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공연 자막 띄우기, 100%수작업! '자막 오퍼레이터'의 세계

조회수 2019. 6. 6. 13: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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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 스페이스 바 1500번 누르기는 기본, 한 공연을 수십 번 ‘강제 관람’해요. 공연 중 화장실을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너무 집중하느라 막이 내리는 순간 탈진해 버려요.”

뮤지컬 ‘라이온 킹’의 자막 오퍼레이터 이호진 씨(왼쪽 사진)와 연극 ‘887’의 부소정 씨가 자막을 점검하는 모습. 클립서비스·LG아트센터 제공

● 연극·뮤지컬 내한공연, 보이지 않는 '필수인원'


해외 공연 팀이 내한하면 빠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꼭’ 필요한 인원이지만 절대 무대에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관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을 발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무대 뒤 콘솔에서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는 이들. 바로 ‘자막 오퍼레이터’다.


일반 관객에게 이들의 직업은 낯설다. 흔히들 “자막은 자동으로 나오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실은 공연 자막은 영화와 달리 100% 사람이 현장에 띄우는 ‘수작업’이다. 라이브 공연은 언제나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 ‘887’에서 배우인 로베르 르파주의 머리 위로 ‘최루탄의 단어로써 곤봉의 단어로써’라는 시의 구절이 자막으로 나오는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현재 공연계에서 자막 오퍼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미희(36) 여태민(30) 이호진(28) 부소정 씨(25)를 만났다. 


그들의 작업은 공연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기본 원문과 번역 대본을 꼼꼼히 읽는다. 문장도 대략 파악해야 하지만, 전체 흐름도 숙지해야 한다. 미묘한 표현은 번역가와 논의하기도 한다. 그렇게 미리 자막 슬라이드를 만드는데, 영화처럼 긴 자막을 쓸 수 없어 두 줄 이내로 자른다. 그렇게 만든 슬라이드는 공연당 1300∼2000장에 이른다.

귀로 영어를 듣고, 눈으로는 한글 자막에 집중하며 수천 장을 넘겨야 합니다. 동시통역만큼은 아니라도, 타이밍을 조율해야 해 느슨해질 수가 없죠. (여태민 씨)

자막 오퍼레이터에게 외국어 실력은 당연히 필수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를 비롯해 2014년부터 대형 공연을 자주 맡은 김미희 씨는 “대사의 뉘앙스, 어감, 박자도 파악해야 수준 높은 오퍼레이팅이 가능하다”고 했다. 


영어·프랑스어가 함께 사용된 연극 ‘887’의 부소정 씨는 “두 언어가 한글과 어순이 달라 대사에 맞게 슬라이드 순서를 잡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순발력도 정말 중요합니다.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타이밍에 자막이 적절하게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죠.” (이호진 씨)
"라이브다 보니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라도 생길 수 있어요. 배우가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치거나 대사를 건너뛰면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하죠. 재빨리 자막이 없는 '블랭크'화면을 띄워 자막과 대사가 엇나가지 않도록 합니다." (김미희 씨)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사랑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연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배우의 동작을 흉내 내고 노래도 따라 하면서 어둠 속에서 홀로 공연을 즐기는 또 다른 배우인 것 같아요.”(김미희)


“‘자막 덕분에 작품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후기에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부소정)


※ 원문: 동아일보 <외국어-순발력으로 무장… 동시통역 못잖은 긴장감(김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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