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의 불친절과 18시간 운전의 관계

조회수 2019. 3. 27. 13: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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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마인드가 아니라 몸의 문제였다

버스 운전사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의 촬영이라 설레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조금 불편했습니다.  


실은 최근에 불친절한 버스 기사님에 대한 민원을 넣으려던 적이 있습니다. 휴대전화엔 그 버스 번호판을 찍은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떠나가는 버스를 보고 분통을 터뜨리며 찰칵찰칵. 결국 민원은 넣지 않았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내리겠다고 조금 늦게 말한 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불친절한 버스 기사님. 심보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승객으로만 살아봐서 기사님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버스 운전사가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임금은 얼마나 받는지. 쉬는 시간은 얼마만큼이고, 식사는 언제 하는지. 운행 중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상대를 이렇게나 모르는데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나 싶어 동행 취재를 요청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운수회사에서 답이 왔습니다.


내일 오전 3시 40분까지 부천 차고지로 오세요.’ 


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지?

출처: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부천 75번 버스 류동호 기사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류 기사님의 하루는 오전 2시 30분에 시작됩니다. 3시 40분까지는 출근해야 음주 검사를 하고 버스를 점검한 뒤 믹스 커피 한 잔 마시고, 돈 통을 채워 4시에 첫차를 운행할 수 있습니다. 5분만 늦어도 귀가 조치입니다. 버스는 시민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왕복 4시간이 걸리는 1회 차 운행이 시작됩니다. 총 4회를 뛰어야 하루가 끝나는데, 출퇴근 시간에는 길이 막히기 때문에 오후 11시 정도에 끝납니다. 하루 18시간이나 운전하는 셈입니다. 버스 기사 허혁 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하루 18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넘나든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기사였다가 한순간에 세상에서 제일 비열한 기사가 된다.”
출처: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물론 쉬는 시간도 있습니다. 각 회차마다 30분 정도가 주어집니다. 그 시간 안에 식사, 화장실, 낮잠, 사교 모두를 해결해야 합니다. 막히는 시간대엔 그만큼 쉴 수 있는 시간이 줄어서 10분밖에 못 쉬기도 합니다. 쉬는 시간 없이 바로 다음 회차 운행을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후 3, 4시에 미리 저녁을 먹는 기사들도 많습니다.


화장실은 주로 회차하는 지점에서 해결하고, 너무 급한 상황에는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주유소나 상가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큰일 보고 왔더니 손님들이 사라져 죄책감을 느낀 이후로는 되도록 큰일은 보지 않으려 애씁니다. 화장실에 자주 갈까 봐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신다고 하니, 운수업 노동자들의 건강관리가 시급합니다.

출처: 동아일보 DB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그래서 버스는 과속합니다. 이 모든 시간들을 맞추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야 밥을 먹고, 배차 간격을 맞추고, 화장실에 가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으니까요. 18시간 동안 버스기사님과 함께해 보니 친절은 마인드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였습니다.


현재 서울, 인천 시내버스와 경기도 시내버스는 다른 체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18시간 일하는 대신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를 택하고 있고, 서울과 인천은 1일 2교대 준공영제를 시행 중입니다. 버스 기사님들이 조금만 더 천천히 밥 먹어도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와야 합니다.


정성은 ·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 이 글은 동아일보에 실린 <[2030 세상/정성은]버스 기사의 불친절과 18시간 운전>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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