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때리는 CEO, 돈 던지는 손놈.. 한국의 '갑질러'들

조회수 2019. 1. 11. 11: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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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갑질' 결산.. 우리는 얼마나 甲이었고 乙이었나

일주일여 전인 지난 12월 20일. 올해 몇 번째 인지 모를 ‘갑질’ 사건이 온오프라인 지면을 장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김포공항에서 “커버 안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요청한 보안요원에게 욕설을 했다는 논란이었다. 김 의원은 관련 규정을 가져오라며 “이 새×들이 똑바로 근무 안 서네!” 등 욕설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갑질 의혹은 음모론”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어진 반박 증거에 “죄송하다”라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Gapjil’.

‘Gapjil’. 올 4월 중순 미국 뉴욕타임즈(NYT) 기사에 실린 새로운 영단어다.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단어였겠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 단어, 갑질. NYT는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에 대해 보도하며 이 단어를 썼다. 그야말로 부끄러운 한류다.


2018년을 관통한 키워드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갑질’이 빠질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조 전 전무를 포함해 크고 작은 수많은 갑(甲)들의 횡포가 을(乙)들을 울렸다.


○물컵 던지고 욕설 일삼고… CEO들의 갑질

출처: 동아일보DB
지난 5월 경찰서에 출석하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조 전 전무는 지난 3월 ‘물컵 갑질’로 흔들리던 대한항공의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 회의에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막말을 하고 물컵을 던지는 등 폭행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조 전 전무는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도 “컵을 밀쳤을 뿐 얼굴에 던지거나 뿌린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찰 조사와 재판 결과 폭행 혐의는 ‘공소권 없음’, 특수폭행·업무방해 혐의는 ‘혐의없음’ 판결이 나왔지만 타격은 컸다. 모친 이명희 씨의 갑질 의혹과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며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곤두박질 쳤다. 언니이자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조현아 전 부사장의 2014년 ‘땅콩 회항’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기에 을들의 비난은 곱절이 됐다.

출처: YTN 보도화면 갈무리

8월에는 제약업계에서 갑질 바람이 불었다. 윤재승 대웅제약 전 회장이 직원들에게 상습적인 폭언을 해왔다는 주장과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서 윤 전 회장은 직원의 보고에 “정신병자 XX 아니야. 이거? 야. 이 XX야. 왜 이렇게 일을 해. 이 XX야. 미친 XX네. 이거 되고 안 되고를 왜 네가 XX이야”라는 욕설로 답했다. 논란이 커지고 회사 주가까지 눈에 띄게 떨어지자 윤 전 회장은 “회사를 떠나겠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CA3: 양진호 회장 엽기행각 논란 '직원 폭행에 살생즐기기'

을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고발이 이어졌다. ‘엽기적 갑질’이라는 오명을 쓴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10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측근의 내부고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직원을 공개적으로 폭행하고 그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했다는 증언과 워크숍에 참석한 직원들에게 일본도와 석궁으로 닭을 죽이게 강요했다는 증언과 영상이 나왔다. 술과 담배를 강요했다는 주장, 협박을 당했다는 주장 등 사례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충격적인 내용에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국민 청원이 쇄도했다. 이에 검찰은 12월 양 회장을 구속기소하고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특수강간) △상습폭행 △강요 △동물보호법위반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대마) △총포·도검·화약류등의안전관리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그 밖에도 11월에는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이사의 초등학생 딸이 50대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하는 영상이 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이 논란은 결국 방 전 대표가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꾸짖어 달라”며 사퇴하며 일단락됐다. 또 롯데그룹 계열 광고 기획사인 대홍기획의 한 전무가 “빼빼로데이에 (나한테) 아무도 (빼빼로를) 안 줬다”는 이유로 팀장급 직원 4명을 불러놓고 고함을 치며 과자를 집어 던졌다는 웃지못할 갑질 사례도 있었다.

○우리도 갑! ‘손놈’들의 등장

그런가 하면 CEO가 아닌 고객의 갑질이 논란이 된 경우도 많았다.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지난 7월 용인 한 백화점에서 일어난 갑질 논란.

지난 7월 경기도 용인의 한 백화점에서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 고객이 화장품 매장 직원에게 제품을 던지고 “너 죽여버린다 XXX아. 이 XXX이 어디서 X수작이야” 등 욕설을 하는 장면이 촬영돼 온라인에서 비난을 받았다. 이 고객은 해당 매장의 제품을 쓴 뒤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며 이 같은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울산 한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있었던 갑질 의혹.

11월에는 울산의 한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 매장을 찾은 고객이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 제품이 든 봉투를 집어 던져 논란이 됐다. 그는 ‘자신이 주문한 제품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알바생에게 봉투를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해당 매장에서 몇 년 동안 근무했다는 익명의 직원은 “이런 손님은 너무 많다. 재떨이를 던지는 분들도 있다”고 토로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갑질 당한 빈도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갑질한 경험이 높았다’는 한국리서치의 8월 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조사 결과, ‘자주’ 혹은 ‘가끔’ 갑질 피해 받은 사람들 경우 56~57%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이상 갑질을 했다고 답했다. 갑질 피해 경험이 ‘한 두 번’에 그친 이들은 44%, 갑질 피해 경험이 없는 이들은 19%만이 자신이 갑질을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1년여 간 3만 건 가까운 갑질 제보”


지난 12월 19일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년여 동안 2만2810건의 갑질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매달 1200건 넘는 갑질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출처: 동아일보DB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들 사례들이 “구체적인 본인의 사례를 얘기하고 상담을 받고자 하는 분들”이었다며 최근 크게 이슈가 됐던 사건들 이외에도 직장 내 수많은 갑질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우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던 대한항공 갑질 사례를 언급하며 “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직장 내에서 비일비재하다. (다만) 이런 것들을 제대로 드러냈을 때 과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노무사는 한국미래기술 양 회장의 사례를 들며 “갑질 행위가 범죄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영웅담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고 일침했다.

이처럼 갑질 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지만 제도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몇 개월 째 국회 계류 된 끝에 26일 겨우 법사위를 통과했다. 거대한 피해 뒤에야 느린 첫발을 뗀 셈이다.

또다른 거대 갑질의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법은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어디에선가는 을이 될 우리는 오늘도 갑과의 동침을 두려워 하고 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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