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지원해야" 신약 특허료 수 조 원 기부하겠다는 日 교수

조회수 2018. 10. 23. 12: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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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혼조 다스쿠

“남들이 돌멩이라며 쳐다보지도 않는 것을 주워서 10년, 20년 갈고 닦았더니 다이아몬드가 됐습니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혼조 다스쿠(本庶佑·76) 일본 교토대 특별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0월 18일 오후 찾아간 혼조 교수의 연구실 주변에는 축하 화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는 교토대가 정년이 지난 우수한 연구자를 잡아두기 위해 만든 정규직 ‘특별교수’ 4명 중 1명입니다. 76세의 나이에도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 연구자들을 지도합니다.

출처: 교토=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혼조 다스쿠 교수는 학생시절부터 공부도 놀이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요즘 취미는 골프다. 본인의 나이와 같은 스코어를 내는 ‘에이지 슛’이 꿈이다.

○ 오랜 세월 연구를 지탱해온 원동력은 ‘호기심’


1992년 한 대학원생의 연구에서 우연히 새로운 분자가 발견됐습니다. 


“어, 이거 재밌는 놈일세.” 


혼조 교수는 이 대학원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PD-1이라 명명한 이 분자를 들여다봤습니다. 4년 뒤 PD-1이 이물질을 공격해 몸을 지키는 ‘면역’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브레이크를 막으면 면역이 암을 공격하게 되지 않을까.’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2014년 새로운 암 치료제 ‘옵디보’ 시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옵디보는 과거 외과수술과 방사선, 항암제 중심이던 암 치료를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 우연한 발견이네요.


“제가 암 전문가가 아니라 문외한이라는 점이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면역의 힘으로 암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해서 면역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있었거든요. 하지만 문외한은 그런 ‘상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죠.


옵디보 특허를 공동출원한 오노 제약공업은 1년 동안 공동개발할 일본 제약회사를 찾아 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오히려 ‘이런 것에 손대면 회사가 망한다’는 충고까지 받았다고 해요. 다행히 미국의 벤처회사에 얘기를 꺼내자 1시간 만에 ‘하겠다’는 답이 왔습니다. 그 뒤로 술술 풀리기 시작했어요.”


임상시험에서 말기암 환자 296명에게 옵디보를 투여하자 폐암 환자, 멜라노마(피부암의 일종) 환자, 신장암 환자의 약 20~30%에서 암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옵디보는 지난 9월 기준 54개국에서 승인 받은 암 치료제로 자리잡았습니다.


- 돌멩이를 주워 닦았더니 다이아몬드가 됐다고 말씀하셨는데…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했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의 정열과 에너지가 행운을 불렀다고 생각해요.”


- 젊은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뿌려 줘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네. 기초과학은 과학자가 자유로운 호기심과 발상에 기초해서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려는 연구입니다. 다만 성과를 단기간에 실용화하기가 어려워서 연구비 획득도 쉽지 않아요. 


생명과학은 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중요한 건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겁니다. 1억 엔을 1명에게 몰아주기보다는 10명에게 나눠 줘서 10개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쪽이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출처: THE PAGE(ザ・ページ)
10월 1일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노벨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 중인 혼조 교수.

○ “과학에서 실패는 낭비가 아니다”


혼조 교수는 ‘실패는 낭비가 아니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쌓여 지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맛있는 감을 얻으려면 일단 씨를 많이 뿌려야 합니다. 어느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잘 자랄 지 키워 보기 전까지는 모르니까요. 정치인들에겐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과학 연구란 그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나 기업, 사회도 빠르게 성과가 나오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 출신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아직 없습니다.


“한국 생명과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제가 만나 본 학자 개개인은 우수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앞서도 말했듯이 맛있는 감을 얻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 신약 특허료 기부해 연구자 지원기금 설치


혼조 교수는 신약 특허료를 기부해 젊은 연구자들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는 “옵디보만이 아니고 PD-1 분자를 활용한 신약 모두에 특허가 적용되므로 2024년이면 연간 4조 5000만 엔(약 45조 3200억 원)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매출액 중 1%만 특허료로 들어와도 연간 450억 엔(약 4532억 원)입니다. 이 돈이 교토대로 들어옵니다. 누적되면 1000억 엔은 금방 넘을 거예요. 그 돈으로 30대 정도의 젊은 연구자들을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습니다.”


-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암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니게 되는 날이 이번 세기 중에는 올 겁니다. 면역은 굉장한 힘을 가졌지만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아요. 거기서 연구하는 기쁨이 나옵니다. 페니실린 발견 뒤 많은 항생물질이 쏟아져 나왔듯이 면역치료약 역사도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할 일이 많아요.”


교토=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이 글은 동아일보 단독기사 <끈질기게, 상식의 사슬을 끊는 자를 노벨상은 주목한다>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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