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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엉엉' 울면서 만화 그렸는데.."

조회수 2019. 7. 14. 0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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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준생(퇴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표를 내지 못하고 퇴사 관련 책, 영상, 웹툰 등을 보며 고민을 해보는 정도다.


김윤수 작가(필명 귀찮·30)도 ‘퇴사 일기’를 그린다. 그는 3곳의 회사에서 약 3년간 온라인 콘텐츠 제작 업무를 하다 2017년 12월 퇴사했다. 그리고 가족이 있는 경북 문경 시골집에 작업 공간을 차려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출처: 귀찮 제공

디자인 제품 사업, 강의 등도 하지만 주업무는 ‘콘텐츠 제작’. 퇴사를 결심한 당시부터 퇴사 후의 삶까지 웹툰으로 그렸는데 인기가 많다. 그의 퇴사일기는 책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으로도 발행됐으며 벌써 3쇄에 돌입했다.


반응이 좋은 콘텐츠는 대개 ‘사소한 불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제일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는 제가 만취해서 울면서 그린 그림이에요. 친구들과 술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 서글퍼서 그렸는데 눈 떠보니 다음 날 좋아요가 4000개나 찍혀있더라고요”

문득 외로움을 느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걸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누리꾼들은 “너무 공감이 간다”, “저만 그런 게 아니군요” 등 깊은 공감을 했다.

회사원일 때 월급이 쥐꼬리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쥐꼬리라도 있어야…
출처: 귀찮 제공

‘가슴이 뛰는 일을 하세요’ ‘퇴사 후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았어요’


귀찮 작가는 이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만 주지 않는다. 그가 퇴사 후 겪는 사소한 불안과 실패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잡화점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올해 초 기존에 해왔던 모든 광고와 연재가 다 잘리거나 끝났어요. 아무런 계약도 안 잡히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퇴직금은 다 쓴 지 오래고 모아둔 돈도 없고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프리랜서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회사원일 때는 월급이 쥐꼬리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쥐꼬리의 반의반이라도 있어야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걸 느꼈죠”라고 말했다.


그는 ‘숨구멍머니’를 항상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숨 구멍’과 ‘머니(돈)’을 합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마음의 여유를 위해서 보수가 적더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은 일단 하고 본다.


그는 직접 그린 그림으로 스티커 등을 만들어 팔면서 돌파구를 찾아나갔다. 그는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동생과 디자인 제품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그냥 친구들한테 줄 크리스마스 엽서를 만들다가 팔면 좋겠다 싶어서 오픈마켓을 운영했어요. 이틀 정도 판매를 했는데 400세트 정도 나갔어요. 시스템이 전혀 마련되어있지 않아서 정말 애를 먹었죠. 기계처럼 포장하고도 부족해서 우체국 직원분들이랑 택배 박스를 나르던 기억이 있어요”

서울을 떠난 후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를 묻자 “마음이 단단해졌어요. 서울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남과 비교하는 거였어요. 연봉 높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고 끝도 없이 비교했는데 시골에 오니 그런 것들이 사라져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요즘 그의 고민은 ‘집 앞에 바글바글하게 붙어있는 벌과 벌집을 어떻게 안전하게 떼어낼까’ ‘가뭄에 키운 오이에서 쓴맛이 나는데 어떻게 처리할까’ 등이다.


서울에서 멀어지니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귀찮 작가는 “공감으로 먹고사는 직업인데 공감되는 글을 쓰기가 조금 힘들어졌어요. 요즘 그래서 삶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들을 콘텐츠로 만드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직장생활 경험을 후회하냐는 질문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탕비실에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하면서 히히덕거던 그런 날들 있잖아요. 연봉협상 후 패자들끼리 육회집 가서 소주마 시고 회사 욕하고, 성과 때문에 낮에 미친 듯이 싸우다가 저녁에 서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다 울었던 날들. 이런 게 저에게 무척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어요. 젊은 날을 이렇게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회사 생활을 경험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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