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 단순한 삶, 고요해 보여도 투쟁 많지요"
고속도로를 벗어나 백로가 서성이는 논을 지나서도 10여 km는 족히 더 들어가야 나오는 산자락 수도원. 작은 간판이 달린 정문을 지나자 고요한 가운데 새소리가 가득합니다. 최근 ‘아빠스(abbas)좌(座)’ 수도원으로 승격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고성 수도원입니다.
‘아빠스’는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로, 베네딕토 계열 수도회의 대수도원장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제 서품 권한만 없을 뿐 주교에 준하는 권한을 갖습니다. 초대 아빠스로는 수도원 원장 유덕현 신부(58)가 선출됐습니다.
이 곳 수도자들은 낮에는 가능하면 작은 소리로 적게 말하는 ‘소침묵’, 밤에는 전화기도 끄고 큰 일이 아니면 아예 입을 열지 않는 ‘대침묵’을 실천합니다. 5월 13일 만난 유 아빠스는 “통화가 잘 안 되니 답답해하는 외부 분들도 있지만, 그러니까 수도원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해마다 가톨릭 신자 등 약 1만 명이 고요를 찾아 고성 수도원으로 피정(避靜)을 옵니다. 수도원에 거주하는 신부와 수사 등 30명은 하루 기도 7번, 미사 1번, 성경 읽는 시간 2번, 오후 노동의 일과를 되풀이합니다. 양봉, 액체 비누 제조와 함께 이탈리아의 연합회 총원에서 수입한 포도주와 올리브를 팔기도 합니다.
유 아빠스는 수도자들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소박한 삶이야말로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이런 생활이 쉽지 않거든요. 내 존재도 없는 거 같고… 고요해 보여도 내적으로는 이기적이고 헛된 생각을 물리쳐야 하니 영적 투쟁이 많지요.”
그의 사목 표어는 ‘TOTUS TUUS’(온전히 당신의 것). 신부가 안 됐다면 장군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1986년 유 아빠스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학군단(ROTC) 출신으로 군수사령부에서 미사일을 담당하는 전도유망한 대위였습니다. 국방부가 무기 체계를 공부해 오라며 유학을 권유해 준비하던 중에 “하느님이 나를 이끄시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운영하는 봉사의 집에 갔다가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오토바이 마니아였던 그는 ‘할리 데이비슨’을 사려고 수년간 모았던 돈을 수술비가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건넸습니다.
나중에 들른 수녀회 책장에서 산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는 어디냐고 묻자 할머니 수녀가 답했습니다. “산속에 살면서 기도만 하는 곳이란다.” 유 아빠스는 1988년 7월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할 때 창설 멤버로 입회해 1998년 사제품을 받았고, 2013년 고성 수도원 원장에 선출됐습니다.
“부자는 더 큰 부자와 비교해서 불행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해 불행합니다.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멀리서 찾지 마세요. 가족과 더 자주 밥 먹고 대화하고, 친구들과 함께하세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 눈 앞의 사람을 사랑하세요.”
※ 원문: 동아일보 <“가족과 함께 먹고 대화하고 사랑하세요… 그게 행복의 길입니다” (조종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