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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청와대 셰프 된 요리사의 20년 요리인생

"옆에 도와주는 사람 있어야...어려운 친구들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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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1년 남짓 지났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작은아버지 집에 입양돼 살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야 친부모님이 따로 계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식구들이 눈칫밥을 준 건 아니지만 밥값은 하고 싶다는 마음에 6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고 수금도 직접 했습니다. 10여 년 간 떨어져 살던 친누나가 성인이 되자 누나와 함께 살기 위해 작은아버지 집을 나왔지만 곧 생계 문제에 부닥쳤습니다.


치킨 배달, 주유소와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 고등학교 3년 내내 돈을 벌며 공부하다 졸업 후 바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 만난 후임병으로부터 호텔 주방 생활 이야기를 듣고는 제대하자마자 자격증을 따고 음식점에 취직했습니다. 


이후 메리어트 호텔, 리츠칼튼, 더 클래식500등 내로라하는 호텔 주방에서 경력을 쌓다 2013년 5월 청와대 대통령실 주방장 채용에 합격했습니다. 최근 여성동아와 만난 강태현(42) 전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팀장이자 현 정화예술대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강태현 주방장은 지난해 1월 청와대를 나와 지금은 개인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어린 시절을 지나 성공한 강 씨의 이야기에 누군가는 ‘운이 좋았네’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운이라는 것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나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군 입대 전에도 요리에 관심이 있었나요.


입대 전에는 요리에 딱히 관심이 없었어요. 사회에서 호텔 요리사로 일했던 후임병의 경험담을 듣고 ‘이거다’ 싶었죠. 제대하자마자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자격증을 따고 대학로의 한 일식집에 취직했어요. 칼질이라든지 주방에서 필요한 기술을 이 때 배웠죠.


1년이 지나 실장으로 승진했지만 제 꿈은 호텔에 취직하는 거였어요. 24세에 전문대학에 들어가 학위를 땄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꼭 필요한 과정이었어요. 대학에 메리어트 호텔 주방장님이 오셔서 지도해 주셨고, 수업이 끝날 즈음 호텔 일식 레스토랑에 자리가 비었다며 저를 추천해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생들 중 유일하게 일반 음식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정말 기뻐서 아주 열심히 했어요. 아침에 일찍 가서 선배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다 해놨죠. 그렇게 한 6개월 했더니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더라고요. 거기서 4년 정도 일하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청와대 근무 당시 강태현 주방장 모습.

메리어트 호텔, 더 클래식 500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은 강 씨는 청와대에 근무하던 선배로부터 ‘대통령실 일식 팀장 자리가 비었는데 지원해 보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청와대 주방장은 누군가의 추천으로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이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면접만 3번을 봤고 코스 요리 테스트, 신분 조회까지 총 6개월 간 채용절차를 거쳐 마침내 최종 합격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 여섯 살이었습니다.

청와대 생활은 어땠나요.


보람도 있고 괜찮았어요. 한식 팀장 2명, 중식과 양식 1명씩, 일식 팀장 1명 등 총 다섯 명이 팀으로 움직였습니다. 한식 비중이 높으니 주로 그 쪽 일을 도왔고 다른 메뉴 준비도 같이 했어요. 그 때 다른 음식도 많이 배웠죠.


청와대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대통령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속이 안 좋다고 하면 큰일이니까요. 그날 만든 음식은 당일 폐기를 원칙으로 하고 해외 순방 시에는 2명씩 따라갔어요. 빡빡한 일정이지만 돌아가면서 쉬었죠. 


간장이나 고추장도 관저에서 담가 먹고 채소도 거의 재배해서 먹는 데다 김장도 매년 했기에 일이 많았지만 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초창기에 청와대에 들어가셨는데,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주문이 있나요?


처음에는 적정 식사량이나 선호 메뉴를 모르니 골고루 많이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종류도 양도 너무 많다고 간단히 5첩만 준비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줄여나갔고 육류보다는 나물이나 샐러드 등을 선호하셔서 기본 찬 위주로 준비했어요. 가끔 속이 안 좋아서 죽을 끓여달라는 경우를 빼면 영양사가 짜주는 대로 준비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대통령 내외분 식사를 같이 준비하니까 양이 2인분으로 늘어난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두 분 모두 스케줄이 빡빡하다 보니 끼니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식사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지요. 


문 대통령은 생선, 특히 조림을 좋아하시고 젓갈도 좋아하셔서 원래 드시던 젓갈을 주문해 상에 올리기도 했어요. 외부 음식은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나기 때문에 식약처 직원들이 꼼꼼히 검사를 한 다음 들여왔죠. 여사님은 기본적으로 한식을 고루 드셨고 양식도 좋아하셨습니다.


청와대를 나온 뒤 어떤 일을 하셨나요.


사실 청와대 조리팀장 타이틀이 양날의 칼이에요. 호텔로 다시 들어가려고 해도 그에 걸맞은 자리가 아니면 서로 불편하거든요. 갑자기 그만두게 됐는데 처자식이 있는 상황이라 넋 놓고 있을 수도 없었고요. 3개월 만에 일본 가정식 요리점을 오픈하고 감사하게도 기본 수요가 있어서 현재까지 유지는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도 하면서 고아원이나 학교 등에 특강을 나갈 정도로 여유가 좀 생겼어요.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지금 하는 일도 잘 운영하고, 앞으로 강연과 특강도 나가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제가 지금은 여러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섰기 때문에 고아원 친구들이나 요리사를 꿈꾸는 어려운 친구들을 여러 방면으로 돕고 싶습니다. 평생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싶어요.


강 씨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가끔 하면 다들 우울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돈을 버는 게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남에게 동정 받는 게 싫어서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는 그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열심히 살지만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앞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을 꼭 설립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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