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사장이지.." 기술 없어 직원에게 휘둘리던 사장 '변신기'

조회수 2019. 4. 6. 15: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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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세미나' 하며 세탁 공부한다는 사장님

코인세탁소의 등장, 의류 관리 기기의 보급으로 일반 세탁소에 위기가 닥쳤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서 세탁소 운영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설재원 세탁전문가(40)는 동탄에서 ‘셀럽세탁’이라는 세탁소를 운영 중이다. 


“모든 자영업자가 힘들겠지만 세탁소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양산업인 건 분명합니다”

그도 5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세탁소를 운영했다. 와이셔츠를 1000원에 세탁해주는 등 저가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세탁소를 운영한다면 머지않아 몰락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5년 전부터 포털 검색어에서 ‘명품 패딩’이 자주 눈에 띄었어요. 무언가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명품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4월 초, 그의 세탁소를 찾았을 때는 캐나다 구스, 버버리, 몽클레어, 노비스 등 명품 패딩이 주로 걸려있었다. 대신 이불, 와이셔츠 등 비중은 매우 낮았다. 또한 일반 세탁소에서 볼 수 없는 특수 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매달 세탁 세미나… “작년엔 30명→100명 늘어”
출처: 잡화점

그는 “명품에 집중한 이후부터 브랜드를 정말 꼼꼼하게 공부합니다. 소재가 계속 개발되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어요. 고객들도 비싼 옷을 아무 데나 맡기지 않죠”라고 말했다.


매달 온라인 카페에서 만난 세탁소 자영업자들과 세미나도 갖는다. 그는 “자영업자가 어려워지는 걸 실감해요. 작년까지만 해도 30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100명까지 모였습니다. 이제 기술을 발전하지 않으면 승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기술 없이 세탁소 시작… 사장인데 사장이 아니더라

설 씨는 지난 2010년 세탁소 운영을 시작했다. 원래 영화제작 관련 일을 했는데 결혼 후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영화판에서 일한 경력으로는 이력서를 내밀 데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운영하던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30대 초반에 사장이 됐는데 기술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세탁기술자를 고용하고 저는 영업과 배달을 했어요. 그런데 직원이 술 먹고 안 나오고 연락 두절되고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기술이 있었으면 대신 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까 휘둘리는 신세가 되더라고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그는 온라인 카페에서 세탁소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구해 세탁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겁 없이 6개까지 늘렸던 매장을 정리하고 1인 기업으로 전환했다.


그는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시작해 제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했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고쳐 나갔습니다. 기술을 연마하고 사소한 행동, 말투까지 변해가면서 진정한 자영업자가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영화판 경력 살려 유튜브 ‘세탁설TV’ 운영
출처: 유튜브 '세탁설TV' 캡처

세탁소 운영 10년이 되던 2018년 가을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는 “제 꿈이던 영화감독이 된 친구도 있고 사업으로 부자가 된 친구들이 생겨났어요. 저 혼자만 제자리걸음을 걷는 기분이 들었어요. ‘평범한 동네 세탁소 아저씨로 생을 마감하게 되려나?’ 이런 생각도 들고 세탁도 지겹고 우울증이 심각하게 왔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던 중 멍하니 유튜브를 보다 ‘아 내가 왜 이걸 만들 생각을 못 했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당장 찍을 수 있는 ‘와이셔츠 다림질’에 대한 영상을 올렸다. 상명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유튜브 입문은 수월했다.

출처: 잡화점

그는 “기대 이상으로 조회수가 계속 올라갔어요. 어쩌면 저한테 아무것도 아닌 정보인데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후로 ‘패딩점퍼 찍찍이 실밥 제거하는 방법’ ‘캐시미어 코트 물세탁 방법’ 등 세탁 콘텐츠를 올렸다. 또한 세탁소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고 세탁기 구매 방법’ ‘세탁소 입지 선정 방법’ 등에 대한 정보도 다룬다.


본격적으로 운영한지 4개월여 만에 구독자가 6800여 명까지 늘어났다. 그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자존감도 올라가고 사업 영역이 넓어져서 일에 재미도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제 영상을 보고 피드백 해주시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세제 회사에서 협찬을 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는데 너무 신기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세탁만 하는 세탁소로 한계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온라인 세탁소를 시작했으니 이제는 영어 콘텐츠를 만들어서 세탁소 영역을 계속 넓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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