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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다해야 한다고요?

평생 ‘크런치 모드’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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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메달 색깔을 따지는 게 속물적이기는 하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이봉주 선수가 딴 은메달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당시 이봉주 선수는 100m, 200m 단거리 경기도 아닌데 금메달 선수와 단 3초 차로 결승선에 들어왔습니다. 이 선수가 금메달을 딴 남아공 선수와 함께 트랙을 돌며 세리머니 하던 사진을 두고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교수 팀 녹스는 ‘이봉주 선수는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출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녹스는 이봉주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라톤을 70번 이상 완주한 저명한 운동생리학자로서 애틀랜타의 무지막지한 날씨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륙 깊이 자리한 애틀랜타는 날씨가 덥고 습해 올림픽 전부터 기록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선수들은 사우나처럼 푹푹 찌는 날씨에 보통 사람 기준 전속력에 가까운 속도로 40km를 넘게 달린 것입니다.  


녹스의 말은 마라톤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세리머니를 할 만큼 기력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정말 선수들이 한계까지 달렸다면 결승선 근처에서 막판 스퍼트를 하거나 우승 후 국기를 두르고 트랙을 돌 수 없었을 겁니다. 마라톤 전설만 봐도 아테네 전령이 쉬지 않고 달려 승전보를 전한 뒤 곧바로 쓰러져 숨을 거두지 않았던가요.


그렇다고 생애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는 경기에서 이봉주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리도 없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봉주(왼쪽)가 8월 5일 폐회식에 앞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한 투그워니(가운데)와 동메달리스트 와이나이나의 손을 맞잡아 올리며 관중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출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녹스의 퍼즐 맞추기는 운동생리학계에서 치열한 논쟁을 일으킨 ‘중앙통제자(central governor)’이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하지만, 뇌는 몸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신체활동의 한계치를 설정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극 원정이나 사하라 사막 울트라마라톤,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 등 온갖 극한 상황에서도 죽는 사람보다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입니다.  


보통 장거리 종목 스포츠에서도 구간별 속도가 느려지다가 막판에 올라가는 것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중앙통제자 이론에 따르면 뇌가 ‘끝이 보이니 이제 최대한 속도를 내도 되겠다’고 판단해 무의식적인 제한을 거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운동뿐만 아니라 일도 비슷합니다. 끝이 보이는 기술개발이라면 건강에는 해롭겠지만 크런치 모드(제한시간 내 집중적 업무 수행)로 작업해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초 연구를 매일매일 크런치 모드로 할 수는 없습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과학정책 대화 행사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초대 소장이자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되는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추첨으로 나눠 줬습니다. 그 때 한 대학원생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직도 성과를 내려면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가 필요한가? 이제는 연구소도 시간 되면 퇴근하고 불 꺼지는 연구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어느 교수는 행사 후 “연구소는 공장이나 회사처럼 돈 받고 남의 일 하는 게 아닌데 칼퇴근이 말이 되냐”는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둘 다 맞고 둘 다 틀립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연구라면 연구소 불이 꺼질까요. 동시에 연구소에서 하는 일이 오롯이 자신만의 연구는 아닙니다. 대학원생이나 교수나 이 미묘함을 모르는 건 아닐 겁니다. 그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게 아닐까요. 


‘불 꺼지지 않는 연구 하게 연구소 불 좀 꺼주세요.’

발끝으로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노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할 때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3 수험생처럼 모든 걸 쏟아부으며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수능이라는 확실한 끝이 보이니 가능한 것이지,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내내 수험생처럼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노자의 가르침대로, 발끝으로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똑똑한 뇌가 ‘불 꺼지지 않는 연구를 하다 죽을 지경’이 되지 않도록 잘 관장해줄뿐더러 정말 끝이 보이면 막판 스퍼트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겁니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 이 기사는 동아일보 <[동아광장/김소영]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다해야 한다>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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