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경쟁하지 않아요" 발달장애인 '꿈의 직장' 만든 비결

조회수 2019. 2. 7. 16: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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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메이커' 사회적 기업가 노순호 대표

중증장애인들이 일하는 보호 작업장에는 능력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생산성을 낭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사회적 기업 ‘동구밭’ 대표 노순호(29) 씨는 이들이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구밭은 월 매출이 400만원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 사원 1명을 더 고용하고 있다. 현재는 발달장애 사원 20명, 비장애인 11명으로 총 31명의 직원이 있다. 발달장애 사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꿈의 직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출처: 노순호 대표. 사진| 강화영 동아닷컴 인턴 기자

동구밭은 어떤 회사인가.


“동구밭은 발달장애인들의 ‘근속 개월’을 늘리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 사회적 기업입니다(발달장애인의 근속 개월은 다른 장애인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존의 복지 영역에서만 고민하던 발달장애 문제를 기업적인 논리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했습니다. 때문에 인증받은 사회적 기업임에도 ‘소셜 벤처’라는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매출을 늘려서 보다 많은 발달장애 사원들을 고용하고자 합니다.”

출처: 동구밭 제공

동구밭의 시작은 동아리 활동이었다.


“거제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역 후 사회적 기업 동아리 ‘인액터스’에 가입했죠. 거기서 만난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발달장애인이 또래 비장애인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도시 농업’을 접합시켰던 것이 동구밭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이를 사업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제조업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천연 비누 제작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월 20만개의 제품을 생산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출처: 동구밭 제공

동구밭 매출의 대부분은 자사제품 판매업이 아닌 OEM 방식으로 기업에 천연 비누, 입욕제, 위생용품 등을 납품하는 ‘제조업’이다.


모든 제품의 원료에 동구밭의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가 들어가는 것인가.


“텃밭의 채소는 자사제품인 ‘가꿈비누’에만 원료의 일부로 들어갑니다. 채소 분말은 친환경 비누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물과 가성소다를 섞은 양잿물을 비누로 변하게 하는 ‘오일’이 어떤 것이냐가 중요하죠. 


비누에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기능적·미용적 목적의 분말들은 보통 3%를 넘지 않아요. 그래도 성능 발휘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비율이 얼마 안된다고 기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양잿물과 오일이 비누를 이루는 전부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채소 분말은 비누에 있어 ‘토핑’과 같은 존재입니다. 김치피자에 김치가 80% 들어가면 그게 김치전이지 김치피자인가요.”



매년 2배 이상 매출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동구밭을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처음 복지관계자들은 ‘발달장애인들이 만드는 비누’에 대해서 “또 비누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장애인을 고용한 비누 사업장이 2000개쯤은 됐을 겁니다. 그들의 제품이 좋았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고민했습니다. 포지션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기업과 같은 제품을 1/10 가격으로 내놓았다고 자신들의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논리를 펴는 순간 대기업은 경쟁 상대가 됩니다. 저희는 포지션을 달리하여 대기업을 ‘고객사’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았습니다. 일반적인 합성 비누 사용 빈도의 부족분을 천연 비누가 메우며 고체 비누 시장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앞으로 첨단 산업이 발전하더라도 천연 비누는 계속 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습니다. 실패한 장애인 고용 사업장의 대다수가 철저히 공급자 위주의 제품을 만듭니다. 우리 애들은 얼음을 못 만드니까 한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팔겠다는 식인 겁니다.”  

출처: 동구밭 제공

2017년 동구밭은 사업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텃밭 프로그램이 더 이상 메인 수익 모델이 아니게 됐다. 그럼에도 10곳의 텃밭을 유지하는 이유는 학생 비장애인들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텃밭에서의 발달장애인 친구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회에 나가 발달장애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텃밭 가꾸기 봉사에 참여하는 ‘동구밭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서류 지원과 대면 면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봉사참여자 선정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


“텃밭 가꾸기 활동의 목적이 농사가 아닌 ‘관계 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기본은 약속과 꾸준함입니다. 매일 조금씩 공을 들여야 하는 농사와도 닮아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아닌 친구로서 비장애인과 함께하며 사회 적응 능력을 기르고 있습니다. 동구밭지기로는 결석 없이 활동에 참여하며 발달장애인과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비장애인을 찾습니다.”  

출처: 동구밭 제공

발달장애인은 최저임금법 적용의 예외 대상이다. 그러나 동구밭은 발달장애 사원들에게 최저임금에 맞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 잘하는 직원을 뽑았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사 제공, 인센티브 및 명절 선물 지급 등 ‘기본적인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노 대표는 이와 같은 당연한 일에 칭찬을 받고 있는 상황이 애석하다고 말했다. 

2016년 장애인 고용을 시작한 이래 퇴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데...


“네, 동구밭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턴과 수습 과정을 거쳐 정규직이 된 발달장애 사원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하루 평균 4시간씩 주 5일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우 성실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단순 반복적이고 정확함을 요구하는 일들을 믿음직스럽게 잘 해내고 있습니다. 본래 표현이 미숙하던 발달장애 사원들이 본인들과 같이 일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때 소소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동구밭의 꿈은 무엇인가.


“동구밭은 저희 스스로 비누를 만드는 회사라기 보다 발달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라고 정의합니다. 때문에 외국에 사는 발달장애인도 동구밭이 부러워서 이민 오고 싶게끔 하는 매력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동아닷컴 강화영 인턴기자 dla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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