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사전' 출간비 모금 두 달 만에 1억 넘겼어요"
요리, 여행 등을 소재로 ‘덕후’를 위한 책을 만드는 ‘The Kooh’ 편집장 고성배 씨(34)는 올 6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후원금액의 0 개수를 잘못 본 건 아닐까.’
고 씨는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을 200~300권 제작해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등을 통해 판매해 왔습니다. 그러다 올 4월 한국 전래 귀신이나 괴물을 일러스트와 함께 담은 책 ‘동이귀괴물집’을 만들겠다며 텀블벅에서 후원자를 모집했습니다. 목표 금액은 200만 원이었지만 두 달 만에 후원자 8881명이 1억 4537만6000원을 냈습니다. 무려 9200권을 선판매한 셈입니다.
고 씨는 “전래 판타지 캐릭터를 원하는 독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창작을 계속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이 활성화되면서 문화예술계 지도도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소규모 문화예술 창작자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후원자, 소비자를 만나며 숨통이 트이고 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창작자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올리고 목표 후원 금액이 달성되면 후원해 준 사람들에게 창작물로 보상하는 ‘리워드’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건물이나 배경을 그려 웹툰 작가 등이 활용하도록 판매하는 ‘스케치업’ 후원 프로젝트가 최근 활성화되는 등 창작 관련 새로운 시장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은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서브컬처(Sub-Culture·주변부 문화) 분야에서 특히 힘을 발휘합니다. 국내 미발매된 셜록 홈스 소재 보드게임의 한글판 출시 프로젝트로 최근 2100여 명으로부터 1억1300여만 원을 후원받은 창작자는 “상상도 못한 결과”라고 크라우드펀딩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습니다.
기성 아티스트와 출판사가 새로운 팬을 확보하는 기회로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장수 밴드 ‘크라잉넛’은 정규 8집 ‘리모델링’ 제작비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마련하고, 지난달 27일 기념 공연을 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을 많이 활용하는 젊은층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입니다. 출판사 창비는 맨부커상을 받은 퀴어 소설 ‘아름다움의 선’을 최근 번역 출간하면서 후원 프로젝트를 올려 200명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이용제 계원예술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문화예술 창작자는 늘 생존 문제로 위태로운 것이 현실인데 크라우드펀딩으로 기존에 없던 시도를 해볼 만한 바탕이 마련되고 있다”며 “후원자에게 유형의 보상을 줄 수 있는 분야뿐 아니라 기초 연구처럼 무형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까지 후원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 원문 - 동아일보 <‘귀신 사전’ 출간비 모금 두 달 만에 1억 원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