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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충원 '0명'..지방병원 수술 의사들은 '항시 대기 중'

조회수 2019. 4. 16. 0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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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충북대병원 2층 17번 수술실. 1일 오전 10시 반경 류동희 간담췌외과 교수(50)가 60대 환자의 간에서 암 세포를 떼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류 교수는 수술 페달을 정확히 밟기 위해 슬리퍼를 벗었다. 바닥에 환자 피가 흥건했지만 수술에 집중하기 위해 혹시 모를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맨발로 수술에 임한 것이다.


류 교수가 환자의 복부 대동맥을 헤치고 간에 메스를 대며 큰소리로 말했다. “환자 BP(Blood Pressure·혈압) 떨어지는 것 좀 보세요!” 류 교수의 지휘에 따라 간호사가 수혈 팩을 달고 수술등을 움직였다. 전쟁 같은 수술은 3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류 교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수술실로 향했다. 남은 수술 3건을 마친 뒤에도 언제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실려 올지 몰라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출처: 청주=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류동희 충북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왼쪽)가 4월 1일 오전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지방 병원에선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수술 환자를 돌려보내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 지방병원 수술 의사들은 ‘항시 대기 중’


충북엔 충북대병원을 포함해 30병상 이상 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가 79명(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들이 주민 160만 명을 담당한다. 의사 1명당 주민 2만296명꼴이다. 서울(9576명)의 2배가 넘는다. 


장기가 심각하게 손상된 응급 환자가 실려 오면 환자를 전원(轉院)시킬 대형 병원도 주변에 없고 대신 수술할 여유 인력도 병원 내에 없다. 결국 이 지역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퇴근한 후에도 언제 응급 호출이 떨어질지 몰라 항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명조 충북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37)는 지난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온콜(on-call·비상대기)’ 상태로 지내다가 아예 오후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게 습관이 됐다. 어차피 집에 일찍 가도 이틀에 하루는 한밤중에 응급실 호출이 오기 때문이다.


동료인 최한림 간담췌외과 교수(40)도 상황이 비슷하다. 수술과 당직이 끊이지 않아 2주 만에 집에 간 적도 있다. 최 교수는 “최근 첫째아이(10)가 TV 앞에 바짝 앉아 있는 걸 보고서야 심각한 근시라는 걸 알았다”며 “병원에 붙어 있느라 정작 내 아이의 건강에 소홀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 김시욱 흉부외과 교수(49)는 하루 걸러 당직 근무를 한다. 병원에 흉부외과 전문의가 김 교수를 포함해 2명뿐이기 때문이다. 11년째 전공의는 물론이고 신규 임용할 교수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새 일손이 없으니 기존 의료진의 업무 강도가 세지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새 교수를 영입하려고 흉부외과 과장인 내 월급에 준하는 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해도 지원자가 없다”고 말했다.

CA3: 의사 없어 수술 못받아 ... 수술 절벽 10년내 온다

○ 수술 의사 충원, 내년이 ‘골든타임’


의료계는 지방 병원의 이 같은 수술 일손 부족이 이미 수년 전에 시작됐다고 했다. 임상현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교수(52)는 “10여 년 전만 해도 심장 수술 도중에 다른 병원에서 ‘대동맥이 찢어진 응급 환자를 전원시켜도 되겠느냐’는 문의가 오면 대기 중인 다른 의사가 환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5, 6년 전부터 일손이 부족해 다른 병원 환자를 받는 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대한외과학회와 대한흉부외과학회는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수술 수요를 감당하려면 60세 미만 전문의가 외과 5500명, 흉부외과 1100명 등 총 6600명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0세 미만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는 2014년에 이미 6527명으로 6600명 선이 무너졌다. 내년엔 6000명 선도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지방 병원에선 응급 환자를 제때 수술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60세 미만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가 올해(6024명)보다 5% 감소하면 지방 병원에선 수술 일손 부족이 일상이 되고 그 여파가 서울 중대형 병원에 미치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른바 ‘빅5 병원’을 제외한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에선 이미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수술 일손이 5% 감소하는 시점은 2024년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당장 내년 1년 차 전공의 충원율을 100%에 가깝게 대폭 높일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해야 한다. 최근 5년 평균 충원율은 74.7%에 그쳤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실시한 5년 단위 보건의료 인력 실태조사에서도 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 부족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손호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실태조사에 근거해 연말에 수립할 예정인 ‘보건의료 인력 종합계획’에 의대생이 기피하는 진료과목에 대한 지원책을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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