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가 소화기 만든다? "남의 광고만 하면 생존 힘들어"

조회수 2018. 10. 24.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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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보험회사 광고에 독특한 아이디어 상품이 등장해 눈길을 모았습니다. 광고는 주인공의 집에 불이 나는 위급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대처가 이상합니다. 그는 소화전이나 분말식 소화기를 찾는 대신 대뜸 탁자 위에 올려진 꽃병을 집어 불에 던졌습니다. 신기하게도 꽃병이 깨지면서 불도 함께 꺼졌고, 광고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꽃병 하나 던졌다고 어떻게 불길이 사그라든 걸까요. 이 꽃병은 투척식 소화기의 일종으로, 병이 깨질 때 나오는 소화액이 급속냉각효과와 함께 산소를 차단하면서 불이 꺼지는 원리입니다. 평소소화기 사용법은커녕 어디에 두었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 하는 보통 사람들에겐 무릎을 탁 칠 만 한 획기적 상품이었습니다. 


실제로 최근 이 광고가 상영된 서울의 한 극장 관객석에선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후 광고에 나오는 보험회사로 ‘꽃병 소화기를 사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지난 9월 서울 용산구 제일기획 본사에서 열린 해커톤 발표회에서 참가 직원이 팀원들과 발굴한 아이디어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제일기획 제공

광고만 보면 보험회사가 꽃병 소화기를 개발한 것 같지만 실제로 제품 아이디어를 낸 것은 광고 제작사였습니다. 이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 관계자는 “소화기를 보유한 가정들도 대부분 보관 위치나 사용법을 확실히 몰라 화재상황에 바로 대처하기 어려워한다”며 “눈에 잘 띄면서 사용법도 간단한 소화기를 만들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꽃병 소화기는 원래 보험회사 고객 배포용으로 만들었지만 조만간 시중에 판매할 예정입니다.


최근 국내 광고업계가 주특기인 아이디어를 내세워 실제 제품을 만들어 팔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2018년 초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서는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선글라스는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할 경우 경고음을 내고 진동을 울립니다. 안경다리를 바꿔 끼우면 다른 기능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언뜻 정보기술(IT)기업이 만든 상품 같지만 이 제품을 개발한 곳은 국내 광고업체인 이노션입니다. 이미 특허출원을 완료한 이노션은 2019년 하반기쯤 해당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겠다는 계획입니다.

제일기획이 최근 선보인 ‘꽃병 소화기’(왼쪽)와 이노션의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 각 업체 제공

한 업계 관계자는 “광고업계는 시장 포화 상태다. 다른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나 그 회사의 이미지를 잘 포장해 주는 것만으로는 광고회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며 “참신함을 활용해 새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광고업계도 아이디어 발굴에 적극적입니다. 제일기획은 총 상금 5000만 원을 걸고 사원들의 아이디어 상품을 적극 발굴하는 해커톤 대회를 2018년 처음 열었습니다.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인 해커톤 대회는 한정된 기간 내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만들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행사입니다. 


지난 9월 열린 해커톤 대회에선 차량 내부 온도와 공기 질 등을 감지해 사고를 예방하는 스마트 시스템, 술 종류에 따라 알맞은 온도를 맞춰 주는 냉장고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회사는 아이디어별로 사업성을 검토해 향후 실제 사업에 적극 반영할 계획입니다.


유정근 제일기획 사장은 “과거 아이디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광고업계지만 최근에는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생각한 것을 실제로 만들고 구현해가는 과정을 계속 이어간다면 광고업체의 글로벌 무대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 이 글은 동아일보 <꽃병 소화기, 광고회사가 만들었네>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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