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모자에 이름 씁시다!" 호주 의사가 만든 변화

조회수 2019. 3. 14. 17: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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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들이 우르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환자를 살펴보는 상황. 의학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죠. 수술용 위생 복장을 갖춰 입고 눈만 내놓은 사람들 수십 명이 모여 있으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호주 마취의 롭 해킷(Dr. Rob Hackett)씨는 실제로 약 20여 명이 모인 대수술 때 의사소통이 꼬여 진땀을 흘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온라인 매체 보어드판다에 “장갑을 좀 집어 달라고 동료 한 명을 가리켰는데, 그 뒤에 있던 사람이 자기를 부른 줄 알고 나선 적 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급박한 수술 상황에서 동료를 바로 식별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눈에 잘 뜨이는 모자에 이름을 큼직하게 적으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동료들끼리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 의사소통 혼선도 막을 수 있고, 환자들도 한 눈에 이 사람이 무슨 과 의사인지 파악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아이디어가 정말 도움이 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직접 자기 모자에 ‘롭, 마취의(Rob, Anaesthetist)’라고 쓴 뒤 동료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신종 장난인 줄 알고 ‘재미있어 보인다. 나도 적어야겠다’며 가볍게 따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곧 모두들 이 우스운 모자가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름 적힌 모자를 써 본 동료들은 “뭔가 요청해야 하는데 갑자기 상대방 이름이 생각 안 날 경우가 있다. 이 모자는 그런 시간낭비를 막아 준다”, “환자들도 의사가 자기 이름을 걸고 진료하는 것 같아 믿음이 가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며 좋아한다”, “동료들끼리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회용 모자 대신 개인 위생모자에 이름을 인쇄하면 쓰레기도 나오지 않고 일회용품 구입비도 절약할 수 있겠다며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롭 씨가 시작한 ‘모자에 이름 적기’는 곧 일종의 챌린지(장난이나 선행 등을 사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공유하는 놀이)가 되었습니다. 주변 의료진들은 ‘#TheatreCapChallenge’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이름 적힌 모자 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유쾌하게 시작된 챌린지가 퍼지면서 의료계 종사자들 사이에 신선한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물론 모든 호주 의료계 관계자들이 롭 씨의 아이디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롭 씨는 “일부 나이 많은 의사나 병원 직원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반감을 표하기도 해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점차 바뀌어 나갈 거라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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