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품고 고민 또 고민, 전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조회수 2019. 6. 3. 09: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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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좀 하다가 해외로 대학원 가야지.’ 


대학생 시절 세운 목표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이뤄졌다. 딱딱하고 경직된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 하고 괴로워하며 마음 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직장인 죠디 리(Jody Lee·이정희). 네덜란드 유학을 결심한 그는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훌쩍 몸을 던졌다.

“집안이 풍족하지 않아 돈 걱정이 컸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 유학을 간다는 것 자체에 불안감도 있었죠. 하지만 실패하고 깨지고 무너지면서 성장하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에서 석사학위를 딴 뒤 정착까지 성공했더라면 그림 같은 성공담이었을 테지만, 죠디 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혹자는 ‘뭐야, 실패했네’라고 일축할지 모르지만 죠디 씨는 이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실패담’을 가지고 에세이 '그래서 네덜란드로 갔어'를 써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차고 넘칠 정도로 세상에 나와 있는데, 굳이 나까지 그런 얘기를 반복해야 할까? 누군가는 이런 솔직한 경험담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까?

● 평범한 직장인,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두려워 말고 지금 떠나자. 결심은 공짜였지만 공부, 그것도 해외에서 공부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직장생활로 모아둔 돈이 있었지만 학비에 생활비까지 합치면 절대 만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그는 국제로타리클럽(Rotary International)의 문을 두드렸다.


1905년 설립된 국제 민간단체인 로타리클럽은 봉사활동, 장학사업, 질병퇴치운동 등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한 여러 사업을 펼치는 곳이다. 인류애와 평화를 추구하는 로타리클럽의 이념은 그가 공부하고자 했던 국제 커뮤니케이션 분야와도 연관이 있었다.

출처: 죠디 리 제공

장학생으로 뽑히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 로타리클럽의 추천을 받기 위해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전화와 이메일을 돌리고 또 돌렸습니다. 어렵게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지만 올해 추천은 이미 마감됐으니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올해 꼭 가고 싶다고 정말 간절하게 어필했습니다. 마침 세계 각국의 로타리클럽 관계자들이 모이는 행사가 한국에서 열렸어요. 천운이다 싶었죠. 이 기회를 잡고 진심을 다하면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네덜란드 회원에게 메일을 보내 가까스로 약속을 잡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출처: 죠디 리 제공

네덜란드를 택한 이유


유럽 대학원 중 영어로 학위과정이 개설된 곳은 영국과 네덜란드 두 곳이었어요. 제가 대학원을 준비하던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에 브렉시트 이슈가 있기도 했고, 또 제 성향상 남들이 많이 가는 곳보다는 ‘블루오션’을 탐내는 성격이기도 하거든요.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총 2년 동안 공부했는데, 좋았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결국은 사람 때문이었어요. 대학생 시절 배낭여행에서 만난 어르신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져 유학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반면 집 문제로 사기를 당할 뻔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집 문제로 힘들어할 때 흔쾌히 자기 집 방을 내어준 분도 바로 그 어르신이었어요. 살면서 어떤 의미로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혼자서 모든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돈이 정말 중요하고도 무서운 거라는 사실도 절감했습니다. 돈과 사람, 이 두 가지를 잘 챙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느꼈죠.


네덜란드에서 취업해서 정착할 생각은 없었나요.


사실은 대학원 졸업 후 취직이 됐어요. 네덜란드에 있는 한국 회사였는데, 제가 원하던 생활이 아니라는 생각에 곧 그만뒀습니다. 


그 뒤에는 스타트업을 해 보려고 사업 등록을 한 다음 열심히 살았는데, 퇴사 후 계획을 꼼꼼히 세우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어요. 결국에는 금전적 문제 때문에 그마저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저는 ‘전진을 위한 후퇴’라고 생각해요.

출처: 죠디 리 제공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비결은?


저도 회사 다니는 게 힘든,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도 사직서 내기 전까지 많이 고민했고요.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제 스스로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일단 도전하자. 안 돼도 얻는 게 무언가 있을 거다. 그런 생각으로요.

●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아요


성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격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죠디 리. 만약 친한 친구나 주변인이 유학 혹은 이민을 고민한다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냐고 묻자 그는 '힘든 일도 있겠지만 말리고 싶지는 않다'고 답했다. 최대한 자세히 계획을 세우고 용기 있게 도전하면 잘 되든 안 되든 무언가 얻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늘 새롭게 도전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죠디 씨의 다음 도전과제는 그가 떠나 온 나라,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 대한 책을 하나 더 쓰고 싶어요. 언젠가 사람들이 네덜란드 하면 죠디 리를 떠올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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