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재미로 하냐? "네"라고 말하는 사람들

조회수 2019. 4. 27. 17: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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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 추구하는 청년들
“일하면서 즐거운 순간요? 일을 재미로 하나요?”
(40대 중견기업 부장 A씨)

4월 8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취재팀은 ‘나는 일하면서 적어도 ㅇㅇ순간만큼은 즐겁다’라는 문구가 적힌 보드판을 들고 3시간가량 거리를 누볐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무리 지어 나온 직장인들은 보드판에 답을 채워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참 망설이다가 ‘퇴근’ ‘점심시간’ ‘상사의 외출’등을 적었습니다. 


고민 끝에 ‘無(없다)’고 쓴 한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하면서 재미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인생이죠.”

출처: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8일 서울 광화문 청계천 일대에서 20, 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일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물었다. 한 직장인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메모지에 적어 보드판에 붙이고 있다.

● “어른들도 이젠 절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오늘은 무슨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웃기지?”


4월 19일 오후 4시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해성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송지훈 군(17)은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오후 8시에 예정된 유튜브 개인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송 군은 개인방송 BJ(진행자)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지난해 유명 BJ의 개인방송에 출연했던 경험이 인생을 바꿨습니다. 


방송 시작 8개월째인 그의 유튜브 구독자는 1만 명에 이릅니다. 처음엔 ‘공부 안 하냐’며 비난하던 어른들도 이젠 송 군의 목표를 이해해준다고 합니다.

● “재미가 밥 먹여 주던데요”


누구나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는 덕업일치의 꿈을 이미 실현한 청년들도 있습니다. 인기 온라인 웹툰업체 레진코믹스에 다니는 손이경 씨(33)는 “재미가 밥은 먹여 주더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좋아하던 그는 일본 만화를 읽기 위해 일어를 공부했고, 그 영향으로 한국외국어대 일어과에 진학했습니다. 대기업을 준비하는 동기들과 달리 그는 첫 직장으로 소규모 웹툰 제작사를 선택했습니다. 레진코믹스 이직 후에는 한국 웹툰 수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라 말했습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송주현 씨(33)는 ‘음식’알리기를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음식 정보 배우기에 큰 즐거움을 느낀 그는 식자재 유통업체 마켓컬리에 입사해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취재팀이 이달 초 청년 452명에게 ‘ㅇㅇ없이 살기 싫다’의 빈 칸을 무엇으로 채우겠냐고 물어보니 ‘재미’없이 살기 싫다(44%)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요즘 부자들’. ‘아만자’로 유명한 김보통 작가가 즐겁게 일하며 큰 수익을 누리는 유튜버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 “재미만 좇았다가 시간 낭비 되면…” 기성세대의 걱정


청년들의 이런 흐름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재미만 좇는 게 아닌지 걱정합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조사한 신입사원 근속연수는 1년 5개월에 불과했습니다.


30년 넘게 지방 공기업에서 근무했던 김상만 씨(59)의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던 중 연극 극단에 들어가겠다며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김 씨는 아들을 말렸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아들은 4년 넘게 월 100만 원을 받으며 극단 생활을 하다가 서른 중반을 넘겨 다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김 씨는 “아들의 인생을 되돌리고 싶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처럼 재미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해서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성대모사 동영상으로 유명해진 후 온라인 크리에이터 기획사를 하는 김봉제 온웨이즈 대표(33)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월등히 잘해야 직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면 ‘덕업일치’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안성민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은 “적당히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가는 크게 후회할 수 있다”며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꾸준히 실력을 키워야 ‘덕업일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일과 재미를 다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재미'는 청년층의 직업 선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이달 1~4일 진행한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설문조사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재미가 없다면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울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452명에게 “당신이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재미’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자 350명(77.4%)이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130명(28.8%). “거의 중요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청년(5.8%)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회사는 동아리가 아니다’

‘일에서 재미 찾을 생각 마라’

부장님이 젊은 사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일과 재미를 분리해서 내키지 않는 일도 소처럼 열심히, 성실히 하는 게 기성세대의 태도였지만 요즘 청년들은 다릅니다. ‘좋은 대학→대기업→승진→정년’이라는 성공 공식을 거부하고 일에서 재미를 찾아 성공하겠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에게는 직업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청년세대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직업을 자아실현의 도구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3년 차 직장인인 조모 씨(31)는 “직장에 계속 있어야 하는데 일에 재미가 없으면 동기부여 자체가 안 된다”며 “즐겁게 일할 직장으로 이직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기업이 청년들에게 업무를 맡기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입사원이라도 작지만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를 맡긴 후 알아서 하도록 자율성과 권한을 줘야 동기부여가 돼 즐겁게 일하게 되고 성과도 극대화된다”고 말했습니다.


※ 원문 : 동아일보<“재미가 밥 먹여줍니다” 덕업일치가 직업선택 0순위(특별취재팀 김윤종·김수연·김도형·김재형·황성호·김형민·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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