 담겨 있다고 역설하는 황 대표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수업 주제를 묻자 ‘기름’이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잡채, 산적처럼 특정 음식이 아닌 ‘기름’이 외국인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 대표는 “참기름은 동북아시아에서 전체적으로 즐겨 쓰는데 들기름은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 기름들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소개해 드리면 문화적으로도 이해가 잘 된다며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고기나 생선종류와 달리 기름류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재료라는 것도 장점입니다. 실제로 최근 해외에서는 한국산 들기름에 오메가3가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름 이야기를 들은 수강생들은 바로 옆 자양시장 방앗간에서 갓 짜낸 들기름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지역 상권과의 상생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제 활동이 자양시장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요. 시장에서 갓 짜낸 기름과 갓 구운 김이 인기가 참 많아요. 그래서 재래김도 많이들 사 가시고, 의외로 애견 옷도 인기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옷도 잘 만드나 봐요. (웃음) 그렇게 제 수업도 듣고 시장도 보시고 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촬영 권혁성PD hskwon@donga.com

앞으로 어떤 수업을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요. 


제가 이 공간에서 일을 한 지 2~3년 됐어요. 처음에는 어떤 분들이 오실까, 제가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분들께 좋은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사람 마음이 다 똑같잖아요.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에게 내 관심도 끌리니까요. 제가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문화를 교류하고 싶습니다.


한식 교·강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우선 호기심이 많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색깔에 맞는 수업으로 풀어가시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어딜 가도 누가 뭘 먹는지 궁금해하고, 이 지역의 식재료는 무엇이고… 그런 자세를 가지시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잖아요. 제 경우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잘 소개하는 사람이죠. 또 문화권에 따른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저와 달리 음식을 예쁘게 담는 걸 잘 하시는 분이 있고, 맛있게 만드는 법을 연구하기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각자의 장점이 있으니 그걸 잘 관찰하면 풀어갈 방법도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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