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를 '마술사'로 만든 공무원

조회수 2019. 6. 24. 12: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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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형사정책연구원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마술사 정재호 씨(20)가 공연을 펼쳤다. 


정 씨에게 법무부나 소년원이 주최하는 행사는 남다르다. 그가 서울소년원 출신이기 때문.


정 씨는 2016년 서울소년원 안에서 처음 마술을 접했다. 그를 마술의 세계로 인도한 건 공무원이 되기 전 마술사였던 정 씨의 담임교사 손경수 현 법무부 소년보호과 주무관이다.

출처: 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손 주무관은 처음 마주한 정 씨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람을 노려보며 ‘내가 여기 왜 있지?’ 하던…


손 주무관은 서울소년원 직업훈련 과정 중 ‘매직엔터테인먼트반’을 운영했다. 마술에 관심이 없던 정 씨는 손 주무관의 동전마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저 신기했다. “우리 반에 정말 훌륭한 친구가 들어왔어요.” 손 주무관은 서툴기만 한 정 씨를 친구들 앞에서 끊임없이 칭찬했다.


얼마 뒤 서울소년원 행사에서 정 씨는 10분 정도 마술 공연을 했다. 200여 명 앞에 선 것도, 무대 위에 올라간 것도 처음이라 무척 떨렸다. 


정 씨는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받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며 “그때부터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씨에게 마술은 남들을 행복하게 하는 속임수다. 정 씨는 “거리에서 공연할 때면 꼭 ‘에이 사기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기는 피해를 주지만 마술은 웃음을 준다. 바쁜 탓에 서로 얼굴도 보기 힘든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주기도 한다”며 웃었다.


정 씨는 소년원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울 때도 늘 동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공연 때 쓸 대본을 노트에 빼곡히 적어 손 주무관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무언가를 그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정 씨에게 손 주무관은 팸플릿 하나를 건넸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마술학과에 대한 정보였다. 학교를 중학교 1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한 정 씨는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지만 대학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팸플릿을 보는 순간 욕심이 났다. 손 주무관이 교사추천서를 써줬고 해당 대학 학과장이 직접 서울소년원에 와 면접을 봤다. 정 씨는 ‘17학번’ 대학 신입생이 됐다.


우리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

정 씨는 지난해 전국 코인 마술 경연대회에서 1위를 했다. 마술사들이 심사하는 대회에서 정정당당하게 우승한 것이다. 자연히 정 씨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정 씨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은 소년원 후배들을 만나는 일이다.


그는 “소년원이 내 집이었고 그곳에서 많이 배웠기 때문에 아무리 출연료를 많이 주는 행사가 있어도 소년원 재능기부가 우선”이라며 웃었다. 


정 씨는 소년원 후배들에게 마술로 친근하게 다가간 뒤 “나도 그랬지만 다들 운이 나빠 여기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근데 우리 모두 잘못한 것 맞잖아.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고 말한다.

정 씨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손 주무관에게 물었다. “선생님, 친구들에게 제 출신을 숨기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 같아요. 이렇게 소개해 볼까 하는데 어떨까요?” 정 씨는 자신이 쓴 대본을 손 주무관에게 내밀었다. 손 주무관은 정 씨가 세상의 편견과 싸우면서 무수한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정 씨는 편견을 깨며 ‘실력 있는 마술사’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손 주무관의 아이 돌잔치 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정 씨는 “5년 안에 내 이름을 건 공연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0개 소년원에서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86명으로 2013년(45명)의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소년원 안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기능경기대회 수상 실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재범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원문: 동아일보 <“마술 아무나 하냐고요? 노력하면 된다는 것 후배들에게 보여줄래요”(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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