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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샵 불가' 19세기 사진술 재현한 작가들 "인정하면 편해요~"

조회수 2019. 5. 15. 18: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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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록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우리나라에서 건너뛴 ‘19세기 사진의 역사’를 재현한 상업 사진관이 있다. 국내 최초 습판 사진관의 이규열 · 이창주 실장을 만나봤다. 

왼쪽부터 이규열·이창주 실장 습판 사진. 등대사진관 제공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사진이 시작됐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사진에 대한 접근이 굉장히 쉬워졌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사진의 가치는 하향평준화 되고 말았다. 주 클라이언트였던 인쇄물 기반의 회사들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2014년이 되자, 사진 업계 전체에 일거리가 완전히 끊겼다. 가족이 있으니 어떻게든 고정 수입이 필요한데, ‘치킨’ 장사라도 해야 되나 싶었다고 한다.


◆’선물’과도 같았던 습판 사진


습판 사진술은 철판이 감광제에 젖은 상태에서 촬영해 현상하는 150년 전 기법이다. 필름이 ’철판’이라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습판 사진 단 ‘한 장’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30여 분의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엄청난 집중과 정성이 필요한 과정이다.


-습판 사진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100년간 쓰지 않았던 기술이기 때문에 학회에서도 가르치지 않거든요. 책 속에서 ‘1851년 영국의 프레드릭 아쳐(Frederick Scott Archer)가 습판 사진을 발명했다.’ 한 줄 정도 본 것 같습니다.” 

출처: 등대사진관 제공
가슴을 뛰게 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
“대체 불가한 존재가 돼라.”

-습판 사진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기계로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손맛이 좋았습니다. ‘얼룩’ 또한 너무나 예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사진처럼 깨끗했다면 ‘등대사진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이거라면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출처: 등대사진관 제공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며 공산품인 필름의 생산이 멈추게 됐다. 그러자 아날로그 사진을 찍던 미국의 몇 작가들이 2010년 무렵부터 다시 습판 사진을 시작했다. 즉석에서 ‘철판을 필름으로’ 만드는 19세기 방식으로 아날로그 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연구하기 쉽지 않았겠다.


“2년 걸렸습니다. 유튜브에 미국 사진가들이 올린 작업 영상이 여럿 있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늘 어딘가 막히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다들 제한 것이죠. 그 부분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하여 ‘독학’ 재현해 낸 기술입니다. 상업 사진관으로는 ‘국내 최초’입니다.”


-기술을 전수할 계획은.


“아직까지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디지털 사진으로 매거진 일을 20년 하며, 따라하기 쉬운 기술이 부르는 결과를 처절하게 경험해봤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분을 보완하긴 했지만, 저희도 아직까지 습판 사진술에 대해 계속 연구 중입니다.”  

기자에게 보여준 직접 수집한 습판 사진. 사진=강화영 동아닷컴 인턴기자

◆특별한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는 등대사진관

습판 사진은 발명 이래 유럽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유행했다. 미국 남북전쟁 중 헤어지는 가족들은 시계 반대편에 이 사진을 넣어 서로를 기억했다. 등대사진관 이규열 · 이창주 실장이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직접 수집한 그 시대의 습판 사진은 2019년에 보아도 보존 상태가 훌륭했다. 그야말로 ‘영원히’ 남는 사진인 셈이다.


-등대사진관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


“주로 기념일에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분들 입니다. 공통점이라면 ‘0.2%의 특별함’을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습판 사진은 얼룩마저 그 날, 그 ‘시각’에만 얻을 수 있는 단 한 장의 사진이니까요. 심지어 유독 얼룩이 심해서 다시 찍어드리겠다고 하는 걸 “그럴 거면 여기 오지 않았다.”며 마다하신 분도 있습니다.” 

출처: 등대사진관 제공
배우 차인표 습판 사진

-등대사진관이 추구하는 인물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저희 사진은 ‘원샷 원킬’이에요. 후보정은 없습니다. 포토샵이 안되면 어떡하냐는데 인정하세요 그럼 편해집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거에요.


디지털 사진은 “작가님, 잘 찍어주세요.”에서 최근 10년간 “작가님, ‘포샵 보정’ 아시죠? 저 같지 않게 해주세요.”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어폐가 있는 말인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은 ‘기록’의 기능만 남는데, 그마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등대사진관은 단순한 사진관이 아니다. 이 곳을 방문한 순간부터 사진을 품에 안고 나가기까지 전체 과정이 ‘19세기 문화 체험’이다.


-촬영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19세기 문화와 사진의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여러 대화를 나눕니다. 인물 사진을 오래 찍어왔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파악이 가능합니다. 끼를 발산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더 유도해내고, 아닌 분들은 저희가 리드하여 자연스러운 한 컷을 찍습니다. 사진이 현상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99% 재밌어 하십니다.”


출처: 등대사진관 제공

-앞으로도 등대사진관을 계속할 것인가.


“물론입니다. 사진이 좋아서 사진 작업을 계속 하고는 싶은데, 70대에 모니터 앞에 앉아 포토샵을 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에 비해 ‘느림의 미학’이 있는 습판 사진은 어울리잖아요. 백발 머리 할아버지가 돼도 계속해서 습판 사진을 찍을 생각입니다. 해외 전시를 목표로 우리나라 전통 의상인 한복 촬영도 틈틈히 진행 중입니다.”


강화영 동아닷컴 인턴기자 dlab@donga.com · 정리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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